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5 19:57:02, Hit : 3814
 들빛회 소식지 제16호

  정의가 강물처럼
  2000년 8월  발행 제16호

  올 추석(9월13일) 지학순정의평화기금 특별공연 인순이 콘서트 열려

  지난 2월 총회에서 2천년도 기금모금사업의 하나로 계획했던 콘서트가 오는 9월13일 세종문화회관 대 강당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일정 속에서 준비된 이번 공연은 많은 분들의 협조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본 기금의 취지와 목적을 공감하며 어려운 가운데 콘서트의 협찬사로 함께 해 주신 (주)잠뱅이, 코스산업(주) 측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주식회사 잠뱅이(청바지, 의류 등)는 이미 일정의 이익금을 사회복지시설 등에 꾸준히 돕고 있으며 보스코산업 또한 본 기금은 물론 교회 내외의 의미 있는 일에 함께하고 있기에 그 감사의 의미가 더욱 큽니다. 그 밖에 대관에 협조해 주신 세종문화회관 측과 교회 내, 외의 언론, 방송사의 협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 공연에 출연 협조를 해 주신 인순이씨가 있습니다.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는 가창력과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어 왔던 인순이씨의 이번 공연은 특히, 본 기금에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정 해 그 의미를 더욱 풍성히 해 주고 있습니다. 인순이씨는 지난해(1999년 5월) 미국 카네기홀 콘서트를 통하여 세계 공연계의 찬사 속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또한 트로트와 블르스는 물론 댄스곡과 소울, R&B, 재즈 등 대중음악의 전 장ㅡ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인순이씨는 이번 공연에서 우리 고유의 판소리까지 새롭게 선보일 듯 하여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노래인생 22년의 모든 열정과 끼를 발산하고자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인순이씨의 콘서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추석연휴를 맞아 모처럼 즐겁고 의미 있는 한 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일시 : 2002년 9월13일(수) 오후 3시 / 7시(2회)
  ●  전화예매 : 티켓링크 1588-7890
  ●  공연문의 : 02-2266-7001 / 2265-7940  사)지학순정의평화기금



  국제현장 스케치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미얀마는 여전히 공포의 땅
  12년 전 오늘 미얀마 랑군(앙곤)에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 ‘8888민중항쟁’과 군사정권의 유혈진압이 있었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미얀마는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공포의 땅이다. 군사 정권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는 최고 20년형 팩시밀리나 모뎀을 허가 없이 소유하는 것은 15년형에 해당될 수 있는 ‘범죄’다. 군사정권의 입맛에 따라 그날그날 바뀌는 훈령이 있을 뿐,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회도 없다. 반면 1988년 18만에 불과했던 군대는 현재 40만 명으로 증강됐고, 올해 말까지 50만 명으로 늘린다고 한다. 미얀마는 강제노역에 따른 노동착취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임금은 시간당 100원으로 한 달에 1만원이 안 된다. 국제노동기구는 미얀마의 독재정권을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강제노역 실태를 고발했다.
  영국의 미얀마켐페인(www.burmacampaign.org.uk)은 이런 군부독재를 지탱시켜 주는 외국인 투자를 막기 위한 운동이다. 이 단체의 노력으로 텍사코, 펩시, 리바이스 등 초국적 기업이 미얀마에서 철수하거나 투자를 중단했다. 영국의 프리미어 오일과 프랑스의 토탈 오일등은 여전히 미얀마의 가장 큰 주자자로 남아있다. 또 자유버마연합(www.freeburmacoalition.org)은 군사정권이 유엔에서 미얀마 민중을 대표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희극임을 주장하며, 두 차례에 걸쳐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명했던 것처럼 유엔 총회에서 미얀마 군사정권을 제명할 것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권과 국제연대 사업을 하는 한국의 N해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www.freeburma.or.kr). 난민샤린과 미얀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의 힘겨운 싸움은 이제 인권을 향한 우리들의 싸움이다. 연대는 그들의 싸움에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싸움이 우리 싸움임을 가슴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56차 유엔인권위원회 참관기
  최은아(안젤리카)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지난 3~4월사이 6주간에 걸쳐 진행된 56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관한 인권활동가의 글입니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다뤄졌던 내용들을 분야별로 나누어 상세하게 보내주셨으나 지면상 다 실을 수 없어 일부만 싣습니다. 자세한 내용(전문)은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www.justice.or.kr)

  제네바와 유엔
  레이먼 호수를 끼고 도시가 형성된 제네바는 종교개혁의 사상가로 유명한 루소가 태어난 곳이다. 제네바는 개신교의 로마라고 불리는데 1536년경 칼빈 등이 25년 동안 프로테스탄티즘을 설교하던 곳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구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은신처로 이 도시를 선택하여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혁신적인 사상에 관대했던 이 도시의 기풍이기도 하고 따라서 볼테르, 바이런, 레닌까지 이곳에 찾아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아마, 그래서인가! 지금부터 50년 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끔찍한 살육을 경험한 인류가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는 그 출발을 이곳으로 삼았는지...
  제네바는 유엔, 국제노동기구 등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기구와 국제민간단체들이 본부를 두고 있다. 유엔 정문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넓은광장에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아주 큰 나무 의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일병 “부러진 다리(Blroken Chair)".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가운 ‘전쟁’이란 상황에서 지뢰 등 소형무기로 다리나 팔이 잘려나간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크기는 대략 서울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를 연상하면 된다. 또한 이 광장은 종종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집회장소로 이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유엔인권위원회기가 열리는 동안 인권이슈를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거나, 플랭카드를 내걸기도 한다.
  
  제56차 유엔인권위원회 개막
  올해 56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3월20이부터 4월30일까지 6주 동안 진행되었다. 보통 첫날은 의장단을 선출하고 주요 의제들을 채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역별 순환 원칙에 따라 올해는 Shambhy Ram Simkjada 네팔 대사가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주요 의제를 채택했다. 보통 회의진행 방식은 어떤 의제에 대해서 유엔의 전문가나 특별보고곤이 발언을하고 그 문제에 대해 국가가 발언을 하고, 이 때 국가 간에 비판과 공격이 이루어지면 다시 반박권을 행사 해 반론을 펴기도 한다. 또한 유엔에 협의자격을 가진 민간단체가 발언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유엔은 기본적으로 국가 간 조직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 한계가 극명하다. ‘인권’을 앞에서 ‘국익’을 수호하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총만 안 들었을 뿐이지, 전쟁터나 다름없는 양육강식의 논리가 유엔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또한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한 나라라면 말로는 ‘인권옹호’에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들의 발언만 듣고 있으면, 전 세계에 평화만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수사 뒤에 가려진 끔찍한 인권유린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국가들을 일깨우고 있는것이 민간단체들의 활동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은 광범위한 정보력과 독자적인 조사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에 대해 생생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인권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국가들이 애써 숨기려하는(전 세계)인권현황을 민간단체들이 발언할 때, 나는 정말 우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 같은 것이 내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지만 이렇게 편안한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죽어가는 사람들, 부상당하는 사람들, 고문당하는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중략-

  다시 인권, 인권운동을 생각하며
  5월초 유엔 고등판무관실에서 근무하는 어떤 선배의 집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었다. 정갈하고 따스한 저녁식사는 6주간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그 선배가 내게 물었다. 6주간의 유엔인권위원회 모니터는 어땠냐고 “인권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많이 느꼈어요. 어쩌면 제가 하는 인권운동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의 혹은 가진 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제가 얼마쯤은 무정부주의자나 냉소주의자가 된 것도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지난 6주간 저를 지켜준 힘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며 운동하고 있는 인권활동가를 만났다는 거예요. 그들이 제게 준 떨림은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선배는 말을 이었다. “제네바에 오긴 전 사실 얼마쯤 예상한 것 아니었니! 그래서 네 고민이 한국의 인권운동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나, 선배의 바람 데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현장스케치
‘새만금 간척사업 즉각 중단하라!’
우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합니다. 그 이후로…

  아름답고 소중한 갯벌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남겨질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소식지에 함께 보내드린 ‘새만금 간척사업반대’ 서명운동에 많은 분들이 참여 해 주셨습니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서명한 용지가 fax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서툰 한글로 한자 한 자 적어주신 외국 신부님, 본당에서 서명을 받아 주신 회원까지... 우리 모두의 소중한 갯벌을 지키자는데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전북사람들’게 큰 힘이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민간조사단에서 새만금 갯벌에 대한 다양한 조사를 하고 있고 8월 말경 조사 자료를 기초로 새만금을 지키기 위한 더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서명을 시작으로 꾸준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본 기금에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가 필요한 부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전북사람들’ 앞으로 격려편지를 보내준다면 더 힘이 나겠죠?


  원주교구에서 지학순(다니엘) 장학회가 만들어져

  지난 7월1일 원주교구 가톨릭센터에서 지학순(다니엘) 장학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교구 설정 35주년이 되고 새 천년기를 맞은 지금에도 이웃의 따듯한 도움 없이는 면학의 꿈을 포기하여야 하는 젊은이 들이 많이 있음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초대교구장이신 지학순(다니엘) 주교의 숭고한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고 도시, 농촌, 어촌, 광산촌을 비롯한 모든 지역을 이끌어 나갈 훌륭한 인재양성을 위해 장학회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장학회는 천주교 원주교구 초대교구장인 고 지학순(다니엘)주교의 정의화 평화, 그리고 섬김과 나눔을 통한 사랑의 정신을 이어 나가며 아울러 지역 사회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구제적인 사업으로 장학금 지원 사업, 장학사업의 설치사업, 장학사업을 위한 조사, 연구 및 홍보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법인설립에 필요한 제반의 준비를 갖춘 후 2001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장학금의 목표는 단기로 보며 3억원이며 장기적으로는 10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조성은 회원의 회비와 출연금(교구 내 본당), 보조금(교구청의 지원보조), 헌금(본당, 공소) 독지가 후원금 등으로 보고 있다. 장학회는 가톨릭교회는 물론 종파, 지역, 직업 등과 같은 한계를 초월하여 큰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모든 분들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소식
  오는 9월22일 ‘천주교 시민운동학교’ 열려
  오는 9월22일부터 한국 CLC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천주교 시민운동학교’가 열린다. 천주교 시민운동학교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대한 복음적 이해를 통해서 영성적 시민운동을 정립하고, 이런 전망을 갖는 시민 사회 활동가를 양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런 바탕 위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과 한국 천주교회 내의 역량을 새로운 전망위에서 키워가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다. 또한 천주교 사회사목 단체들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제 단체들이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시간, 재정, 인력) 양성과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볼 때 정의평화를 위한 활동가들의 양성과 새로운 전망을 담아내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이 이번 시민학교를 열고자 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천주교 시민운동학교’를 통해서 기존의 천주교 사회사목 단체들이 새로운 모색을 해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바램이다.

  총 1년 과정의 일반, 전문강좌로 나뉘어 진행된다.
  주    최 : 한국CLC, 천주교인권위원회
  주관단체 : 한국 CLC(국제가톨릭 NGO 한국지부)
  일반강좌 : 교회와 시민운동, 시민운동의 이해, 시민운동의 실제 등
  일    시 : 9월22일 시작 : 매주 금요일 저녁 7시20분~9시30분
  전문강좌 : 시민사회운동, 시민사회단체 등
  일    시 : 2001년 3월23일 시작 매주 금요일
  강좌문의 ; 천주교인권위원회 02-777-0643  한국CLC 02-705-8263
  홈페이지 : www.justice.or.kr
  정의평화기금 조성을 위해 애써 주시는 모든 분들의 홈페이지가 개설되었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한글과 함께 국재 정의평화 운동을 알리는 영문사이트도 가동하였습니다. 국내, 외를 비롯하여 드러나지 않게 정의평화의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의 숨은 이야기와 기금조성에 참여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과의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금의 조성과 조성된 기금이 적절한 운용을 위하여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랍니다.

  2천년 ‘제4호 지학순주교 정의평화상’ 공고
  사단법인 지학순정의평화기금-들빛회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정의평화기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조성된 기금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여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원활동 역시 또 다른 정의평화의 실천이라 믿으며, 97년부터는 불의한 구조 속에서도 억압과 분쟁, 갈등의 해결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용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학순 주교 정의평화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순수민간기금의 조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국내 최초의 국제인권상이라는 차원에서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며, 이와 같은 상의 취지에 맞는 수상후보자를 추천 해 주십시오.
  추천서는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사용하시거나 사무국으로 연락주십시오. 02-2266-7001
  200년 시상일장
  후보자 추천 및 접수 :6월26일(월)~ 7월31일(월)
  1, 2차 심사(심사위원회) : 8월~9월
  수상자 확정 및 발표(시상위원회) : 10월
  시상식 : 12월8일(금)


  금강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통일의 환(幻)
  지현만 /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 사무국장

  몇 개월에 걸친 모집과 준비를 거쳐 379명의 금강산 통일기행 순례단은 드디어 금강호에 올랐다. 과거 냉전의 시대에 ‘동토의 땅’, ‘침묵의 교회’ 등으로 표현되며 멀고 높은 장벽으로만 다가오던 북녘 땅이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과 기업과 민간단체를 통한 꾸준한 교류 등 이제 통을 향한 장정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50년 만에 남북정상이 만나던 때의 뜨거운 감격이 아직도 되살아온다.

  첫째 날
  7월11일 새벽이 어슴푸레 동터오고 있다. 명동성상에 6시에 도착하니 금융노련 사람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입구 계단)를 가득 메우고 있고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는 바닥에 누워 있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아마도 전날 밤을 세 운 듯 했다. 간혹 어린애를 업고 있는 여자들도 있어 내심 미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들었다.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니 몇 분이 이미 도착해서 성당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성당에 들어가 이번 통일 기행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나름대로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인가 다짐해 보았다. 서울을 출발한 후 4시간여를 달려 동해항에 도착, 금강호에 승선하였다. 방 배치를 받고 침대에 누워 어떤 모습으로 이번 통일기행이 다가올까 상상해 본다. 그러면서 몇 가지 결심을 하였다. 물론 관광객이 아닌 행사 진행자 차원에서의 참여라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서 뜻 깊은 기행이 될 수 있도록 재차 다짐하였다. 잠시 후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방북교육 후에 갑판 위로 올라가니 검은 연기를 힘차게 내뿜으며 육지를 멀리한 채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배의 뒷면 7층 갑판위로 가니 한참 아래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바닷물이 배의 움직임에 따라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가 합쳐지곤 했는데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를 보는 듯 소름을 끼치게 한다. 저녁식사 후에 드디어 통일기행 첫 날 미사를 봉헌하였다. 항해중인 배 안에서 드리는 미사의 묘미 또한 색다르다. 배의 움직임에 따른 진동이 미사 중에도 계속 발밑에 느껴진다. 모두 한마음으로 통일의 염원을 담아 기도를 드리며 함께 손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엄숙하고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함께 불렀다.

  둘째 날
  일출과 함께 눈을 떴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바다 위로 아침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맞는 아침 햇살은 더욱 강렬하다. 이제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북녘 땅에 발을 딛게 된다. 모두들 내심 긴장하는 눈치다. 갑판 위로 부리나케 올라가서 밖을 보니 장전항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배낭을 메고 드디어 출발…세관까지 약 1킬로미터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첫 번째 북한 사람을 만났다. 북한 군인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길 양쪽에 서 있었다. 얼굴이 햇빛에 많이 그을렸고 긴소매차람이어서 무척 굳어 보였다. “뭐하지 마라, 뭐가 없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이라도 이상 생기면 못 움직인다, 사신은 절대 금지구역에서 찍지 말라”는 등 계속 제약적인 말만 들어온 터라 세관이 가까워 오자 모두 잔뜩 긴장하는 눈치다.
  드디어 세관을 통과 모두 금강산 행 버스에 올랐다. 우리 동포인 조선족 버스기사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1차 도착지인 온정리 휴게소로 가는 중에 창밖으로 여기저기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평온한 모습이지만 그곳에도 관광객과 마을 사이에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다.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다니는 모습이 보이고 이따금씩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달려가 손잡고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뜨거운 인사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첫날은 만물상 코스 등반- 망양대와 천선봉 두 코스를 등반하였다. 만물상은 가히 신의 작품이라 할 만큼 각양각색의 동물 형상과 마치 여러 폭의 아름다운 병풍을 확대시켜 놓은 듯하여 모두 그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사이로 구름이 몰려다니며 그 병풍을 이리 저리 흔들어 그 모습을 더욱 형형색색으로 변화시켜 놓는다. 한참을 땀을 흘리며 망양대에 올라가니 바람이 매우 거세다. 멀리 삼일포가 내려다보이고 일만 이천봉이라는 금강산의 봉우리들 중 외금강의 봉우리들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산길, 천선대 밑에서 약수 물을 두어 컵 들이키니 새로운 힘이 솟는 듯하다. 이제 북측 안내원들과도 물을 권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버스에 올라 잠간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금강산 온천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시장기 때문인지 모두들 곰탕 한 그릇을 부리나케 해 치우고 온천으로 들어간다. 온천은 여러 개의 탕으로 이루어져 있고 노천탕까지 곁들여 있어 쇼 윈도우 밖으로 비로봉을 비롯한 여러 개의 금강산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어 경치를 감상하며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셋째 날
  눈을 뜨니 다섯 시 오십분, 피곤했던 탓인지 해돋이도 못보고 아침을 맞았다. 장전항의 모습이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금강산 관광 마지막 날로 구룡폭포를 가는 날이다. 구룡폭포는 코스가 전날보다 길었지만 등산로가 완만하고 계곡에 물이 많아 시원한 느낌을 주었고 주변 봉우리들이 어제 만물상과는 또 다른 형태의 장관을 이룬다. 중간에 위치한 삼록수는 산삼과 녹용이 섞인 물이라 하여 김일성 장군이 직접 이름 지어주었다 한다. 백옥 같은 물과 아름다운 폭포의 비경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과연 선녀들이 내려와 놀다갈 법하다. 폭포의 형태도 산봉우리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있는가 하면 가늘고 긴 형태의 신기한 모습의 폭포도 있었다. 구룡폭포는 전날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해져 더욱 웅장해 보였다. 마음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모두 풀려나가는 듯 그 높이와 물줄기와 소리가 시원함을 절로 느끼게 했다. 모두 시장기를 느끼는 탓인지 서둘러 하산했다.
  휴식 후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하였다.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눈물과 박수소리가 공연장을 뒤덮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뜨거운 동포애로 하나가 된 듯하였다. 저녁 무렵 금강호로 돌아와 마지막 날 미사를 봉헌하였다. 미사가 시작되며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에 맞춰 장전항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낮에 북측 안내원은 “가을에 날씨 좋을 때 또 한 번 오시라요”라며 하던 인사를 떠올리며 침실로 돌아와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되뇌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를 드려본다. 어렵사리 구축된 남과 북의 교류와 신뢰의 끈이 더욱 튼튼해져 통일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으면… 지주교님께서 1983년 실향민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깊은 잠으로 빠져드는 순간 커다란 회오리가 일며 남과 북을 갈라놓은 155마을 동에서 서로 휘감겨 사라지고 있었다.







49  들빛회 소식지 제23호  justice 2007/01/16 3589
48  들빛회 소식지 제22호  justice 2007/01/16 3688
47  들빛회 소싲지 제21호  justice 2007/01/16 4006
46  들빛회 소식지 제20호  justice 2007/01/16 3599
45  들빛회 소식지 제19호  justice 2007/01/16 3505
44  들빛회 소식지 18호  justice 2007/01/16 3935
43  들빛회 소식지 제17호  justice 2007/01/16 3756
 들빛회 소식지 제16호  justice 2007/01/15 3814
41  들빛회 소식지 제15호  justice 2007/01/15 3807
40  들빛회 소식지 제14호  justice 2007/01/15 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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