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5-11-03 10:10:30, Hit : 4618
 한 아버지의 추억 : 7장: A.K. 고파란씨로부터의 편지

정치 지도자들이나 경찰들로부터 겪었던 경험과는 틀리게 나는 매우 다른 경우를 경험했다. 내가 챠타만갈람에서 캘리컷으로 돌아와 켈랄라 관사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초대장이 왔다. 그것은 마뜨룹후미 일간지 편집장인 K.P 케사바 메논씨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가 라잔의 일과 관련해 그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찌된 일인지 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비상사태 기간동안 벌어진 잔학행위에 반대하는 분명하고도 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케사바 메논씨에게 내가 여러 당국들에 제출한 비망록의 사본들을 주었다. 나빠진 시력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읽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칵카얌과 카얀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상세히 물어보았다. 내가 그에게 자야람 파디칼씨가 바하부딘 교수를 어떻게 대했는지 말하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확실히 국가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비통해했다. 그는 가능한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약속했고 나는 다음주에 그를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케사바 메논씨와의 만남은 나를 기쁘게 했다. 후에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줄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그가 내 일에 보여준 단순한 관심은 나 같은 아버지에겐 충분하고도 남았다. “한 번 더 알아보겠습니다. 한번만 더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라고 간청하듯 그가 말했을 때, 나는 그러자 했고 한 주 후에 그를 찾아갔다. 그는 매우 애처로와 보였다. 그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일도 할 수 없자 매우 실망해 있었다. “여기와 같은 곳에서 알아보고 다니는 것은 그만하십시오. 에르나쿨람에 가서 좀 쉬세요. 운이 좋으면 우리는 다시 만날 겁니다.” 라고 그가 말했다.

K.P. 케사바 메논씨는 라잔의 사건을 돕지는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관심은 나를 위로했다. 이삼 일 뒤에, 마뜨룹후미 일간지에 그가 쓴 사설이 실렸다. 비상사태 기간동안 팽배한 검열에 공공연히 대항하듯, 그는 당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많은 것을 폭로했다. 나는 그가 내 경우에 근거해 사설을 썼다고 느꼈다. 나는 아직도 그 사설의 마지막 문장을 기억한다. "요즈음과 같은 비상사태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크케 고통받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당국에 이를 호소하려 하지 않는다. 별다른 방도가 남지 않은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할 만큼 용감하다." 실로 이 때, 나는 인도 대통령에서부터 저 말단 경찰관까지 모두에게 청원할 정신적인 힘을 얻었다.

나는 챠타만칼람과 캘리컷에서의 조사를 끝내고 에루나쿨람으로 돌아와 집에 머물렀다. 집안에 깊이 배인 비탄의 분위기는 끔찍했다. 가족들은 모두 내가 라잔과 함께 돌아오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돌아옴에 따라 그 희망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 아이 없이 혼자 돌아가는 게 두려웠다.

인도에서 경찰은 사람들을 데려가고 그 중 몇몇은 유치장에서 고문으로 죽는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왜 라잔의 사건이 특별한지 묻는 것은 타당하다. 비상사태기간 동안 일어난 다른 모든 사건들에서는 관련자에 대한 소식을 부모들이 입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아들의 경우 州의 수석장관에서부터 카얀나구역 경찰 담당관까지 어느 누구도 나에게 라잔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오직 법원이 정부에게 라잔을 출두시키라고 명령한 후에야 진실이 드러났다.

오직 그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만이 실종된 아이의 소식을 모른 채 일생을 괴롭게 살아가야 하는 부모의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끊임없이 내 몸을 쑤시는 핀과 같았다. 먹을 때 아들을 생각하면 나는 계속 먹을 수가 없었고, 잘 때면 아들에 대한 기억들이 나를 에워쌌다. 내 정신적 자아는 항상 몸부림치며 새빨갛게 달구어진 양철판 위에 서 있는 듯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 소중한 가족들은 모두 내가 라잔을 찾지 못함을 비난했고, 집은 그의 부재로 인해 근심이 가득찬 곳이 되었다. 학생들이 자주 들르곤 했던 그 곳은 라잔의 실종 때문에 항상 음울한 침묵에 쌓였다.

집 밖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과격분자의 아버지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겁이 났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포가 항상 그곳에 존재했다. 나는 종종 내가 인도의 대작가인 프렘찬드이 쓴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된 것 같이 느꼈다. 나는 내 자신을 그의 단편소설 "심사(The Examination)"에 나온 자유의 투사로 상상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심하게 거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공산당 지도자인 A.K. 고파란씨에게 편지를 받은 것은 그때쯤이었다. 그것은 우리 집의 어둠을 부수는 달빛 같았다. 그는 나에게 내 비망록을 인디라 간디 수상에게 전달했고 그녀에게 라잔을 찾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알려왔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서를 보냈지만, 그 누구도 답장을 해 주지 않았다. 야당 총수인 A.K 고파란씨가 라잔의 사건을 관심있게 다루어 준 것은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가족들도 모두 기뻐했다. A.K 고파란씨는 본인의 삶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바쳤다. 안타깝게도 그 일이 있은지 얼마 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는 나를 많이 도와주지는 못했다. A.K 고파란씨가 죽기 전 그를 만나 감사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나를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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