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6 17:31:22, Hit : 3772
 들빛회 소식지 제23호

  정의가 강물처럼
  2002년 12월  발행 제23호

  기금생각 : “불평등한 SOFA 개정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금소식
  지난 12월9일 6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 올려

  지난 12월9일 제6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이 한국일보 송현클럽에서 수상자에 대한 많은 관심과 축하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년 12월10일 전후로 열리는 시상식의 6회 수상자로 ‘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이 선정되어 상패와 함께 상금을 시상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언론과 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높지 않았던 1999년부터 현재까지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위해 활동해 온 국민행동의 활동에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지난 99년 3년 만에 만들어진 개정협상 국면을 놓치지 말고 기회에 SOFA를 개정하여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로 잡고 민족의 주권을 바로 찾고자 전국 127개 단체들이 함께 뜻을 모아 결성되었습니다. 그동안 서울과 각 지역에서 SOFA 개정 운동과 주한미군으로 인한 범죄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이 있어 왔으나 이 활동들을 보다 전국적으로 전 국민적으로 집중시켜 최대한의 힘을 갖고 추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국민행동은 국내외에 한, 미간의 불평등한 SOFA 개정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활동과 더불어, 국제 연대활동을 통해 불평등한 한미 SOFA 협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큰 공헌을 해왔습니다.
  “국민행동은 다음과 같이 SOFA 개정방향을 주장하며 다양한 사업계획을 통해 개정활동을 펼쳐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1) 개정방향
  미군기지는 현재 미군이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무상으로 영구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땅이면서도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미군기지입니다. 미군 범죄는 미군이 주둔한 1945년 9월8일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어 온 사회문제인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들 미군범죄가 거의 대부분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미 행정 협정은 31개 조항 모두 그리고 본 협정, 합의의사록, 양해사항 등 조약 전체가 다음과 같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활동할 것입니다.
  1) 미군범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수사권, 재판권, 형 집행권의 완전한 보장.
  2) 미군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확립.
  3) 미군기지 사용에 대한 한미간의 계약 체결과 기지 사용료 징수
  4)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의 확립
  5) 미군의 밀수와 미군 PX 불법유출 방지대책 마련 및 기타 미군의 특권적 지위 폐지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이자 ‘요구’이며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한미 관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협정입니다.

   2) 사업계획
  * 일상사업
  - 미행정부와 각계(의회, NGO 등)에 SOFA 개정을 촉구하는 공식문서 전달
  - 미 대사관 앞 월례집회
  - 전국적이고 통일적인 선전 활동 전개
  - SOFA 개정 및 한, 미 불평등조약 개종촉구를 위한 투쟁단 미국방문 활동
  - 국제연대를 위한 행동
  * 기획사업
  - SOFA 개정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 각종 문화행사 및 거리행사
  - 기타 사안별 기획사업


  이부술라미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4회 정의평화상 수상자 ‘이부 술라미’ 타계

  2000년 제4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였던 Ibu Sulami(이부 술라미) 여사가 2002년 10월9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부 술라미 여사는 수하르토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1965~66년 공산당 쿠데타 음모’ 사건과 ‘공산당원, 동조혐의자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그녀의 전 인생을 바친 인물이며 1965년~66년 대규모 학살 사건이 불법임을 주장하다가 1967년 양심수로 투옥되었고 20년간 수감생활ㅇ을 한 후 1987년 풀려났었습니다 1994년에 ‘1965/1966 학살진상 연구소(the Indonesian Institute for the Study fo the 1965~66 Massacre, YPKP)’를 설립하고 다른 희생가 가족 및 생존자와 함께 학살 사건 조사를 시작했고, YPKP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살 사건 진상 조사를 위한 발굴 작업에 참여했고 14개 지역에 110개 이상의 지사를 두고 활동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이부 술라미 여사는 아시아 인권운동 특히 인도네시아 여성 운동가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노동운동가로서도 혁혁한 성과를 얻어낸 바 있습니다.
  독립전사, 여성운동가, 노동운동가였던 이부 술라미 여사가 70세 중반의 고령의 나이에도 인권 운동에 대한 헌신을 중단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정의를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학순정의평화 기금은 정의를 위해 싸운 인권운동가, 이부 술라미의 업적과 희생에 존경과 찬사를 드립니다. 이부 술라미 여사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국제연대
  지학순 정의 평화기금은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떠나는 민족21기자 편으로 관심과 지원이 긴급히 요청되는 지역의 학교 및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후원금을 전달 한 바 있습니다. 지원할 지역을 찾아 주시고 방문하는데 도움을 주신 본 기금 정의평화상 5회 수상자인 ‘파키스탄 정의 평화위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원금이 전달된 지역의 실정과 영상을 글로 옮겨 알려드립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보내진 작은 마음
  - 200달러의 관심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끼니 걱정을 한다.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아도 먹을 것이라곤 풀 한 포기 있지 않다. 식수도 부족해서 먹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먼 거리의 공동 우물을 찾아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양동이 하나 채우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돌려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로 간다. 건물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그나마 잔재만 남아있는 벽을 기준으로 마당 한 구석에 몇 평 남짓한 곳을 나누어 칠판을 길게 세워놓고 뜨거운 태양 아래 모국어와 산수를 공부한다. 어떤 부모들은 학생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 교사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학교로 보내달라고 애원도 해본다.
  지난 미국의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이곳은 흡사 우리의 옛 모습의 거울을 보는 듯하다. 어찌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그리 멀지 않은 아시아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의 얘기다. 지난 7월23일부터 8월7일까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오는 동안 그 곳의 여러 상황을 취해하였고 짧은 시간이나마 그 곳 주민들의 아픔을 직접 체험 해 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와 그리 친숙하지 않은 나라다. 그러기에 모르는 것도 많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가 TV에서 본 것과 다름없이 건조한 환경의 나라다. 여름엔 저지대 기온이 43도에서 48도까지 올라가며 해발고도가 1800미터인 수도 카불은 평균 38도이다. 겨울철의 온도는 -22도에서 -26도까지 내려가며 카불의 기온은 -4도이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막지역은 연평균 100mm에서 150mm정도이다.
  동서를 잇는 소위 실크로드의 일부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대륙과의 완충지대이끼 때문에 기원전 20세기 전부터 다수의 민족 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현재의 모습이 보여주듯이 수많은 얼룩들로 드리워져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자(강은지, 민족21)가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던 중 이 곳 수도 카불에 위치한 달케키; 발크히 초등학교에 들러 그곳 학생들과 시간을 함께 했다. 그곳의 첫 인상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낙후된 시설과 교육환경이 아프가니스탄 어디와 다르지 않았지만 책상 의자 하나 없이 하늘을 지붕 삼아 뜨거운 태양 아래 모여서 마당 한 구석에 칠판을 세워놓고 교육받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비록 이국의 아이들이지만 인간으로서 가슴속 깊이 솟구치는 연민은 그 누구라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은 원래 학교 건물이 아니다. 학교 건물은 이미 모두 다 파괴됐고 그나마 조금 양호하다는 모스크(사원)에서 더부살이 정도이다. 그 곳은 1학년에서 3학년까지의 학생을 가르치는데 전쟁 통에 제 나이에 입학할 수 없었기에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반의 학생은 남녀 합반으로 약 십 여 명 정도이고 길게 늘어선 외부 복도를 다라 한두 평 정도의 공간을 나누어서 수업한다. 교무실도 따로 마련된 곳이 없기 때문에 태양을 가릴 수 있는 나무 밑에 임시 책상을 몇 개 가져다 놓고 교직 업무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우리 기금은 기자의 취재 길에 많지 않은 돈이지만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전달을 부탁드렸다. 일반 단체에 전달하는 것보다는 좀 더 확실한 도움이 되고 걸러지는 것 없이 전달되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곳의 국민들은 타 단체의 지원에 매우 목말라하고 있다. 세계적인 도움은 많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약 2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금은 달케키 발크히 초등학교엘 전달되었다. 그 학교의 교장 압둘 자히르는 도움의 손길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막막하기만 한 앞으로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씁쓸한 마음에 무언가 싶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하는 표정으로.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배가 고파서 풀뿌리를 캐먹고 우방국이 남겨놓은 음식물 찌꺼기로 국을 끓여 먹던 시절. 이제 우리의 과거를 이들이 걷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유는 다르더라도 우린 이들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우린 지금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만큼 성장하는데 오십 여 년의 세월을 힘썼다. 그들에게도 우리가 만들어 온 시간만큼만 노력하면서 세월을 기다려야한다고 말하는 일일까? 그러나 당장 병들어 죽어가는 전쟁 피해자들과 아이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나 큰 짐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었일까?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아무도 없다. 패자만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기자가 취재해 기금에 전달한 비디오의 가슴 아픈 전쟁 상흔을 보면서, 화면 속에 담긴 아이들이 표정을 바라보면서 “저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고통의 삶을 이겨내는 희망의 꿈을 꾸고 있을까? 조국을 위한 투사로써 싸워보고자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화면 속의 아이들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우리 주위의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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