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6-03-06 09:56:08, Hit : 5523
 한 아버지의 추억 : 14장 비상사태를 돌아보며

인도 역사상 1975년 6월 22일부터 1977년 3월 21일까지는 비상사태 하의 암흑의 날들이었다. 국내의 많은 이들은 비상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일반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지 깨닫지 못했다. 비상사태 상태는 특별한 상황 하에서만 선포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사태는 외국의 침략이나 국내의 폭력사태를 다루기 위해서 발효된다. 따라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전체 국민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인도에서는 비상사태가 국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국무총리였던 독재자 인디라 간디의 개인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포되었다. 그녀는 선거에서 패한 후 결과에 항의하는 소원을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보호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해서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을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인도는 암흑 속에서 깨어났다. 모든 부류의 인권들이 무자비하게 강탈당했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에 선포되었다.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망라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이 권리들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도 대법원은 특정한 제안들을 했다. 크리쉬나 라이얼 법관은 이들을 모아 법으로 편찬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살 권리(생명권)와 알 권리(정보권)이다. 이 두 권리가 보호받는다면, 다른 모든 권리들 또한 그에 따라 보호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 권리를 다룬 법률조항은 체포과정의 규칙과 체포된 이들의 권리 세부사항들을 명확히 규졍해 놓았다. 법률조항은 체포된 사람은 체포 후 24시간 이내에 법정에 출두되어야 하고 체포 후 48시간 내에 (구금시 가학행위를 방지, 조사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 놓았다. 만약 당국이 이 규정을 따랐다면, 라잔 및 그와 비슷한 다른 사건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가지 주요한 인권인 살 권리와 알 권리가 철저히 부정되었다는 것은 비상사태의 가장 비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내 아들의 비극은 이러한 권리의 부정이 야기하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비상사태는 25년 전에 해제되었다. 일반 대중은 그 날들을 거의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이것은 위험하다. 비상사태의 암흑의 세력들은 아직도 그곳에 존재한다. 독을 품고 있는 뱀처럼 그들은 구멍 속에 숨어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은 머리를 다시 쳐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계속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런 암흑의 힘에 맞서기 위한 강력한 방어체계가 세워져야 한다고 느낀다. 라잔 사건의 초기에서부터 나는 이와 같은 일이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후로 주욱 내 모든 일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 또한 그 일의 한 부분이다.

비상사태의 효력에 대해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행렬을 만들어 돌아 다녔다. 비상사태 기간동안 고문을 받았던 모든 이들이 참여했다. 비상사태동안 정권을 잡지 않았던 다른 모든 정당들이 우리와 협력했다. 인도청년연합과 인도민주청년연합 같은 좌파 청년 단체들이 조직인들이었다. 고디예리 발라크리쉬난씨와 P.P. 다산씨가 이 두 단체를 각각 대표했다. 인도막시스트공산당 대표자로는 고피 코타무리칼씨, 그리고 바라티야 자나타당 대표자로는 에투마누르 라다크리쉬난씨도 이 행렬에 참여했다. 나는 그 행렬의 지도자였다. 케랄라주 전체에서 사람들은 이 행진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수천명이 우리를 반기기 위해 왔다.

말라푸람 지역에서 온 작은 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한 여자 또한 이 행렬에 참여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마을의 관리였는데, 과격분자로 낙인찍혀서 체포된 후 수감 중 사망했다. 그의 사망 사유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그가 후송 중 타고 있던 경찰차에 불이 났을 때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진 목적은 A.K. 안토니 수석장관을 만나서 사건의 비망록을 전달하고 그에게 이 마을관리의 아내에게 정부시설 내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남편의 죽음을 보상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수석장관은 그 가족을 구할 힘이 있었지만,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 역사는 대처부족이나 게으름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는 잃어버린 아들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해 왔다. 지칠지라도 나는 여전히 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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