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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ce(2005-11-09 12:08:04, Hit : 4956
  한 아버지의 추억 : 제 11장: 인신보호 영장

그리하여 비상사태 해제 이후 처음으로 고등법원에 접수된 영장은 "에차라 바리얄 대 케랄라 정부" 건이었다. 람 쿠말 변호사는 이에 관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장은 1977년 2월 25일에 접수되었다. 그 다음 날 케랄라주(州)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이 영장에 관해 상세히 보도하였다. 뉴스는 들불처럼 케랄라주 곳곳에 퍼져나갔다. 영장에 대한 심의가 열리던 날 고등법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심의가 열리는 장소는 대법원 방들 중 가장 넓은 곳으로 옮겨졌다. 라잔의 사건은 사람들 사이에서 감지되어지고 있었다.

비상사태의 열기 후 케랄라주 의회는 끓어넘치고 있었다. 2월 26일, 한 의원이 의회에서 라잔의 사건을 제기했다. 카루나카란 주 내무부장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라잔은 체포된 적조차 없다고 단언했다. 막시스트 지도자 T.K 라마크리스난씨는 즉시 이 소식을 에스와라 리얼씨에게 전했다. 리얼씨는 람 쿠말 변호사와 나에게 이를 알리면서 우리들에게 카루나카란을 피의자 명단에 넣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제안에 따라 에스와라 리얼씨와 람 쿠말씨는 영장을 고쳐 써서 다음날 법원에 제출하였다.

그때까지 사실상 나는 라잔의 사건을 혼자 힘으로 해 나가고 있었다. 이것을 안 내 친구들 몇명이 ‘라잔사건조력위원회’를 만들어서 만마단 교수를 회장으로, 간디평화재단의 라마찬드란 포티씨를 위원장으로, 그리고 기업가 P.C.아브라함씨를 회계 담당자로 두었다. 회원들 중에는 원로 변호사들과 정치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P.C. 아브라함씨는 일반 대중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보도 성명서를 냈다. 그러자 이것이 마치 역사적인 사건인 것 마냥, 우편환이 그의 집으로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그것이 회계 담당자가 일반 대중에게 한 유일한 요구였다. 어느 누구도 재정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사건 이후, 많은 돈이 남았다. 위원회는 이 돈을 비상사태 당시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돕는데 쓰기로 결정했다. 회계 담당자는 이러한 취지 하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위원회에 연락하라고 요청하는 보도 성명서를 냈다.

우리는 많은 신청서를 받았고 지원을 받아야 할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위원회에 접수된 신청서들의 대부분은 챠타만갈람, 카얀나 그리고 카라츈두와 같은 지역에서 온 것들이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을 때, 비상사태의 끔찍한 시나리오는 더욱더 분명해졌다. 공과대학 기숙사의 코루씨를 포함한 피해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타자기술학원 선생인 차탸만갈람 라잔씨는 너무나 아픈 나머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더욱더 두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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