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1 17:57:45, Hit : 3877
 들빛회 소식지 제5호

지학순 주교 기념사업회 회보 제5호

정의가 강물처럼

양심의 파수꾼이 되도록

두봉 레나도 주교 / 전 안동교구장

  얼마 전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표지에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우는 표정을 ‘한국의 수치(Korea’s Shame)'라는 표제로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바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권좌에 오른 자가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두고 국민들을 우롱하면서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워온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일이라기보다는 끝없는 욕망으로서의 경제 성장과 무방비적으로 놓여진 자유가 인간의 참된 상태를 대변하는 오늘날의 생각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치닫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로 여겨야 한다. 기적에 가까운 경제 성장이라고 우쭐해 하면서 정작 복지 수준은 세계 100위권을 넘나들고, 20년도 채 안된 다리가 무너지고 지하철 공사장이 폭발하며, 백화점이 내려 앉아 애매한 시민이 상처를 입고 있는 기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까?
  국민들이 이러한 역사 과정 속에서 당해 온 고통은 어떻게 보상받을까? 이 같은 현실을 용인 해 온 우리 자신이 죄스럽게 느껴지기만 했던 지금에, 양민을 다치고 권력을 빼앗은 자들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려 하고 있다. 정의와 진리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존엄성의 구체적 표현이다.
  “바른 양심이 우세하면 할수록 개인이나 집단이 맹목적 방종에서 더욱 멀어지고 객관적 윤리 기준에 더욱 부합하도록 노력할 것이다.”(현대세계의 사목헌장 16)라는 교회 가르침을 상기한다. 반대로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거나 죄의 습관으로 양심이 어두워질 때는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교회 가르침은 말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일은 이 가르침대로 양심을 회복 할 수 있도록 역사적 판단과 실천을 하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모상성(image of God)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거룩함이 더욱 드러날 수 있다면 지금 더욱 필요한 교리의 빛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서로가 양심을 더욱 갈고 닦아 양심의 파수꾼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선택을

이창복 / 본회 부회장

  글 머리에
  대한민국 헌정사에 유례없는 일이었다.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시작된 비자금 파문은 결국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감’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다수의 국민은 검찰의 뜻밖의(?) 소신에 의아해 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바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바꿔버린 주역 중 한 사람, 노태우씨의 일이다. 또 있다. 12, 12사건이 반란으로 인정됨에도 5, 18사건이 폭도들의 사회혼란 행위가 아니라 민주항쟁이었음이 인정 됨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검찰의 주장에 의해 자칫 역사에 묻힐 뻔했던 사건이 특별법 제정이라는 새로운 국면과 맞물려 결국 전두환씨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진행형’인 이번 사건을 보면서 극도의 허탈함과 불신, 불만을 좀처럼 지우지 못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상황에 빠지게 한 것일까?

  그들은 너무도 당당했다.
  노태우씨의 구속 수감 재판 장면을 지켜 본 대다수의 국민들과 언론, 그리고 여야 국회의원들은 모두 노태우씨의 당당함에 적잖이 놀란 듯하다. 구속 수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대답이 반성의 표현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염려한 결단인 양 했으며 과거 대통령 후보 때의 선거 유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답 말미의 “감사합니다”는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전두환 전 직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문에 이르러서는 실로 그 무지막지함에 새삼 놀라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나마 노태우씨의 당당함은 전두환씨의 그것과 비교하면 조족지혈 수준이었던 것이다. 심히 유감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노태우씨는 수감직전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미리 준비한 듯한 얘기를 했었다. 그렇다면 노태우씨는 나름대로는 자신의 발언을 조심스럽게 했다고 볼 수 있음, 결국 자신의 구속에 대한 관점이 국민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결론이다. 과연 노태우씨의 이번 사건에 대한 관점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왔다. 즉 노태우씨는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기업은 용서 해 달라”, “여야 정치인은 불신을 버리고 화합해라”라고 했다. 이것은 결국 노태우씨는 ‘공동선(共同善)’이나 ‘정의(正義)’이나, ‘국민들의 정서’ 등은 관심에도 없었던 것이며, 오로지 관련 재벌과 정치인들의 입장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태우씨가 관심 갖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 사건에서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은 바로 이번 비자금 사건의 또 다른 주역, -주연 또는 조연-으로 확인 또는 의심 받는 사람들일 뿐이다.
  사전에 측근들과 연희동 자택에서 합의하여 발표된 전두환씨의 대국민 발표문에서는 또 어떠했는가? 문민정부의 결단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특별법 제정과 관련자 처벌 주장에 대해서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 정부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라는 식이다. 이것은 역대정권과 수구세력의 눈에 보이는 조작이며, 일부 정치인들의 잘못된 시각과 관련되어 잇다. 이점에서 문민정부의 보다 강력한 의지가 이들 및 관련자들에게 보여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며, 의결권을 갖는데 있다. 따라서 가능하면 다양한 영역에서 국민들의 최대한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의사가 반영될 때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것이며, 그 가치 실현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면에서 볼 때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인 전두환씨와 노태우씨, 그리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민은 6공 정권 초기에 5공비리 주범 전두환씨를 백담사에 보낼 때 있었던 ‘재산의 국고 환수’가 이미 물건너 갔고 당시 ‘친 인척 비리’로 구속됐던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석방, 복권되어 지금은 오히려 당시에 팔거나 압수됐던 재산을 되찾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경험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법의 보호(?)속에서 정당(?)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니 노태우씨는 아직도 비자금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에 대해 자신 있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며, 오히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주제 넘는 발언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두환씨 역시 노태우씨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갖고 있기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식농성‘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 한다고 굳게 믿을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 의한 양심수는 석방돼야
  우리는 이 시점에서 5, 6공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바로 전두환씨와 노태우씨에 의해 구속된 양심수들의 문제이다. 그 옛날 서슬퍼런 3공화국 안에서 쉽지 않던 ‘양심선언’을 하심으로 인하여 구속 되셨던 故 지학순 주교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항의와 관심 속에 석방 되셨었다. 이때의 석방은 부정의에 대한 양심과 정의의 승리였다. 이제 5, 6공 군사 정권하에서의 수많은 양심수들을 생각해 보자. 이들의 주장이 5, 6공화국 당시에는 소수의 목소리, 또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몰렸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보자. 당시의 그들은 대부분 5, 6공 정권의 부도덕성과 부패성에 대한 항거자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주장처럼 5, 6공의 책임자들이 부패했음을 문민정부도 여러 가지로 확인해준다. 따라서 앞의 주장과 관련되어 구속됐던 이들에 대한 사면과 석방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구속은 실정법의 여러 가지가 함께 결부된 것이겠지만 그들의 행위가 결코 어떤 불순한 것 때문이 아니라 부정의(不正義)에의 항의가 원인됐던 일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 양심수들에 대한 석방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이제 문민정부의 새로운 모습을 볼 기회를 맞고 있다. 정말 이 정부가 의롭다면 사법부, 특히 검찰은 비자금 사건과 5, 18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모습이 전시용이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닌 말로 세계화, 국제화 사회에서 우리의 경쟁상대가 끊임없이 제기되듯이 우리의 검찰도 세계의 유수 검찰들을 경쟁상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문민정부 역시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끄러운 부분 중 하나인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를 단절할 수 있는 결단이 요청된다. 그것만이 문민정부의 정통서과 도덕성을 유지시켜 줄 것이다.
  여당과 야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쇄신되길 바란다. 비록 정당의 최우선적 목표가 정권획득일지라도 그것이 국민들의 뜻에 반한 당리당략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차가운 철창 안에서 고통 받는 양심수들을 사면, 석방하는 선정을 문민정부가 보여주길 기대한다. 역사는 항상 정의로운 자의 편에 선다는 것을, 하느님은 항상 정의롭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모두는 되새기길 바라며, 이 나라의 정치가 진실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가 되기를 거듭 바란다.


언제나 공동선을 향하여
사회정의와 인권

故 지학순 주교

  “이 글은 지학순 주교님이 생전에 하신 많은 강론 중 인권문제에 관한 것의 하나입니다. 비록 시대가 변하고 과거보다는 인권의 보장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이에 현실에도 그 의미가 살아서 전달된다는 판단으로 인권에 관한 글을 일부 편집하여 싣습니다.”

  < 1 >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중략) 우리는 죽음으로써 사회정의를 외친 많은 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 사회의 양심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만, 사회정의가 그 만큼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분신자살한 전태일이 그러하고 양심선언을 남기고 할복한 김상진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은 여러 젊은이들의 뜨거운 가슴속에 살아남아, 학원과 노동운동의 영역에서 사회정의의 외침이 드높게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또 그들의 인권은 유린되고, 감옥으로 인도되며, 학원으로부터는 추방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야말로 참된 크리스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설사 주님을 찾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길을 스스로 걷고 있습니다.

  < 2 >
  사회정의가 파괴되는 곳에 인권의 유린이 나타납니다. 또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곳에 이미 사회정의는 없습니다. 정의의 파괴는 인권에 대한 유린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인격적 존엄성과 그 권리를 정의구현의 유일하고 확실한 기초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인권운동, 민권운동이 사회정의구현 운동 바로 그 자체인 까닭인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정의는 어디서 파괴되는가? 누가 파괴하는가?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하고 유린하는 것은 누구이며, 왜 부인되고 유린되는가?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대가로 그 통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구태여 국가 기원설이나 발생설을 들먹이지 않더라고 프랑스 혁명 이후의 모은 정치제도와 국가 이론이 그렇습니다. 즉, 국가권력은 모은 이들의 공동선(公同善)을 위하여 수립되어 있으므로 어떠한 형식으로도 한 개인이나 소수의 편익(便益)을 도모해서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 권력을 위탁 받은 사람들에게는 -위탁받는 절차 그 자체에도 문제가 있겠습니다만-언제나 공동선에 대한 건전한 견해가 있어야 하고, 또 그에 맞추어 나랏일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선이라 다름 아닌 사회 정의인 것입니다. 즉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자는 마땅히 사회정의를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의무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그에 거슬러 투쟁할 저항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 국가권력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소수의 특수한 이익만을 추구할 때, 사회정의는 조직적으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국가 권력이 공동선이 아닌 그들의 특수선(特殊船)이나 특수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정의는 이미 없는 것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의를 포기하고서라면 큰 강도단(强盜團)이 되는 것 외에 국가라고 할 것이 무엇인가”하고 일찍이 반문한 바 있습니다. 권력이 그들의 특수이익만을 추구할 때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와 항거의 행동이 나타납니다. 이 때 그들은 때로는 폭력을 휘둘러 침묵시키려 하거나 허위의식을 강요합니다. 해를 보고 달이라“고 하면서 국민이 그렇게 복창할 것을 강요합니다. 국민이 그것을 거부할 때 그들은 폭력을 휘둘러 투옥과 연행, 감시와 미행과 도청과 탄압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러 댑니다.
  이렇게 하여 인권 문제는 양심을 지닌 모든 국민 앞에 커다란 위협으로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 그들은 총칼과 법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국민을 침묵시켜 놓고 이것이 총화라고 내세웁니다. 그것을 안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평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닙니다. 또 어떤 전제적 지배자에 의해 강요된 침묵의 상태만도 아닙니다.(사목헌장 78조) 정의가 없으면 우리가 갈망하는 평화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법이란 그것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이성적 목적을 가질 때만이 법률인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 법은 한갓 폭력 그 자체 또는 폭력의 수단이 될 뿐입니다. 어쨌든 사회정의가 파괴되고 인간이 존엄성이 유린되는 것은 이와 같이 공동선, 즉 사회정의를 추구해야 될 권력집단이 공동선을 버리고 특수이익을 고집하고, 유지하려는 데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인 것입니다.

  < 3 >
   그러나 사회정의를 추구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정치권력은 언제나 자기들의 행위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언제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존재 자체를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큰 자유와 작은 자유”의 이야기 “국가의 안보를 위하여 국민의 자유는 유보되어야 한다”는 주장 등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둑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 모두를 사전에 불태워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또 국민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가 어찌 국가의 안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실례를 월남과 크메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 국가의 독재적 지도자들은 국민을 버리고 금은보화를 챙겨서 몰래 도망쳤습니다. 결국 국민의 운명과 독재자의 운명은 언제나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또 국민 전체의 이익과 지배자가 추구하는 이익은 각각 다른 것입니다. 독재적 지배자는 언제나 그들 자신의 특수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진실과 정의의 양심을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은 그들의 추악한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그들의 거짓과 폭력을 믿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실을 빛 속에 드러내는 복음 정신을 실천하는 크리스챤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며, 부정과 불의와 비 양심을 밝히는 자유언론을 싫어합니다.(중략)
  국가안보를 권력 담당자의 특수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다보니, 마침내는 전쟁위기, 안보위기를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은 권력에 대하여 불만의 표정을 짓지 못합니다. 불만의 표정을 지으면 그것은 국민의 총화와 국가의 안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권력은, 소수 부패 특권경제의 양적 팽창을 국민 경제의 근대화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농민과 근로자는 허리띠를 졸라 매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부정과 부조리와 공해는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부작용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 4 >
  사회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 활동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요소 -17년 주교 시노드 회의 메시지 - 우리는 진리의 빛을 받으며,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 정의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길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그 권리는 정의 구현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기초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은 평화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류 전체의 공동선입니다. 사회 정의는 권력이 인간을 한갓 생산수단으로 평가하거나, 그들의 특수선의 유지에 필요한 한 가지 품목으로 간주할 때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사회정의가 없으면 인권도 없습니다. 사회정의와 인권은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권운동, 민권운동은 곧 정의구현 운동인 것입니다. 그것은 나아가 민주, 민생, 민족운동인 것입니다. 특수한 집단의 특수한 이익과 특권을 뿌리 뽑을 때, 구조 악에 거슬러 투쟁할 때 사회정의는 실현됩니다. 그리하여 그 구조 악을 제거했을 때 우리 민족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할 것입니다.(중략)
  우리가 억압하는 사람 쪽이나 억압 받는 사람 쪽이나 다 같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으로 부활하기 위하여 지금 피나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되,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구원함으로써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만 내적 충족에 다다릅니다. 우리가 특수선 아닌 공동선과 사회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 할 때 설혹 우리는 박해를 받을지 모르나 결코 우리는 외롭지는 않습니다. 역사가, 하느님이, 양심이, 진리가 우리들의 편입니다. 인간 활동의 최고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정의와 사회적 애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진리요, 양심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단식으로 보여준 예언자적 소명

오창익 /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간사

  11월24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소속 10명의 사제들이 9일간의 단식기도를 마치는 날, 집권당 사무총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5, 18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의 앵커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듯이 일거에 정국은 ‘비자금 정국에서 5, 18 정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텔레비전은 연일 대통령의 결단을 이야기하고 일부 신문은 비록 작은 목소리나마 ‘국민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승리자가 대통령이든 국민이든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었기에 ‘헌정사상’ 가장 다행한 날‘이었다. 그날 텔레비전 뉴스는 5, 18의 전개과정, 의미, 당시 정치군인들의 역할과 죄악상을 낱낱이 보도했지만, 5, 18의 성격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진상을 규명하고 뭐하고 할 것도 없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정치군인들만 인정하지 않았지, 모든 국민들이 학살의 본질과 진상을 알고 있었다. 독재자박정희에 의해 의도적으로 키워진 정규 육사출신 11기의 ’하나회‘라는 정치군인 집단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일으킨 5, 18은 군에 의한 양민학살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양민 학살로 수 천 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양민 학살의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책임자는 스스로 대통열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11월6일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가 구속 수감되는 날, 명동성당에서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과’,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공동으로 ‘현 정부의 도덕성 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봉헌하였다. 노태우씨 비자금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5, 18일 올바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천주교회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던 이 미사가 끝나고 사제단의 열 분 사제들이 단식기도를 시작했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헌정사상 최초의 일 때문에 여론이 모두 그 쪽에 쏠려 있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의도적으로 노태우씨가 뇌물수수죄로 구속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미봉책이라는 것으로 고발하려는 듯이 사제들은 그날부터의 단식을 고집했다. 실무적으로는 다른 날을 택해서 시작하는 것을 고민 해 보자는 의견을 갖고 있었지만, 사제들의 원칙과 선택은 단호했다. 예상대로 그 다음날 신문에서 사제들의 단식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천주교 신자들도 사제들이 단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사제들의 의견은 대충 이런 것이다. ‘비자금 문제 때문에 5, 18문제가 완전히 묻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비자금 문제가 5, 18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살인죄를 범한 사람을 절도죄로만 처벌하려 드는가?’
  11월16일까지만 해도 5, 18 특별법을 통한 5, 18문제의 해결은 국회 다수당의 탈역사적 횡포로 실현가능한 대안은 아니었다. 다만, 국민의 단합된 의지를 통해 정부 여당에 요구해야 하고 싸워서 얻어야 할 몫이었다. 싸워서 얻는다고는, 그 현실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국회의 집권 다수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총재와 대표를 통해서 ‘역사의 판단’과, ‘특별법 제정 필요 없음’을 이야기 했기에 5, 18 문제의 해결은 그야말로 요원한 것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사제들이 단식기도를 결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과 역사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굴절되고 왜곡된 역사는 언젠가 청산되어야 할고, 반드시 청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권력의 화신처럼 보이던 이승만을 몰아내고, 영구 집권을 기도하던 박정희가 암살된 현대사를 통해 보여준 역사 발전의 필연성을 믿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없지만, 이 작고 비장한 노력이 언젠가는 열매를 맺을 수 잇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설령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해도 역사 발전을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기꺼이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한 겨울 외롭고 추운 돌바닥에서의 천막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볼 수 있다. 언제나 사제들이 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다. 때로는 더디고, 움직이지 않을때도 있다. 그러나 사제들은 적어도 5, 18분제에 대해서는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권에도 세계화가 필요하다!

김은영 / 참여연대 해외진출 기업문제 특위 간사


  기업의 해외진출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발언 이전에 아마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버너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더욱 그래왔을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 할 무렵부터 더욱 그래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구호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이 세계무대에 뛰어드는 그 순간부터 세계가 한국을 심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해외투자국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92년 8월 한, 중 수교를 계기로 우리 기업의 최대 해외 투자국으로 부상하게 된 중국과 92년 12월 수교 이후 저임금 및 비교적 양호한 작업 기술을 바탕으로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베트남 등 한국 기업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닿은 곳곳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원성이 들리고 있다. 필자가 올 여름 현지조사를 간 인도네시아에서는 만나는 노동자 마다 ‘제일가고 싶지 않은 기업’으로 한국 기업을 들었다. 노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하여 한국 기업들 사이에 광범위 하게 확산되어 있는 화장실 출입과 기도시간 통제, 그리고 턱없이 높게 책정한 생산목표량은 현지 노동자들의 생기와 건강을 앗아가고 있었다.
  80년대 중 후반 국내 노동자들의 의식성장과 인력난, 고 임금에 떠밀려 저 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 중남미 등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이들 해외진출 기업들은 업종으로 보면 57.7.%로 단연 제조업이 앞서고 있다. 신발, 봉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이들 기업들은 단 기간에 투자 이익을 거두기 위해 6, 80년대 한국의 가혹한 ‘노동통제방식’을 우리와 다른 문화, 피부색, 언어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지 노동자들에게 있어 열악한 작업환경, 비인간적인 경영방식, 억압적인 노무관리, 잦은 성 폭행, 노조탄압 등등은 ‘한국적 경영방식’이라는 총체적 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처럼 저렴한 인건비로 높은 생산성을 노리기 위해 엄격한 노동 통제 방식을 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종교적, 문화적 전통 무시, 빈번한 폭력과 체벌, 인격무시 등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하는 민족에 대한 멸시와 우리와 다른 피부색과 문화, 언어를 가진 민족에 대한 폐쇄성 등이 현지 노동자들에게는 성숙하지 못한 한국인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타국 기업과 비교해서 특히 한국인들은 “자주 욕을 하고, 화도 잘 내며,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발로 차기 일쑤”라고 현지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실제로 이들 해외 진출 기업의 관리자들은 현지 언어, 관습, 문화 등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지 노동자들의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슬리퍼 신기를 금지하는 공장에서 발바닥에 상처가 난 한 노동자가 새 슬리퍼를 사서신고 왔다가 한국인 관리자에게 슬리퍼를 빼앗기고 가위로 찢긴 일이나 퇴근 시간 15분 전에 현지 노동자들에게 그냥 나누어 주어도 될 출근표를 공중으로 던져 노동자들이 서로 머리를 조아리며 출근표를 찾으나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일 등은 노동자들에겐 인간으로서 굴욕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단다.
  ‘인권’이란 국적, 인종, 종교의 틀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있어 인권이란 아직 한국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로만 국한시켜 생각하는 데 익숙 해 있다. 사실 한국에 대한 세계로부터의 비난에는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 인권단체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젠 한국이 다른 개발도상국들로부터 성공한 개발모델로써 부러움을 사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 정도와 노동운동의 수준도 매우 높아졌다고 하는데, 왜 노동, 인권단체들이 해외 진출 기업의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인지 그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혹자는 아직 한국 내의 한국인 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남의 나라 남의 인건까지 개입할 여력이 어디에 있냐고 머리를 가로젓는다. 또 그렇게 자꾸 한국인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좋을 게 뭐냐는 이도 있다.
그러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잠시 지난날을 돌아보자. 지난 시기 수미다, 피코, 모토로라, 이리 후레아 패션 등 한국에 와 있는 외자 기업들로부터 우리가 당한 수모가 기억에 생생하지 않은가? 우리의 어린 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지구 반대편의 미국 땅에까지 쫓아가서 꿋꿋하게 싸웠던 것이 우리의 힘만으로 가능했던가? 그 때 그 나라 양심있는 시민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찌됐을까? 그 나라의 양심 있는 시민들은 자신의 국민이 아니라고 또는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고 결코 모른 체 하지 않았다. 이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고자 ‘세계화’를 부르짖는 한국이 그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말이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세계화 뿐만 아니라 ‘인권의식의 세계화’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는 중국 노동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시민모임, 온두라스 여성노동자를 위한 시민모임 등 자발적인 모임을 구성해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항의편지, 지원편지 쓰기, 피해자 구원 캠페인 등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서구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맞서 노동인권 단체, 소비자 단체들이 불매 운동이나 노동자들의 인권피해로 얼룩지지 않은 ‘깨끗한 옷 입기 운동(clean Clothes Campa-ign)'등 활발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또한 보다 인간중심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는 운동의 본래 목표에 충실한다면, 해외 진출기업으로 인한 현지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문제를 우리의 문제로써 더 맡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각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에 대한 조사, 연구사업과 시민인권모임 등을 통한 지속적 감시활동, 해외 투자기업에 대한 법적, 제도적 조치 마련을 위한 노력 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기업가는 미워하지만 한국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가슴과 흐르는 피로 끈끈한 연대의 손을 마주 잡을 형제자매들이 한국에 분명 있음을 확신시키는 일일 것이다.


우리시대 이야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하정화 / 발레리아(본회 회원)

  전태일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들어 본 것은 오래된 일이었지만 그의 생을 깊이 생각 해 본것은 순간이었던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하고, 이례적으로 국민 후원금에 의해 제작된다고 하더니 드디어 개봉을 했다. 어렵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얘기도 들었고, 또 의미도 있기에 무척 보고 싶었는데, 누군가 예매한 표를 사들고 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다. 저녁 시간 쇼걸(show girls)과 함께 상영을 하고 있었는데 얼핏보니 보려고 하는 시간대가 매진이 아닌가? “휴 다음 프로는 8시가 지나야 하는데...대단 하구나”싶은 생각이 들고 있을 쯤 매진된 영화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아닌 쇼걸이었다. 엉뚱한 기우였나 보다,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시위대의 모습으로 시작된 스크린엔 시종일관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 시대 얘기가 그려지고 있었다. 특이한 삶이라면 특이하게만 보일 수배자와 가난한 청년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시작되었고, 한 수배자의 눈을 통해 다시 떠올려지는 전채일과 주변 환경은 정말 우리시대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어려웠던 그 시절, 한 푼을 보태기 위해 실밥을 뜯으며, 옷 먼지에 파묻히고 얻은 결핵과 폐병은 어린 여공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겨운 것이었다. 공장은 그 시대 서민들이 생계터전 이였을 테니 그 속에서 전태일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연민과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또 아무런 힘도 돈도, 빽도 없던 그가 그렇게 순진하게(?) 극악한 현실 앞에 맨몸뚱이로 부딪혔던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시간, 정말 가슴 아팠던 시간이었다. 영화가 잘 되었건 그렇지 못하건 기술적인 것을 떠나서 화면속의 시대가 우리에게 있었고, 몸을 불살라 인간의 기본 권리를 얘기했던 청년이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내가 이 시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대함이 그 어찌 소홀해 질 수 있을까? 목숨은 누구에게나 하나일 테고 생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풍요로워야 하는데 그 시대에도 지금에도 형태만 달리했지 아픔은 가시지 않고 곳곳에 곪아 있는 것 같다. ‘지금쯤, 전태일 그는 이 세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 마음은 무거웠다. 국민의 혈세를 혼자 차지했던 전(前)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오갈 때 개봉된 영화이어서인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듯싶기도 했다. 지주교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후원회원들과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행당동 산동네 - 송학마을

신만수 / 송학마을 주민

  1.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어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집이 우리나라엔 없었다. 산동네 사람들은 우리나라 농촌에서 도시의 땅으로 쫓겨와 10년, 20년의 세월을 단칸방에 눌려 살았다. 도시의 풍요가 사람들의 정신을 새로운 상품으로 자꾸자꾸 물갈이 할 때,  ~91년, 92년, 93,년, 94년~~ 겨울 또 겨울을 차가운 연탄을 지피며 날품팔이 월세 방에서 살아야 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물질의 과도한 소비 속에 가난의 대물림이란 말을 잊으며 살아가고 있을 때 재개발로 인한 철거와 집단 이주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투기장으로 바뀐 산동네 행당동 주민들이 이사할 곳이 없어,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정당하게 요구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임시 거주 시설을 확보하여 이사하였다. 이제 행당동 식구들은 스위치만 누르면 따듯한 온기가 도는 귀뚜라미 보일러에 마음까지 따듯하다. 스위치에 손만 대면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이제 굴 속 같은 방에 살지 않아도 되며, 아기들 방도 따로 예쁘게 꾸민다. 새 생활이 그리운 시기다.
  빛을 내서라도 좋은 가구를 들여 놓고 싶고, 멋진 방을 꾸며 지내고 싶다. 지금 도시의 물결이 또 우리의 머리를 스쳐오고 있을지라도...
  이제 가만히 생각 해 본다.
  우리의 폭력철거와 맞선 긴 싸움, 폐타이어를 쌓고 철탑을 세우며, 점거농성, 거리시위, 수많은 주민총회, 부러지고, 터지고, 수도 없이 까무러치던 3년의 시간이 이렇게 몇 가지 안락한 행복으로 정리되어야 하는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집 걱정, 월세걱정 없이 그것도 당분간 임시 시설에서 사는 것으로 갈음해야 하는 것인가?

  2. 송학마을에 도착했다
  송학마을은 이곳 행당동 지역의 옛 이름을 살린 이름이다.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우리의 주거 문제를 해결 해 갈 수 없기에 공동체로 살자고 한 송학마을이다. 지금 주민들은 지난 철거 싸움하느라 진 빚을 갚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나름의 일터로 나가기에 분주하다. 그러면 우리가 꿈꾸고 말했던 공동체는 누가 하는 걸까? 모든 주민들이 다 똑같이 달라붙는다고 될 일도 아닐성 싶다. 철거과정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싸움이 그칠 줄 모른 우리 주민들, 다시는 철거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수 백번 되풀이 하였건만. 가만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우린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았는가?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삶, 함께 재미있게 서로 도와주고 부둥켜안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한, 다시한번 여유를 가지고 생각 해 보아야겠다. 그 동안 돈벌이를 못해 애들 도시락 싸줄 쌀도, 반찬도 떨어져 가던 날,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후회하고, 주민들의 오해 에 수치심과 분노도 느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 찾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짐을 수도 없이 싸고 ‘차라리 빚 얻어 이사 가면 이 보다 못 살겠는가? 했던 수많은 나날들. 울기도 많이 하고 참기도 많이 하면서 해 왔던 날들이 아까워서 끝까지 버텨왔던, 아니 여럿이 산사는 것이 더욱 소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지금이다.

  3.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
  숨 돌릴 틈 없이 지내 온 시련과, 고통, 고민과 갈등을 겪어 온 피와 땀이 동네 곳곳, 사람들의 얼굴에 어려 있다. 서로 협력하고 이해하는 송학마을이 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오갔고, 밤을 지샜다. 이렇게 함께 해 온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뤄낸 송학마을 102세대의 임시 거주시설이다. 이는 올바른 사회를 건설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힘이 모아낸 결정체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때가 많다. 우리가 고생한 당연한 결과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도와서 살아가지 않는 한, 이 거대한 파괴의 질서에 또 다시 희생당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인간을 위한 진정한 건설에 한 걸음이 되었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송학마을 사람들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또 다시 파괴의 질서 속에 편입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더 이상 아무리 아파해도 소용없다. 지금 필요한 일은 더욱 더 자신을 가다듬고, 설득하고, 스스로에게 설득되는 일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파괴해 왔던 지난 시간들을 용서하며, 자신과 온몸으로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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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들빛회 소식지 제12호  justice 2007/01/11 4087
37  들빛회 소식지 제11호  justice 2007/01/11 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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