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6 14:59:15, Hit : 4125
 들빛회 소식지 제17호

  정의가 강물처럼
  2001년 12월 발행 제17호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은 그 희망을 하나하나 이루어 갈 것입니다.
  윤공희 대주교 / 본회 이사장

  전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한 콘서트에 함께 해 주시고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작년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소식을 전했던 것이 바로 얼마전인 듯 싶은데 두 번째 공연도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조로 잘 마쳤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마음은 늘 새롭지만 부족한 모습도 보이게 됩니다. 다소 흡족하지 못한 면도 있겠으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섯 번째 시상식을 준비했습니다. 이 상 또한 콘서트 못지 않은 후원회원님들의 사랑과 정성이 필요한 행사입니다. 5회를 맞기까지 늘 함께 해 주신 것처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는 인사만 드리게 되어 죄송스러우나 함께 해 주신 덕분으로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힘을 보태어 드릴 수 있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애써 준비하는 콘서트와 시상식은 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한 작은 노력일 것입니다. 올해로 두 번째 열린 콘서트가 해를 거듭하여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는 따듯한 공연으로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지학순정의평화상’이 오랜 고난 속에서 불의에 외롭게 맞서는 사람들에게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과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은 그 희망을 하나하나 이루어 갈 것입니다. 한 해동안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을 위하여 일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빌며, 2001년 총회에서 다시 얼굴 뵙고 감사와 축하의 자리를 갖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일인 오는 12월10일 “제5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 열려”
  -수상자로 파키스탄 정의평화위원회 선정-
  지난 10월 제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에 추천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초조사 이후 서류심사와 함께 후보자 주변을 통한 간접 조사방식으로 진행된 심사에 이어 11월15일 최종심사를 통해 후보자를 선정하였다. 시상식은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10일(수) 오후 6시 송현클럽에서 진행되었다.
  단체명 : 파키스탄 정의평화위원회(NCIP : National Cimmission for justice & Peace)
  설  립 : 1985년 11월
  성  격 : 인권기구

  수상자를 선정하며
  ‘파키스탄 정의평화위원회(NCJP)'는 이슬람 문화권인 파키스탄의 극심한 종교차별 법 제도 하에서 지난 16년동안 불공평한 법 적용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으로 법 개정을 위한 소송 활동을 해왔다. 이 체제하에서 소수 종교인들은 투표권한은 물론 평등한 법 적용 및 보호가 불가능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직, 간접적으로 종신형, 심지어는 사형에 이르는 등의 극심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다. NCJP는 이에 저항하여 수년간 항의집회, 세미나, 국제연대활동을 벌여 불평등한 법 시행을 저지하였다. 목숨을 건 피해자들의 구명활동을 통해 인권의 중요성을 호소해 온 NCJP는 파키스탄의 인권을 지키는 중대한 조직이며, 모든 이들에게 정의와 평화에 관한 양심의 소리를 전하는 귀감이 되었다. 보다 정의로운 인권과 평화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그들의 활동에 작은 힘이 되고자 ’파키스탄 정의평화위원회(NCJP)'를 제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수상자로 선정하였다.
  2001년 12월10일 세계이권선언기념일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위원회

  파키스탄의 인권기구 NCJP
  NCJP는 1985년 비영리, 비정당 인권단체로 파키스탄 가톨릭 주교회의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인 파키스탄에서 비 이슬람인들에 대해 가해진 차별과 압제, 불평등한 법제도 적용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NCJP는 이에 맞서 특별히 소수종교인을 위한 변호와 그에 따르는 활동을 벌여왔다. 불평등한 법 제도에 저항할 수 있는 특별한 민간조직이 없는 현실에서 정의평화위원회는 파키스탄의 인권기구로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보호막이었다.

  인권문제와 NCJP의 역할
  1986년부터 현재까지 노예 노동자들과 그들의 재활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농업노동자의 사례
  노예노동자는 자유주의적 해석으로 본다면 채무구속(노예)으로 규정되어진다. 노예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와 폭력은 때로는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였고, 고용주에 의한 절도와 다른 범죄를 범행하는 잘못된 일에 연류되어 고초를 겪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하였다.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성적 추행과 강간을 당했으며 모든 노동자의 가족 구성원(남성, 여성, 어린이)도 노예 노동자의 규정을 그대로 받는 등 가족까지 종속되어 있었다.
  NCJP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왔고, 세미나와 학습, 개인적인 면담을 통한 피해자와의 연대를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게 하는 계몽활동을 벌이며 다른 조직과도 네트웍을 만들었다.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종교차별화에 대한 저항
  NCJP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국내의 소수 종교인들의 소송을 항변해왔고, 계약노동자들과 그들의 복직을 위한 변호를 해왔다. 1992년에는 신분증에 종교란을 포함시키는 정책에 저항하는 운동을 이끌어 파키스탄 내에서의 종교차별화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신분증에 종교란 포함(1992)
  정부는 1992년 9월 신분증에 종교란을 포함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는 다른 차별과 압제하에 있었던 소수 종교인들에게 종교차별까지 되어지는 것으로 이 일은 거대한 저항을 일으켰다.
  NCJP는 이 문제에 대항하여 계몽운동과 함께 변호 할동을 시작하였고 1992년 9월 표면화된 이 문제와 관련 NCJP는 10월 이후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더불어 서명운동, 전국적인 포스트 캠페인, 기사화, 언론, 작업, 집회, 가두행진, 단식투쟁, 파업투쟁 등이 준비되었으며,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결국 정부는 1992년 12월23일 국회를 열고 종교차별을 막는 강한 조치를 내렸으며 이는 파키스탄 인권운동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유권자분리
  이 종교차별화에 맞선 대응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다. NCJP는 정부에 의한 종교차별의 독특한 예로서의 ‘유권자분리’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벌였으며. 그 성과로 2000년 1월에는 지역구 최근 선거에서 소수자들을 고려하는 조정이 있었다.
  1985년 Zia-Ui-Haq 장군은 유권자를 분리하는 법을 시행했다. 이 체제하에서는 소수 종교인들은 회교도 후보에 투표 할 수도 회교도 선거에 후보로 나올 수도 없다. 유권자분리는 신앙에 기초한 차별정책이었다. 유사하게 현 정부에 의해 계획되어진 이 안은 회교도 선거인은 오로지 회교도 후보자를 투표하고, 반면 비회교도 후보자와 선거인들은 그들의 종교에 따른 후보자에게만 투표할 수 있었다. 이 유권자 분리 시스템은 종교적으로 편협하고 제한된 투표선택을 부추겨 파키스탄 시민을 분리,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선거권 복구를 위한 투쟁은 2000년대에 더욱 활발해졌다. 현정권이 유권자 분리 체제하에 지역구 선거를 공표하였을 때 NCJP는 다른 기독교 조직들과 국내 선거법 철례를 위해 투쟁하였고, NCJP의 주도아래 벌였던 1년여의 막대한 활동은 보다 효과적으로 종교적 소수자 조직의 변호와 대중을 움직이는 결과로 드러나게 되었다.


  천주교 사회사목 활동가들의 친교와 연대의 장 열려
  -10월19일~21일, 충북 청원 안중근학교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10월19일~21일까지 충북 청원군 안중근 학교에서 제2차 ‘천주교 사회사목 활성가 연수회’가 개최되었다. 연수회는 교회내에서 개별적으로 사목활동을하고 있는 활성가들의 친교와 연대를 기본으로 사회사목의 내, 외적 어려움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극복방안과 공동의 실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본 기금은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의 토대이며 뿌리인 교회 내 정의평화 활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가톨릭사회사목활성가 연수회’의 지속적인 개최와 발전을 위해 후원하였습니다. 또한 곧 발간될 가톨릭 정의평화활동 편람 작업에 함께하여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발굴, 지원하고자 하는 본 기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맞는 천주교 사회사목 활성가 연수회는 우리 신학연구소,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인천정의평화위원회, 한국 CLC,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대안경제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예수살이 공동체등이 공동주최하고 지학순정의평화히금에서 후원하였다. 부산, 광주, 수원, 청주, 원주, 인천, 서울 등 전국에서 사회사목을 맡고있는 활동가(사제, 수도자, 평신도) 약 40여명이 참석했으며 2박3일동안 강의와 세민, 그룹토론, 실태조사보고, 현안토론과 전망공유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첫날 이무술(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선생의 ‘교구의 사회사목부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었고, 둘째 날 ‘활동가 영성수련과 양성방안 모색’에서 박현준(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사회사목 활성가들의 영성의 중교성과 의미에 대해 피력했다. '비영리단체 경영의 관점에서 본 사회사목‘을 강의한 최정철박사(경영학)는 사회사목 단체를 경영진단의 방법을 통해서 분석해 보고, 전망을 보다 체계적으로 세워가야 함을 역설했다 ’사회사목단체 실태조사‘를 보고한 신광식 사무국장(한국 CLC)은 55개 주요 사회사목 단체의 실태조사를 보고하면서, 재정, 활동가, 활동영역, 회원확보에 있어서 사회사목 단체들의 어려운 실태를 보고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모색과 현안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 그 동안 모아진 자료를 묶어 사회사목단체 편람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마지막 날 선배님으로 참석해 주신 김상덕회장(가톨릭 농민회장)님은 활동의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활동가들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갖추어야할 덕목을 제시해 주셨다. 총평과 종합토론을 통해 사회사목 활동가들이 이런 연수를 통해서 재충전되고 정보와 전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사회사목 분야별로 긴밀하게 연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는 보다 폭 넓은 참여를 위해 일정을 앞당겨 6월에 개최하기로 했으며, 활동가들의 재충전과 교육을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해 갈 실무진을 선임했다.


  삼색공연을 보고나서
  지선희 / 본회 회원

  힐튼호텔에서 기금마련 콘서트가 열렸다. 김창완, 양희은, 장사익 3인의 합동공연이었다. 원래 다른 장소였으나 급작스레 장소를 옮긴 탓인지, 힐튼호텔의 공연 홀은 음악회를 관람할 충분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들 기금 사업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모여서인지 별 불만 없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70년대 지학순주교님이 치열하게 유신정궈을 반대하고 있었을 당시에 ‘아침이슬’과 같은 노래로 우리들을 포근하게 달래주었던 양희은씨와 70년대 말 대학가요제에 등장하여 80년대 한국 가요흐름의 한 획을 그었던 ‘나 어떡해’의 김창완씨(그는 요듬 TV에서 자주 구수한 이웃집 아저씨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6살 창준이는 콤미아저씨로 부른다), 그리고 늦깍이 데뷔를 한 듯한 너무나도 토속적인 구수한 창법의 장사익시(그는 공연 중에 여러 번 겁(?)도 없이 지주교님을 교주님이라고 부르는 베짱을 보였다)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잘 조화된 3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미남인 감창환씨의 순진한 얼굴과 맑은 미소에 아줌마 부대는 열렬한 호응으로 답했고 무대의 열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두 번 째로 등장한 양희은씨는 여전히 관록 있는 목소리와 50대 아주머니의 여유로움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과 같은 금지곡을 양산하면서 많은 고생을 한 양희은씨인 만큼, 사회적 양심세력의 큰 축을 이루었던 지학순주교님을 기리는 이번 공연에 임하는 감회가 남다르리라고 생각해본다. 함께 찬조 출연한 국악인의 창 소리도 너무나 애절해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등장한 장사익씨는 십 여분동안 장소를 잘못 찾아 늦은것처럼 연출하여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시고는 그 사이 국립국악원 교수님의 구수한 입담과 북춤을 선보여 주었다. 북춤에 어깨춤을 들썩이고 있을 때 드디어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장사익님이 마지막 주자로 무대에 나타나셨다. 사실 장사익님이 노래를 한 두곡 부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의 관객들은 그가 어떤 가수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그러나 우리집 아이들은 그의 노래 ‘삼식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미 삼식이 아저씨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사익님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은근슬쩍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면서, 관람 온 이웃분도 관객들 사이에 세우셔서 박수를 보내주는 모습에서 점점 사람들의 호감은 높아져 갔다. 마무리에서 그분의 특기인 동백아가씨, 대전부르스, 댄서의 순정 등 흘러간 가요들을 특유의 판소리 같은 창법으로 구수하게 부르는 순간 객석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특히 장사익님의 엉거주춤한 춤사위와 환하게 웃음 짓는 순박한 얼굴은 공연 최고의 백미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마도 다음 공연 때는 장사익님 만의 단독 공연도 충분히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몇 번의 앵콜이 이어지고 난 후 공연은 즐거운 막을 내렸고, 시간은 10시를 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공연 후, 모 방송국의 인터뷰도 했었다. 공연 다음 주 수요일 밤, 열한시에 방송된다기에 졸린 눈 부릅뜨고 기다리기도 한 그런 즐거운 공연이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족의 방송데뷔는 넘쳐나는 아프간 전쟁기사 때문에 잘려서 무산되었다. 다음 공연을 또 기대해 봐야지...
  
  
  지학순정의평화기금과의 인연
  이진정 / 학생
  
  이곳과의 만 첫 만남은 아르바이트를 통해서였다. 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동아리 선배님의 권유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 한 시간반이나 걸려 도착한 충무로 사무실. 이곳에 온 첫 느낌은 아담함과 아늑함이었다.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전경진 국장님과 현 실무자인 하정화 차장님께서 나를 친절히 맞아주셨다. 사무실에서는 추석연휴에 열리게 될 ‘인순이 콘서트’ 준비하 한창이었다. 이 콘서트는 정의평화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연으로 수익금 전액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에게 쓰이고 된다고 했다.
  첫날 내가 해야할 일은 콘서트 티켓을 찍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주어진 일거리들, 콘서트 홍보 공문이며 포스터를 회워과 단체, 성당 등에 우편으로 보내야했다. 아마도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대부분이 내가 직접 접고, 붙이고해서 보내드린 우편물을 받아보신 분들일 것이다. (흐뭇흐믓) 그런데 너무 많은 양의 일이 주어져 혼자하기에는 너무 벅차 친구들을 동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추석을 시골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정작 콘서트 당일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해 시골집에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그해 겨울방학이 되고 차장님의 권유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12월20일에 열리는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지학순정의평화상’은 세계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께 故 지학순주교님의 뜻을 기리며, 한 해에 한분, 혹은 한 단체에게 수상의 기회가 주어지는 뜻 깊은 상이다. 그해의 수상자는 인도네시아 인권운동가이신 ‘이부술라미’라는 할머니였다.
  비록 몸이 편찮으셔서 시상식에는 참석치 못하셨지만 많은 분들이 술라미 할머니를 축하해 주러 오셨다. 시상식에는 김수환추기경님께서도 오셨는데 나로서는 추기경님을 처음 뵙는 것이어서 벅차기도 했다. 그날 2000년의 첫 함박눈이 내렸다. 그 함박눈이 아마도 주님께서 술라미 할머니의 수상을 출하해 주시는 메시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 날 밤은 내게도 술라미 할머니께도 참으로 행복한 밤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크리스마스와 2001년 새해를 이곳 분들과 함께 했다. 크리스마스 전 토요일, 사무실에 케익으로 조촐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따듯한 크리스마스..
  새해가 되어서도 사무실은 여전히 바빴다. 지주교님의 평전인 ‘그이는 나무를 심었다’를 발송하는 작업을 해야했다. 하루에 우체국을 많으면 두 번씩 다니면서 책을 부지런히 발송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홍역에 걸려 열흘씩이나 사무실에 나오지 못해 평전 발송이 늦어졌다. 홍역을 심하게 앓고 나온 나를 걱정해 주시던 사무실 식구들... 그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를 드린다. 2001년 새해도 어느덧 2월로 접어들었다. 2월에는 총회가 있는 달이다. 사실 그 날은 조금 지루했다. 여름방학 후 8월 무렵부터 다시 2001년 가을 콘서트 준비를 하였다. ‘3色 환상곡-김창완, 양희은, 장사익’ 세분의 공연이 있을 콘서트가 나는 너무나도 기다려졌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열심히 준비한 콘서트, 물론 차장님께서 제일 고생하셨지만, 나도 정말 열심히 준비하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있었던 행사 중에서 제일로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나 싶다. 콘서트 당일, 공연은 정말 즐거웠다. 비록 공연장 밖에서 팜플렛과 가수 세분들의 CD를 판매하여 잠깐씩 본 공연이었지만 정말이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공연 후 허무하다고나 할까? 물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못내 아쉬움이 밀려왔다. 어쨌든 공연이 무사히 잘 끝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8월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이곳에서의 일도 끝을 맺었다. 사실 더 일을 하고 싶었지만, 남은 학기를 마쳐야했고 개인적이 사정도 있었기 때문에 일을 더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비록 봉사가 아닌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긴했지만, 한 번도 돈 때문에 일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밥을 지어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이곳 식구가 되어 있었다. 사실 실수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다. 우체국 마감시간이 촉박해 너무 조급한 나머지 복사기를 잘못 동작 시킨 것도 모르고 토너를 흔들어서 바닥을 온통 시커먼 가루로 더럽히는 비참한 일을 벌이기도 했고 20만원 송금해야 할 것을 400만원이나 송금해 차장님을 황당하게 하는 등... 물론 다시 돌려받기는 했지만 어찌나 죄송하던지, 난 실수 투성이었다. 하지만 차장님께서는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시고는 화를 삼키셨다. 그때는 죄송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며 여러 가지 일도 해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난 아마도 일보다는 사람 사귀는 법을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은 꼭 후원금을 내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 기왕이면 이곳에서 뜻을 같이하며 단 몇 일, 몇 시간만이라도 함께 봉사하실 분들이 계시면 더욱 빛이 날 것이다. 비록 난 아르바이트로 하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시는 일로도 후원을 하실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지 ‘정의평화기금’의 문은 활짝 열려있는 것 같다 ‘정의평화기금’을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50  들빛회 소식지 제24호  justice 2007/01/16 3889
49  들빛회 소식지 제23호  justice 2007/01/16 4024
48  들빛회 소식지 제22호  justice 2007/01/16 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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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빛회 소식지 제17호  justice 2007/01/16 4125
42  들빛회 소식지 제16호  justice 2007/01/15 4196
41  들빛회 소식지 제15호  justice 2007/01/15 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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