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5 18:17:27, Hit : 4204
 들빛회 소식지 제14호

  정의가 강물처럼
2000년 4월 발행 제14호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사단법인 지학순정의평화기금 2차 정기총회 개최

  법인 설립 이후 두 번째 기총회가 지난 2월25일 1백여명의 회원들과 제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명동성당 별관에서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1999년 1월 법인 설립을 위한 정기총회를 가진 후 오랜 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회원님들을 만나는 자리인 만큼 설레임과 기쁨이 더 가득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날 총회는 부이사장이신 김승훈 신부님의 시작기도와 이사장이신 윤공희 대주교님의 개회사로 막을 열었습니다. 총 350명의 회원 가운데 201명(위임 115명, 참석 86명)이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는 모두 다섯 건의 안건이 심의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정관개정의 내용 중 ‘본회 법인 명칭의 변경’건이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동안 ‘들빛회’로 사용해 온 명칭이 단체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조성된 기금을 바탕으로 정의평화운동을 지원하는 단체의 성격과 지향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단법인 지학순정의평화기금’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하자는 안건이었습니다. 약간의 이견(‘주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문제)이 있긴 하였지만 대다수 회원님께서 법인 명칭 변경의 취지를 충분히 공감해 주셨습니다. 안건 심의 후 법인 설립에 보이지 않게 공헌 해 주신 분들게 감사패와 후원이사 위촉장을 증정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고 올 한 해 더욱 열심히 기금조성에 주력하자는 의지를 한데 모으며 2천년대의 첫 정기총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직접 참석해 주신 회원님들과 본회의 활동을 관심  게 지켜보며 총회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신 제 단체의 관계자 여러분께도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편지
  행복하고 슬픈 나날들
  로잘린 코스타 / 제3회 지학순주교 정의평화상 수상자

  벗들에게!
  새 천년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내려 주시길 빌려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 저와 제 가족에게는 행복하고 슬픈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로마에 가서 여러 역사적인 대성당과 카타콤 지하동굴을 찾아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많은 영감을 받았고 우리 신앙 선조들의 영적 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 같은 사람의 일생에서는 참 드믄 기회입니다. 저는 또한 파도바에 있는 성안토니오 대성당도 찾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해는 특히 제가 ‘지학순 주교 정의평화상’을 받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해가 되었습니다. 이 상은 한국의 ‘지학순정의평화기금’에서 주는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들빛회’를 통하여 저의 삶을 인정하여 주신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던 팀 신부님이 저와 함께 시상식에 참여했습니다. 사실 이 상은 제가 지난 13년간 좋은 조직(까리따스)에서 지치지 않고 봉사하고자 했던 민중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정의평화 사업 속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들을 위해 정의를 촉진하고자 했던 싸움 속에서 저와 함께 일했던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슬픈 사건이란, 지난해 9월3-일 제 남동생 가운데 하나인 스티븐 코스타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사고를 당해 가슴 아래가 다 마비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이가 넷이나 있습니다.
  사고 후 정부가 운영하는 한 병원에 실려 갔지만 불행히도 27일 동안이나 아무런 적절한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마침내 상태가 아주 나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다카로 데려와서 “마비환자 재활센터(CRP)"로 불리는 한 병원에 입원시켰고, 다카로 옮겨진 뒤 그의 건강은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에게는 친지들과 독지가들의 보살핌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네 가족은 그가 살아남았고 건강이 좋아지고 있는데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의 건강도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만 빼면 다 좋습니다. 그녀가 혼자도 돌보아야 할 손자들이 많음에도 그녀는 전혀 아무 걱정을 안 합니다. 지난 한 해는 ‘60시간 동맹휴업’을 비롯해서 야당 측이 주도한 동맹휴업이 내내 이어졌습니다. 힘들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일용 노동자와 그 가족들, 특히 수도인 다카에 사는 사람들은 동맹휴업 요구를 무시하고 일하러 나가곤 했습니다.
  동맹휴업 요구자들이 던진 폭탄으로 여러 인력거꾼과 경찰, 그리고 어린이들이 죽은 사고가 여럿 있었습니다. 야당의 요구는 현 정부를 타도하고 새 정부를 세우자는 것인데, 이는 헌법에 어굿 나는 일입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 생활이 어려운 이들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야당은 현 정부가 지난 1996년에 총선을 통해 정권을 잡은 뒤로 자신들의 요구를 대중운동을 통해 관철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들 주요 4개 야당이 주도하고 있는 이 운동은 사회 각층을 다 동참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동안 있었던 축복과 슬픔을 생각하면서, 저는 하느님께서 저와 제 가족에게 주신 축복과 은혜에 감사합니다. 저는 또한 올해 내내 많은 은사로 복 받았던 데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께서 저와 제 가족에게 많은 용기와 힘을 주시어 제 동생이 회복될 수 있기를 빕니다. 정의평화 기금의 모은 분들에게 안부와 건강을 전하며...

이사장 윤공희 대주교, 사제 서품 50돌 맞아
주님의 종으로 50년을
변연식(레지나) / 본 회 운영위원

  3월20일 본회의 이사장이신 윤공희 대주교님께서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현직에 계시면서 금경축을 맞는 경우는 굉장히 드믄 일로서 한국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서울대교구장, 모란디니 교황대사 등 교계 D니사들과 2,000여 교구민들의 축하 속에 기념 미사가 있었고, 다음날 본 회의 신대진 이사님과 정인숙 전 사무국장 등이 광주대교구청을 방문, 축하인사를 드렸습니다. 정인숙 전 사무국장의 부군께서 직접 쓰신 붓 글씨 작품을 선물로 받으신 윤 대주교님은 일일이 그 내용을 읽어보시고 기뻐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정겨웠는지 모릅니다.
  “아드님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데레사, 마리루이, 모두 잘 지냈어요?” 어떤 상황에서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자이건 여자이건 사람들을 만날 때 듣게 되는 주교님의 따듯한 목소리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연과 처지를 잊지도 않으시고 따듯한 말 한마디라도 꼭 남기십니다. 사람들은 감격합니다. 그리고 잊지 못합니다. 그 감동과 기도가 모여서 이런 경사스러운 날을 맞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새신랑(?)같은 단정함과 온화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서품 50주년을 맞으셨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군요. 주교님께 점심대접을 받으며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1949년 5월 부제 때였어요. 신학교가 공산당에 몰수되고 신학생들은 쫓겨나고 주교님, 총대리 주교님, 신부님들은 모두 납치되었지요. 신학교 시절 월반할 기회가 있었는데 하지 않았어요. 만약 그랬다면 1949년 1월 그때 세 번째 월남(두 번은 실패하고)을 시도한 지학순 주교님과 함께 남으로 넘어오는데 성공했고, 3월20일 서울에서 서품을 받게 되었어요. 살아오며 늘, 이렇게 하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사제생활 50년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지요.”
  주교님의 누이동생과 조카 딸 들은 아직 북한에 생존해 있어 미국에 있는 친지를 통해 편지왕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주교구청에서 발행한 화보집을 보니 주교님 아버님의 사진이 실려 있더군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주교님과 똑 닮은 모습의 미남이였습니다. 문득 저 아버님이 살아 계셔서 아드님의 오늘 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교님이 너무 젊어 보이셔서 금경축이 아니라 방금 사제서품식을 끝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종으로 50년을 올 곧게 살아오신 주교님. 그 삶에 깊이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
  “베트남전 양민학살, 그 악몽 청산을 위한 성금모금 캠페인”
  최초로 확인하는 한국군의 양민학살 …, 이젠 그들의 슬픔을 함께 나눌 때

  ‘한겨레21’(제3회 지학순주교 정의평화상 후원사였던 한겨레신문 발행)이 지난 1999년 10월28일부터 ‘베트남전 양민학살 악몽청산을 위한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3월27일 현재까지 모금된 성금은 7,164만949원으로 베트남전 종전 25돌을 맞는 오는 4월30일 전후까지 모은 성금으로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있었던 지역 중 한 지역을 골라 교육시설이 낙후된 시골에 학교를 세우려고 하고 있다. 현지 관계자들은 “최소한 1억원은 있어야 16개 반 규모의 학교건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겨레21’은 캠페인 성금목표액을 최소1억원(베트남 돈 10억동)으로 잡고, 남은 두 달 동안 성금모금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이번 캠페인은 여느 성금모금과는 다른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계와 재계의 인사들이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는데 그 한 예로 ‘한겨레21’이 1996년 1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전개했던 ‘정신대 할머니 온겨레돕기운동’과 비교할 때 당시 최종 모금액은 3억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 캠페인’은 다르다고 한다. 아직까지 정치권 인사의 참여는 한 번도 없었고, 웬만한 관리나 재계 인사들은 ‘베트남’의 ‘베’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치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베트남 전쟁은 우리사회에서 금기고 남아 있으며 이는 거꾸로 7,000여만원 성금 액의 가치가 여느 성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24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한 번도 한국군이 남긴 상처에 대해 전면적으로 주목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시대 일본군의 만행과 6,25전쟁 당시 미군의 학살행위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보상과 책임을 주장하지만, 우리가 가해자로 참여한 베트남전의 베트남인 피해자들에 대해선 외면으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한겨레21은 이번 기획이 정부나 시민운동 차원에서 한국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베트남 원혼들을 위로하는 실천 활동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이 작업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정리하는 한 매듭이 되리라 믿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자-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에 대한 사죄노력은 우리 사회의 위선과 야만의 부리를 송두리째 캐내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을 돕는 일만큼이나 중요할뿐더러, 정신대 할머니 돕기 운동에 비해서도 결코 그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이 역사적인 첫 발걸음에 큰 힘을 주십시오”라며 호소문을 보내왔다. -한겨레21 베트남양민학살성금모금 담당자-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은 41,400여명의 적군을 사살하였다.그러나 이 밖에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공식적인 통계로는 집계된 적이 없는 베트남 양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베트남 문화통신부에서는 -아직 불완전한 통계라는 단서를 달고 있긴 하지만-한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양민의 수를 대략 5천여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살현장의 주민들은 이 수치를 신뢰하지 않으며 정부가 정확한 진상보상에 소극적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숫자가 어떤 지역에서는 베트남 문화통신부가 공인한 수치의 배를 넘어서기도 했다.”  -한겨레21 기사 가운데-

  한겨레21의 호소와 같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에 대한 관심과 도의적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의 작은 참여부터 의료진(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베트남 현지 무료진료까지 그들을 돕고 있는 많은 분들의 사연을 접했스니다. 지면상 베트남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각각의 사연을 다 소개해 드리지 못하고 본 회에 보내온 많은 내용 중 요지만 추려 소개를 드립니다. 함께 돕고자 하시는 분은 보내드리는 지로용지 비고란에 회비와 구분하여 보내주시면 모아서 전달하겠습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모든 분들이 함께 모으며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결과는 이후 소식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보자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신 분은 사무국으로 연락주십시오. 관련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천주교 총선연대 발족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천주교 72개 단체가 “도덕적인 힘으로 정치 공동체가 더 이상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는 취지로 ‘올바른 선거 참여와 국민주권회복을 위한 천주교 총선연대’를 결성(2월23일) 총선시민연대 등 정치개혁 흐름에 동참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천주교 총선연대는 발족식 이후 올바른 선거 참여와 국민주권회복을 위한 토론회와 시국미사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천주교 총선연대가 벌이고 있는 기존 선거법의 개정과 공천 부적격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과 광고 기금 모금을 위한 선언운동에는 이미 1만 명이 참여하는 등 서울, 수원,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각 본당과 단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인 선언자 명단은 신문광고와 함께 실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편 지난 3월10일에는 3개 종교 총선연대가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명동 가톨릭회관 3층에서 천주교, 불교, 기독교 총선연대가 참여하여 ‘현 시국에 대한 종교인 공동성명’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며 “낡은 정치와 정치 불신을 가져온 우리 종교인부터 참회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3개 종교인 총선연대는 3월13일 국민주권회복을 위한 시국미사(천주교)를 시작으로 3월16일 새 정치 실현을 위한 연합기도회(기독교), 3월25일 지역감정 추방을 위한 법회(불교)를 함께 개최하면서 지속적인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천주교 총선연대는 관심 있는 분들의 자원봉사 참여나 선언 및 기타참여를 위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우리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택하신 예수님과 함께
최기식 신부 / 본회 상임이사

  회비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회원님!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정의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우리들은 불의에 눌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주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벗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정의와 평화의 일꾼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말로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체적 실천 과제가 자기 앞에 놓여지면 비굴한 변명을 하며 그것을 피하게 됩니다. 교황님이 사과했듯이 교회역사가 그랬고, 오늘의 지도자들이나 교회의 책임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뜻과 정성이 함께 할 때, 그것이 아무리 미소한 것이라 해도 하늘나라를 이루고 평화의 왕국을 이루는 힘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성을 보내시고 함께 해 주심을...인간의 존엄성을 세우고 평화를 이루는데 힘이 되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부탁드립니다. 더 많은 동료도 만나주시고,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하느님의 음성이 되도록 권장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아름다운 뜻을 보시고 하시는 모든 일과 가정에 더 크신 축복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운 것과 옳은 것
  식 / 시인, 당대비평 편집위원, 도서출판 삼인 주간

  아주 가끔씩 들추어보는 마음의 사진첩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시린 시절이지만 또한 가장 소중하기도 한 1980년대 어느 시기에 남겨진 기억의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제 마음의 사진기가 워낙 성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사진들이 흐르고 두서가 없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때 제가 있던 곳은 감옥 안이라서 풍경이 단조롭고 삭막하기조차 합니다. 대구 교도소 병사동. 그곳은 최수들 중에서도 병든 사람들을 모아둔 곳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망가지고 부서진 인생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진 난지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몇 년 살다보면 그곳인들 어찌 정들지 않겠습니까? 눈 내리던 겨울의 줄무늬 죄수복을 걸친 야위고 창백한 결핵 환자의 얼굴을 떠올리면 제 귀는 지금도 그 사람들의 거친 기침 소리를 듣습니다.
  그때는 기침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리를 몹시 절고, 언어 장애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던 한 어린 죄수의 얼굴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마 처음부터 저는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존재는 너무 하찮은 것이어서, 일도 못하고 돈도 없던 그는 다른 죄수들에게 구박덩이였습니다. 저 역시 지나칠 때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인사를 건네는 그가 단지 신기하거나 귀찮을 뿐이었습니다. 그 무렵은 옳은 일을 위해 싸우다 들어온 사람들로 감옥 안이 넘쳐나던 시절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라고 믿는 제게 그는 다만 동정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그가 다른 교도소로 떠나게 된 날이었습니다. 평소 그를 구박하던 같은 사람들이 그의 징역보따리에 치약이며 화장지며 건빵 등을 넣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일일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 어린 죄수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고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는 것을 보며 그때 제가 받은 충격을 어지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나의 큰 외침보다 그들의 망가진 삶 속에 깊이 든 정이 더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가슴을 멍멍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옳은 생각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옳은 것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틀리고 어눌해도 아름다운 사람이 오래 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 요즘 현실이기도 합니다. 연민이 아니라면,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세상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기억하는 제게 남은 거의 유일한 교훈입니다. 마음의 사진첩에서 한 장의 빛 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공연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립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따듯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50  들빛회 소식지 제24호  justice 2007/01/16 3906
49  들빛회 소식지 제23호  justice 2007/01/16 4041
48  들빛회 소식지 제22호  justice 2007/01/16 4072
47  들빛회 소싲지 제21호  justice 2007/01/16 4430
46  들빛회 소식지 제20호  justice 2007/01/16 4077
45  들빛회 소식지 제19호  justice 2007/01/16 3899
44  들빛회 소식지 18호  justice 2007/01/16 4306
43  들빛회 소식지 제17호  justice 2007/01/16 4145
42  들빛회 소식지 제16호  justice 2007/01/15 4212
41  들빛회 소식지 제15호  justice 2007/01/15 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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