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5-09-22 16:13:04, Hit : 4752
 한 아버지의 추억 4장:계속되는 여정

제4장: 계속되는 여정

철도청에서 일하는 남동생이 타밀나두에서 에르나쿨람으로 전임을 오자, 나는 집안일 걱정을 접어두고 라잔을 찾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남동생 내외에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내 아이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이었다.

나는 M.S. 마스터씨의 도움을 받아 라잔을 찾는 일을 계속했다. M.S. 마스터씨 일가는 트리쿠르 지역에서 잘 알려진 공산당 집안이었다. 마스터씨는 체르푸 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한 교장선생님으로, 지역 주민들 모두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츄타 메논씨를 잘 알고 있었다. M.S. 마스터씨는 트리반드럼으로 메논씨를 만나러 가려고 하는 나의 다음번 방문에 동행하기 위해 나의 집을 찾아왔다. 여동생인 코참미니는 여전히 메논씨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의 말과 행동 속에 항상 드러났다. 코참미니는 이번 방문에서 우리가 라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가 기대했는데, 특히M.S. 마스터씨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에 힘을 얻은 듯 했다. 우리가 트리반드럼을 향해 떠나려고 할 때, 여동생은 그에게 조그만 꾸러미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에르나쿨람 하누만 사원에서 산 선물이에요. 이걸 라잔에게 전해주세요. 그 아이에게 이모가 준거라고 말해 주세요.”

우리는 트리반드람에 있는 수석장관의 관저인 캔톤먼트 하우스에서 아츄타 메논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우리의 방문목적을 알고 있었고 가능한 한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수석장관인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중앙정부로부터의 압박전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행해 보였다. 메논씨는 우리에게 다음주에 다시 와달라고 부탁했다. 떠나기 전, 나는 그에게 자야람 파딕칼을 통해 라잔에 관한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나는 파딕칼만이 자세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오, 나는 파딕칼에게 문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찰국장인 라잔씨와 이야기를 해 보겠소.”가 메논씨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케랄라주 사람들 모두가 (인디라 간디 수상이 선포한) 현 긴급조치 상황에서 라잔 경찰국장의 직무가 그저 표면상의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자야람 파딕칼은 당시의 국가의 법질서 시스템을 남용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메논씨의 대답은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메논씨와 같은 수석장관이 자기보다 낮은 직책의 하위 관료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그 때 느낀 것은 혐오가 아니라 고통이었다.

그 다음 주, 우리는 트리반드럼을 다시 찾았다. 우리는 자나르다난 의원이 정부청사 근처에 있는 트리반드럼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소식에 무척 기뻤는데, 자나르다난은 내 절친한 친구였고 다른 이들처럼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1년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와할랄 네루 당시 인도 수상이 트리쿠르를 방문해 텍키카두 광장에서 공청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 다음날, 똑같은 장소에서 열린 모임에서 자나르다난은 네루의 연설에 대한 화답으로 대중을 행해 연설했다. 그의 연설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나는 그 연설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열정적으로 자나르다난의 연설을 들으러 다녔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경찰이 가한 잔학행위 때문에 망가져 버렸다. 트리쿠르 지역에 있는 공산주의자들 중에서 자나르다난씨처럼 경찰의 잔악행위에 고통 받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그의 수명은 수년이나 단축되었다.

우리가 자나르다난을 만나 라잔에 대해 알렸을 때, 그는 그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우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그는 아츄타 메논씨를 만나러 갔다. 오후 1시경에 돌아온 그는 우리에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다음날 메논씨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메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예전과 똑같았다. "자야람 파딕칼과는 이야기 하지 않겠소.”가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럼 카루나카란 주 내무장관을 통해 알아봐 줄 수는 없겠냐고 부탁했다.

“그와도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그저 발뺌할 게 분명합니다.” 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M.S.마스터씨에게 다음번에 트리반드럼에 올 때는 K. K. 마스터씨와 함께 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우리의 트리반드럼으로 향하는 다음번 여정은 K. K. 마스터씨와 함께였다.

시간은 흘러가서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안의 상황은 악화되어 갔다. 아내는 정신적으로 망가져 갔다.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인 아츄타 바리에르가 아내를 돌봐주었다. 아츄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아츄타 메논씨와의 이번 만남에 대한 기대감에 찬 채 말했다. “아치라, 그를 만나야 해요. 그가 도와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우리들은 기차 안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츄타의 목소리가 기차바퀴가 내는 소리에 반향되어 내 귀에 울려 퍼졌다. 아들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지도 벌써 한 달째였다. 나의 마음은 약해지고 있었다.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곤 했지만, 나는 메논씨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 마주쳤던 긴 머리와 턱수염을 기른 그의 얼굴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경찰이 우리 마을에서 잔학행위를 일삼았던 그 때, 그의 눈 속에 타올랐던 자비의 불꽃은 투쟁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었다. 나는 케랄라주의 가장 빈곤한 이들이 밝혀준 그의 마음속 작은 불씨가 어떤 정치적 타협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꿈꾸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트리반드럼에 도착해 자나르다난이 준 번호로 메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동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메논씨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고, M. S. 마스터씨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로 K. K. 마스터씨와 함께 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가도 될까요?” M. S. 마스터씨가 말했다.

“난 K. K든 어느 젠장할 xx든 만나지 않겠소!” 그가 대답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가 정확히 어떤 단어를 썼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당신 아들을 찾아서 케랄라주 경찰서를 일일이 뒤지며 돌아다니기라도 하기를 바라는 거요?” 그가 이어서 말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전화를 받아 든 후 그에게 말했다. “수석 장관이 하위 공무원으로부터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권한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진즉에 알았다면 당신을 결코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트리반드럼으로부터 돌아왔다. 나는 권력이 한 공산당 지도자를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산당을 조직을 확립하기 위해 주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메논씨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오늘날의 그 누구도 메논씨와 같은 사람에게 우리 세대가 가졌던 신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메논씨는 허름한 옷차림에 피곤한 기색을 하고 밤에 자신들의 오두막에서 잠을 청했던 사람으로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 그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무릅쓰고 포악한 경찰로부터 그를 보호했었다.

공산당에 있는 한 친구에게 그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말했을 때, 그는 냉소적으로 메논씨가 수석 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케랄라주의 빈민들은 그를 몇 년 동안이나 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어." 내가 그에게 대답했다.

내가 알고 있던 아츄타 메논씨는 틀린 정보를 전하는 그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은 위대한 공산주의자가 카루타카란과 같은 못난 사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라잔의 일에 대해 보인 메논씨의 반응은 카루타카란의 그것보다 나를 훨씬 더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카루타카란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지만, 아츄타 메논씨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메논씨에 대한 이 기록이 많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견뎌야 했던 고통은 훨씬 더 큰 것이었다. 역사에 그를 올바로 평가하려고 하는 나를 부디 용서하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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