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6-01-18 11:53:25, Hit : 4023
 한 아버지의 추억 - 13장: 촘바또르에서의 재판

라잔의 체포, 고문 그리고 살해에 대한 다른 소송이 촘바또르 지방법원에 등록되었다. 피고인들의 요청으로 사건이 그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나나 내 변호인들은 그 소송사건의 진행에 대해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한 군단의 유명한 변호사들이 피고인인 자야람 파딕칼씨를 변호하기 위해 왔는데, 그 중에는 현 케랄라 주정부의 법무관(Advocate General)이 된 라트나 싱씨도 끼여 있었다. 기소자측의 변호사로는 캘리컷에서 온 K.P 아츄타 메논 변호사가 내 사건을 맡았다. 그는 여든살이었고 정말 허약했다.

국내의 모든 주요 신문사들은 자신들의 최고 특파원들에게 소송사건의 진행 취재를 맡겼다. 압푸쿠탄 발릭쿤누의 기사들은 전국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M. 파킬 모하메드 판사가 촘바또르 민사법원에서 이 사건을 심리했다. 거의 백 명이나 되는 증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80명 가까이가 칵카얌 캠프에서 고문당한 피해자들이었다.

놀라운 점은 기소측 증인들 모두가 적대적으로 바뀐 것이었다. 이들은 조사관들에게 주었던 자신들의 진술을 철회했고, 법정에서 자신들이 이전에 한 진술들은 고문에 의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그 어떤 증인들도 이렇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나는 피고측 변호사들 뿐 아니라 검찰측인 아츄타 메논씨로부터 거의 이틀동안 증인심문을 받았다. 나는 증인석에서 이 열명의 사람들에 의해 약 열 시간 동안 심문을 받아야만 했는데, 이들이 던진 복잡한 질문 중 어떤 것도 나를 약하게 만들지 못했다. 나는 내가 매우 겁에 질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대담하게 느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진실, 오직 진실뿐이란 점 때문일 것이다. 일부 변호사들이 나를 혼란시키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는데, 내가 한 질문에 막 대답하기 시작하자 피고측 변호사들 중 한 명이 화를 내며 내 말을 막고는 나에게 명령조로 무조건 한 단어로 대답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황하지 않은 채 "싫소"라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그 후 우리 둘 사이에 논쟁이 얼마간 지속되었다. 마침내 판사가 중재를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라고 허락했다.

피고측 변호사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심문했다면, 검찰측인 아츄타 메논씨는 이와는 달리 특이한 방법을 취했다. 반대심문 마지막 날, 그는 나에게 단지 한 가지 질문만 던졌는데, 그 질문은 심지어 소송사건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당신은 이 사건의 증인으로 서기 위해 에루나쿨람에서 코임버터까지 당신의 변호사인 람쿠말씨와 함께 오지 않았나요?”이었다. 나는 이 질문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해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X 또는 Y씨와 함께 왔는지 아닌지는 이 사건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유명한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런 부적절한 질문을 던진 것에 나는 놀랐다. “네.”라고 대답하며 다른 질문을 기다렸지만, 그 질문을 끝으로 그의 심문은 끝났다. 모두가 이러한 중요한 사건에 이 변호사를 검찰측으로 임명한 당국의 진의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소송의 진행에 있어 계속되는 결점들은 그 뒤에 음모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라잔을 조사한 것은 전체적으로 범죄부서에서 이루어졌지만, 피고인의 대부분은 지방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오직 법죄부 소속 경찰인 자야람 파딕칼씨, 무랄리 크리스나 다스씨 그리고 쿤지 라만 남비알씨만이 라잔의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들 피고인들이 라잔에 대한 고문이나 살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법원은 이들을 살인혐의로부터 면제해 주었고, 피고인들은 일부 미미한 죄상과 관련하여 직역 일년형을 선고받았다. 세 명의 피고인 모두는 마드라스 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법정에서 마드라스의 법무관인 라자마닉캄씨가 법정에서 이들을 변론했고, 산카란 변호사가 나를 대표했다. 이 사건은 항소심 사건이었기 때문에, 재심이 필요치 않았다. 논쟁과 반론이 이어진 후, 고등법원은 이 세 명 모두를 무죄 석방시켰다.

***

나는 지금부터 비상사태 기간에 법무관으로 있었던 니렌 데이씨에 대해 몇가지 말하고자 한다. 그가 인도정부의 가장 높은 법률고문이자 정부의 모든 법적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무관이 된 것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은 정부와 함께 법적 문제들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비상사태 상황 하의 법무관의 역할은 매우 달랐다. 이 때 법무관이 된다는 것은 인디라 간디 수상이 이끄는 정부가 자행한 적나라한 인권 폭력 모두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도의 상임 변호사들 중 그 누구도 이 당시 그 자리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 니렌 데이씨 자신도 인디라 간디 수상이 그를 법무관에 임명하려는 것에 강력히 거부했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스웨덴인으로 그 당시 스웨덴에 머물고 있었다. 인디라 간디 수상은 그에게 만일 그가 법무관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그의 아내가 인도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녀는 만일 그가 노후를 아내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그 지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통지했다. 마침내 엄청난 고통과 함께 그는 마지못해 이를 승낙했다.

니렌 데이씨는 대법원에서 모든 판사와 상임 변호사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오늘날 경찰관들 모두는 길에서 누구에게라도 총을 쏘고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말을 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그의 마음에 죄와 같은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인도의 일반인들은 그의 이러한 말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했지만, 그의 진정한 의도는 전 세계에 얼마나 일반 민중들이 비상사태 동안 끔찍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니렌 데이씨는 비상사태 시간이 종결되자 그의 인격에서 이 기간동안의 오점을 씻길 원했다.

어느 날 에스와라 라이얼 변호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카루나카란씨의 항소사건 심리가 대법원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는데, 에스와라 라이얼씨는 나에게 니렌 데이씨가 무상으로 대법원에서 내 사건을 변호해주겠다고 자청해왔다고 말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비상사태기간 동안의 니렌 데이씨의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에스와라 라이얼씨는 니렌 데이씨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사건을 그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

촘바또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의 판결 후,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방법은 대법원에 항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했다. 나는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정한 채, 절망에 빠져서 모든 일에서 손을 떼었다. 인권 운동가인 무쿤단 메논씨가 나에게 다가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나에게 대법원의 최상임 변호사들 중 한 명인 탈쿤데씨가 내 사건을 매우 신중히 검토했고, 대법원에 항소할 기회가 있다고 느꼈다고 알려왔다. 그는 탈쿤데씨가 나를 무상으로 대변할 것이고 2만 루피만으로 이번 사건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에스와라 라이얼씨와 람 쿠말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 모두 탈쿤데씨의 도움을 받아서 한 번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2만 루피를 마련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에스와라 라이얼 변호사는 나에게 인도맑스주의공산당에 재정적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조언했다. 내가 그 당의 지도자들 중 아는 사람은 비스와나타 메논씨밖에 없었다. 나는 그에게 연락했고, 그를 통해 인도맑스주의공산당은 나를 돕는 것을 승낙했다.

나는 탈쿤데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나에게 또 다른 변호사인 파릭씨를 소개했다. 나는 공식 기록상으로 파릭씨에게 이 사건을 위임했다. 탈쿤데씨의 딸이 파릭씨와 함께 변호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녀가 이번 사건을 감독한 사람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결혼을 해서 델리를 떠났고, 그로 인해 사건은 휴지기에 들어갔다.





29  들빛회 소식지 제3호  justice 2007/01/11 4234
28  들빛회 소식지2호 입니다.  justice 2007/01/11 3982
27  들빛회 소식지 창간호입니다  justice 2007/01/11 3798
26  [알림] '아버지의 기억'저자 아치라바...  justice 2006/04/26 4993
25  아버지의 기억 16장: 아무에게도 향하...  justice 2006/03/14 3928
24  한 아버지의 추억 : 14장 비상사태...  justice 2006/03/06 5393
 한 아버지의 추억 - 13장: 촘바또르...  justice 2006/01/18 4023
22   한 아버지의 추억 : 제 11장: 인신...  justice 2005/11/09 4686
21  한 아버지의 추억 : 10장: 비상사태...  justice 2005/11/03 5255
20  한 마버지의 추억 : 9장: 한 몰인정한...  justice 2005/11/03 4261
 
  [1][2][3][4][5][6][7] 8 [9][10]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hompy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