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1 18:02:29, Hit : 3771
 들빛회 소식지 제8호

  정의가 강물처럼
1997년 1월  발행 제8호

희망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문규현 신부 / 본회 부회장

  정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97년 한 해도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 모든 회원 분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각박하다고 푸념하게 되는 세상에 정의와 평화의 뜻을 품고, 어려운 가운데에도 후원회원으로 함께 뛰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희망의 빛은 우리에게 늘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번 노동법 개악안의 날치기 통과로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그런 만큼, 알찬 결실이 맺어지리라 믿는 마음은 간절하나 현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나 경쟁력의 성실한 주체를 배제한 노동법 개정의 일련의 모습은 정부가 지난 해 발표한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신노사관계 구상’의 5원칙(공동선의 극대화의 원칙, 참여와 협력의 원칙,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의 원칙, 교육 중시와 인간 존중의 원칙,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의 원칙)에도 미치지 못한 모습이라 그 실망은 더욱 큽니다.
  스스로의 요구에 의하지 않은 희생은 그 어떠한 경우라도 상처와 고통을 낳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정치적 경험을 통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날치기 통과로 인한 명동성당 농성과 각 분야의 대규모 파업은 민주주의의 꽃은 그 나라의 대통령이나 관료가 아니라 바로 국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가 하나하나 쌓여가는 것만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큰 먹구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소중한 생명이 서로에게 귀하여 여김 받는 세상을 위한 ‘들빛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신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회원 여러분들의 생활 현장 속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고 그 열매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정의평화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한 해도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이 이루어져야…

천주교 수원교구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 정리 들빛회 간사

  한국도 어려웠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 그들이 외면하는 업종에 종사하며 지내왔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보다 더 가난한 국가에서 한국을 찾아오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날을 기억하면서 우리 곁에서 된 외국인노동자들의 고통을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짖궂은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오후 도착한 수원역엔 노동법 날치기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찬바람과 진눈깨비를 맞으며 날치기에 항의하고 있는 생활인들을 보며 착잡해지는 마음을 안고 찾아 간 수원 교구청 입구엔 안내대로 엠마우스라는 이름을 단 상담소가 쉽게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이 방문하기 쉬운 곳에 상담소가 위치하고 있어 그나마 마음이 밝아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할까?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은 정화로 상담업무 를 하고 있는 실무자와 그곳을 방문한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다음은 상담소에 근무하는 실무자 박노희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들빛회 :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가 언제 생겼나?
  박노희 : 95년 5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94년부터 시작되었지요. 이태리에서 오신 조바니 신부님께서 경기도 광주에서 시작하시다가 이곳(수원)에 오시면서 지속된거예요. ‘나그네를 천대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라’는 성서말씀대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사회복지국 소속이었는데 1월부터는 사회복음화 소속으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현재 조바니 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들빛회 : 교구청에서 바라는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의 역할은?
  박노희 : 사목적 배려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가톨릭 신자만 대상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오갔지만 실제 외국인 노동자들의 종교가 힌두교, 모슬렘 등이고 필리핀 사람들만 가톨릭신자이기 때문에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예요. 그리고 사목적 배려만으로는 그들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아들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법 제정이 상담소의 과제가 되었어요.
  들빛회 : 법 제정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을텐데 그에 따른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요?
  박노희 : 교구지원과 후원금, 수익사업 등으로 마련하고, 어디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부족하지요. 그러나 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수익사업도 활발해지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신자들의 관심도 기대할 수 있겠지요.
  들빛회 : 실제 상담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은“
  박노희 : 상담이 가장 크지요. 임금체불문제, 산재, 의료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순서적으로 보면 1차로는 전화 상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2차로 공장을 방문해요. 현장방문이지요. 그리고 3차로 노동부에 진정을 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작년 2월부터는 의료공제회를 만들었어요. 병원과 협약을 맺어서 할인혜택을 주는 것이지요. 의료보험혜택이 안되기 때문에 의료비가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거든요. 그나마 의료공제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있어 성과라고 볼 수 있어요.
  들빛회 : 신자들에게 상담소의 활동이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인가요?
  박노희 : 교구청 안에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가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어 가끔 전화를 받기도 해요. 옷가지를 보내주겠다는 분도 더러 있고,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주들이 전화를 주기도해요.
  들빛회 : 외국인들에 대한 인권을 다뤄 특히 어려운 점이 많겠어요!
  박노희 : 다 어려운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재정)가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고 엠마우스로 보면 교회가 자리를 마련해서 넓혀가고는 있지만 교회의 관심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들빛회 : 우리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와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박노희 : 그들은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어떤 대우나 보장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도 법적 보호도 받고, 인간대접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나오겠지요.
  들빛회 : 어떻게 상담소에서 일하게 되셨는지요?
  박노희 ;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 주변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권유와 가톨릭노동사목에서 일했던 경험이 하느님의 도구로 일할 수 있게 된 동기가 되었어요.
  들빛회 : 저희 회원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박노희 : 선진 외국에서 보면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국내도 내부적으로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이예요. 색안경을 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외국인들에게도 같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점차 세게 각국에서(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서방 등) 한국을 찾아오는 추세인데 불법체류자라고 장기적으로 보면 미래에 밝은 상징이 아니예요.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겠어요. 세계화적 측면에서도 정당하게 대우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점을 잊지 말고 그들을 대하고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점을 들빛회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들빛회 : 상담소에서 이뤄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힘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철거민들이 함께 일궈가는 마을 공동체

박재천 / 본회 운영위원

  서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산동네, 뚝방 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일명 달동네로 불리우던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철거되고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산동네인 관악구 봉천권, 강북구 삼양권, 성동구의 금호, 행당, 하왕권이 재개발되어 철거가 완료되었거나 한창 진행 중이다. 70년대 후반까지 청계천 뚝방, 안양천변 뚝방이 다 철거되고 간선도로나 전철부지로 바뀌어 흔적이 사라지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더니, 90년대 후반까지는 훈훈한 정이 흐르던 달동네가 모두 사라지고 이웃에 살던 사람들도 흩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영구임대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에 살게 되거나 일반 주택자나 서울주변의 지하셋방 등으로 흩어져 살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산동네 사람들의 오가는 정이었던 공동체적인 마을 분위기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행당동의 경우도 금호동, 하왕동과 함께 지난 93년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발이 추진되어 산동네들이 모두 철거되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연일 땅 파는 소리로 주변이 항상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지난 3~4년간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철거 세입자들이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을 모두 내어놓고 주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투쟁과 저항이 계속되었다. 한편 이곳 산동네에서 오래전부터 탁아소나 작은 공부방 등을 운영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지내던 지역 활동가들도 재개발이 본격화되자 주민조직과 교육활동에 나서고 투쟁에 동참하면서, ‘어떻게 하면 서로 흩어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일궈가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민조직과 교육활동을 통해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면서 주민지도자들과 지역활동가들은 지역 주민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구상하기 위하여 ‘주민협동 공동체 실현을 위한 금호, 행당, 하왕지역 기획단’을 출범시켰다. ‘기획단’ 활동이 역동성 있게 움직이고, 주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함께 어우러져 철거민 102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임시거주시설’을 완전히 쟁취하고 이 마을 이름을 ‘송학마을’이라 하여 입주식을 한 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95년 10월의 일이니까 이제 막 1년을 지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구상하는 ‘기획단’은 네 가지 분야로 일상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가난한 주민들이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꾀할 수 있는 ‘경제협동 주민공동체’ 분야, 가난한 주민들이 스스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생산협동 주민공동체’ 분야, 주민들이 스스로 소비생활을 조직할 수 있는 ‘생활협동 주민공동체’ 분야 등이다. 송학마을에 입주한 이후 다른 재개발지구의 철거주민들과 연대하여 주민협동 공동체 구상을 넓히면서 준비와 실험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경제협동 주민공동체’ 분야는 긴 준비기간을 거쳐 ‘논골신용협동조합’을 96년 11월3일 감격 속에서 설립하고 출자금을 열심히 증대시키고 있다. 또한 ‘생산협동 주민공동체’ 분야는 95년 11월부터 ‘송학공동작업장’을 가동시키면서 봉제 생산협동체로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실험에 들어가 지금은 1년을 지내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종합적인 평가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생활협동 주민공동체’ 분야나 ‘사회복지 주민공동체’ 분야의 경우도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 그리고 실천을 위한 토대마련을 위해서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 송학마을 주민들은 2~3년의 임시거주시설 생활이 끝나면 재개발 지구에 짓게 될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다. 더 많은 세입자들과 살게 될 공공임대주택 생활을 미리 준비하고 주민 운동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장기적은 부름이므로 지금의 각 분야 주민공동체 실험과 시도가 지역사회 공동체를 일구는데 작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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