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6-03-14 11:35:10, Hit : 4202
 아버지의 기억 16장: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은 원한

인생을 고통과 눈물, 그리고 공포의 색감으로 묘사한 화가 칼람처럼 나는 내 투쟁의 끝에 와 있다. 모든 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려 할 때도 언제나 무언가가 남겨져 있다. 어두운 색깔들과 켜진 등불 속에서 이 예술가는 더욱더 외로워진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걷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게 내민 모든 손들은 나에게 친절을 퍼붓는다.

어젯밤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창문으로 은빛 섬광과도 같은 번개가 보였다. 아마도 늦은 밤이었을 것이다. 깊은 잠의 리듬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창문이 연못 쪽으로 나 있는 딸 아이의 집에 와 있었다. 번개가 치는 동안 반사된 물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라잔이 지금 내 기억 속으로 들어온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달빛처럼 그리고 내리는 비처럼 내 마음 속에 떠오른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과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심한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세계는 텅 비어 버렸다. 나의 태양은 졌다. 나의 별들은 사라졌다. 나와같은 입장이라면 어느 아버지라도 찬란한 기억에 젖어 아들을 위해 절규할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사후의 영혼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불타는 영혼이 내가 모르는 어느 황무지에서 울부짖고 있다. 만약 그 아이의 영혼이 길을 볼 수 있었다면, 여기에 왔었을 것이다. 이 곳에는 자신을 기억하며 영원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가 사랑한 어머니가 있고, 뒤에 남겨진 나, 아버지가 있다. 이 병약한 아버지는 이제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지만, 이 손들은 여전히 떨고 있다. 그 아이를 들어 올렸고 그의 가슴을 껴안았던 두 손은 여전히 떨고 있다. 왜 오지 않는 거냐, 내 아가야?

어렸을 적 내가 잠든 늦은 밤 지붕을 두들기던 비가 불러일으켰던 감정들은 희미해졌다. 비스듬한 지붕에 떨어지던 그 비는 음악이었다. 나는 이제 비가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음을 느낀다. 깊은 고통의 리듬 속에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내가 어렸을 때 공산당들은 카르키다캄의 달(7-8월)에 찬 바람에 떨며 비에 흠뻑 젖은 채 내 고향인 체르푸에 도착했었다. 한밤 중 광활한 논밭 한 편에 나타난 불타오르는 횃불 뒤에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한 공산주의자와 그의 지지자들이 있었다. 개구리와 귀뚜라미가 어울려 울어대는 그런 비오는 밤에도 공산당들의 생각과 감정은 눈부실만큼 밝게 빛났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때 그들의 눈에서 본 번쩍거리는 빛을 기억한다. 아츄타 메논은 그들 중 하나였다. 피곤한 눈과 면도하지 않은 한 얼굴로 메논은 한밤중에 나를 깨웠고, 그의 눈은 격렬하면서도 매혹적인 연민을 쏟아냈다. 하지만 후에는......

억수 같은 비는 결코 멈추지 않았고 계절은 오고 갔다. 한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들과 그 땅을 알았던 사람들은 나중에 그 비와 젖어있던 푸른 벌판을 잊어버렸다. 개구리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불타는 횃불의 열기와 밝음은 이젠 이들에게 낯선 것이 되었다. 아츄타 메논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 그를 사랑하고 흠모했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고 따르려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 늙은 남자의 뒤틀린 통찰력을 눈 감아 주는 것은 내버려두겠다. 하지만 나는 고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아무에게도 원한을 느끼지 않는다. 연민의 별들을 쏟아냈던 그 피곤한 눈과 면도하지 않은 얼굴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자 한다. 기억은 바래가지만, 나는 과거의 수많은 일들을 잊을 수가 없다. 삶은 나를 인생의 혼돈 깊은 곳까지 내려가도록 이끌었다. 나는 잔인함과 함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의 무력함을 맛보았다. 나는 사랑의 정점도 맛보았다. 마치 짧은 꿈에서 깨어난 후처럼, 라잔의 실종은 한 힌두어 선생의 자연적인 나태함으로부터 나를 일깨웠다. 그 때부터는 인간의 자각과 동정의 도움을 구하는 기나긴 여행이었다.

***

코루, 벤하르, 그리고 챠타만갈람 라잔은 나에게 칵카얌 수용소에 대해 말을 해 주었는데, 피범벅이었던 고문에 대해 말할 때에는 고통스런 기억으로 몸을 떨었다. 나는 결코 되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내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경찰 지프차가 들락거리고 젊은이들이 질질 끌려 들어왔을 때, 자야람 파디칼은 의자에 앉아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두들겨 맞았고, 나무 벤치에 손과 다리가 묶였다. 그리고 무거운 나무굴림대가 그들의 허벅지위로 굴러갔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참지 못해 정신을 잃었다. 소리치지 못하도록 경찰은 그들의 입에 천을 물렸다. 그 후 그들은 자야람 파디칼 앞으로 끌려나왔다. 그들에게 질문을 하는 동안 그는 날카로운 연필을 손 안에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그는 고문당한 이의 느슨해진 허벅지뼈 근육 사이에 연필을 찔러넣었다. 코루는 그 순간 당신이라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거라고 말을 했다. 연필에 찔려 나오는 비명은 수용소 밖에서조차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왜 그리 심하게 고문을 했을까?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말하면서 떨고 있었다. 사람이 몸의 고통을 극복하려 할 때면 마음에는 더 많은 상처가 생겨난다.

내 아들 라잔은 첫 번째로 고문을 당했다. 그들은 라잔에게 카얀나 경찰서를 공격할 때 훔쳐간 소총을 어디에 뒀냐고 물었다. 그 짧은 인생 동안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었던 그 아이는 고문 초반에 이미 지쳐버렸다. 그리고 나자 그는 나무 벤치에 묶여서 굴려졌다. 그 아이가 어머니를 소리높여 불렀을 때, 그들은 그의 입에 천을 물렸다. 고문이 끝나갈 무렵,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소총이 있는 곳을 찾아주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야람 파디칼 앞으로 끌려갔는데, 자야람은 경찰에게 라잔을 지프차에 태우고 가서 소총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 얘는 다시 울었다. 그는 경찰들에게 자신은 전혀 소총에 대해 알지 못하고 고문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고 말했다. 풀리깐단 나라야난은 무거운 경찰 부츠를 신은 발로 라잔의 복부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커다란 비명소리와 함께 그는 뒤로 쓰러졌고, 바닥에서 몸부림치더니 미동도 없이 조용해졌다.

경찰들은 라잔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걱정하기 시작했다. 다른 젊은이들은 보초들이 낮에 한 명이 죽었다고 중얼대는 소리를 엿들었다. 그들은 라잔의 몸을 자루에 넣어서는 지프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그의 시체를 숲 속 한 가운데에서 뼈도 남지 않게 설탕과 함께 태워버렸다.

이 모든 이야기는 수용소에서 살아 온 아이들이 해 준 이야기다. 그 얘들이 몸에 있는 결코 희미해지지 않는 고문의 흉터들을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내 입에는 침이 고였고, 눈은 어두움으로 가득찼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메아리쳤다. 잠시동안이지만, 나는 내 기대처럼 공학학사 학위를 갖고 돌아왔을 아들을 생각했다.

빛은 사라졌다. 아니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쫓아내졌다. 누군가가 라잔이 풀리깐단에게 맞아죽기 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됐다 얘들아, 됐어. 내 아들이 목숨을 구걸하는 이야기는 그만하면 됐다. 두 손을 모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얘의 여린 얼굴이 내 맘에 떠오른다. 오, 아들아. 이 무력한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 나는 그렇게 울부짖는다.

이야기의 세계는 흘러간다. 지식의 모든 조각에마다 진실의 메아리가 있다. 사냥꾼들은 사냥을 계속한다. 그리고 희생자들은 두 손을 모아 살려달라고 빌고 있다.

***

나는 람 쿠말 변호사와 저널리스트인 아푸쿠탄씨와 함께 칵카얌 수용소를 돌아보았다. 비상사태의 물결은 물러나고 수용소로 사용되던 건물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 곳은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건물이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자야람 파디칼 씨가 이 곳을 수용소로 결정한 이유라고 는 확신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나는 신음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아푸쿠탄 발리쿠누씨는 그가 쓴 ‘칵카얌 수용소 이야기’이라는 책을 통해 라잔의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공산당 기관지인 데라브히마니를 통해 그가 벌인 전쟁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의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코임바토르 청문회를 보도하는 책임자였는데, 나에게 나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에 매우 정확했다. 그는 증인들이 진술을 바꿀 것을 예견했다. 그의 사건에 대한 관찰력과 분석력은 나를 놀라게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 사이에는 깊은 유대감이 생겨서 그는 나를 마치 아버지처럼 대했다.

칵카얌 수용소를 돌아보며 나는 다시 감상에 젖었다. 자야람 파디칼씨가 항상 앉아 있었던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뾰족한 연필을 굴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내 아들이 세상에 작별인사를 한 곳도 이 방이었다. 그리고 고문에 몸부림 치던 곳도 이 방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저주했을 거야. 그는 죽음 앞에서 세상의 모든 푸르름을 저주하고 원망했을 것이다. 아니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 아이는 매일 자신을 기다리던 어머니와 어릴 때 자신을 안아주었던 아버지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었을까? 추억 속에서 내 눈시울은 젖어들어갔다.

아푸쿠탄 발리쿠누씨와 쿠마르씨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할라치면,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신경을 썼다. 귀뚜라미와 작은 벌레들은 여전히 수용소 밖의 정적 속에서 울음어대고 있었다. 나는 죽음에 대한 투쟁의 끝자락에서 삶에 대해 이야기한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왔다. 이상을 넘다든 그들에게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라잔이 낙살바리(좌익무장) 투쟁 후 온 나라에 불어닥친 그 새로운 바람에 휩슬렸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낙살라이트 (인도의 극좌혁명 그룹)에 몸답고 있는 친구에게 라잔이 그 조직의 일원이었는지 물어보았을 때, 그는 라잔은 단순 지지자였을 뿐이었다고 대답했다. 그것을 사실이었을 것이다. 경찰서를 습격해서 총을 탈취했다는 것은 라잔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런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경찰서를 습격한 청년들 중에 라잔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라잔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들 모두를 수용소로 붙잡아와서 고문을 했다고 한다. 내 정의의 관점에서, 나는 경찰의 이러한 무자비함이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들은 바로는 연필 고문은 잡혀 온 모든 청년들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청년들은 먼저 고문받은 사람의 처절한 절규와 풀려버린 눈빛을 보며 다음 차례는 바로 자신이라는 공포에 떨었던 것이다.

나는 라잔이 소리없이 고문에 몸을 맡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렸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유대인들이 죽음을 기다리면서 줄을 서 있으면 나치장교가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이들은 개의치 않고 부부를 연달아 호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틀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그를 잃는 것이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유명한 자동차 부품상인 폴 또한 칵카얌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경찰에 붙잡힌 것을 일찍 알고는 카루나카란에게 연락을 해서 폴을 석방시켰다. 폴은 칵카얌 수용소를 떠날 때 가지고 있던 500루피를 같이 붙잡혔던 청년들에게 주고 갔다. 누군가에게 부탁해 청년들은 그 돈으로 잠시나마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숲속에서 불태워진 라잔은 그 배고픔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어미는 그가 죽기 전에 한 주먹의 밥도 먹이지 못했다. 나 또한 그의 장례식에서 아무것도 바치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어느날 밤, 밤새 세차게 내리는 빗 속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면, 그 소리는 배고픔에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 먹을 것이 있음에도 내 아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 역시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푸쿠탄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를 위로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침착한 마음으로 모든 일어난 일들에 맞설 수 있어야 해요. 그 길을 통해서만 우리의 사회적 의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어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비상사태가 끝난 후 이와 같은 무자비함에 대한 투쟁은 칵카얌 수용소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다음 세대가 또다시 그와 같은 고문을 당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침묵에 잠겼다. 건물 어느 곳에도 이제 경찰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13일동안 계속된 청년들에 대한 경찰의 고문으로 인한 고통의 흔적 또한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라잔의 한숨과 눈물을 기억하고 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벽들은 소리없이 한 켠에 떨어져 있었다. 벽에는 거미줄이 처져있고, 닫힌 창에는 흰개미가 가득했다. 창 하나를 열자 햇살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느 알 수 없는 황무지에서 내 아들의 영혼은 아직도 떠돌고 있지 않을까? 나는 철창에 뺨을 갖다 대었다. 오, 아들아. 여기 얘비가 있다.

바깥의 햇살이 내 시야를 흐리게 했다. '영혼이 눈이 있다면, 아들이 나를 보고 있을 거야'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나의 홀린듯한 눈빛을 알아볼 것이다. 바깥의 마른 잎들로부터 나는 소리는 무엇일까? 누구의 발자국 소리지? 나는 유심히 귀를 기울여 본다.

나는 라잔을 죽게 한 경찰들에게 복수를 해야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하지만 힌두교의 가르침에서 자란 나는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힌두절과 기도, 신에 대한 봉납과 종교적 풍습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태어난 이에게 복수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다. 하지만 턱수염이 떨릴 정도로 격력하게 논쟁하는 푸리코단 나라야난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볼 때면 내 마음 속에선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나는 아들이 경험한 절망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기억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복수를 떠올린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분노가 내 마음에 스며든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것들은 더욱더 분명하게 생각이 난다.

***

“당신은 그 아이에게 관심도 없어요.” 죽음이 임박해서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때 나는 수일동안 아무런 성과없이 이곳저곳을 미친 말처럼 뛰어다닌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칵카얌 수용소에서 시간이 하루하루 퇴색한 후, 아들을 구하지 못한 무력한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말이 점차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 몸에는 삶의 맥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아들아, 내가 너를 고통스럽게 했다면 이 저주 받은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내가 어둠 속에 빠져들어갈 때면 에스와라, 쿠마르 변호사, 바하부딘 교장선생님, 발리쿠누 씨 등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격려해 주었다.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어 온 그들에게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 친구들이여, 고맙구려. 고마워요.

내 험난한 여정도 끝나간다. 휘몰아 치는 비도 곧 잠잠해질 것이다. 그 험난한 비를 나를 위해 그리고 나와 함께 맞아 준 동지들이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이 느낌을 가슴 속 깊숙이 호의로 간직하고 싶다.

라잔은 노래를 잘 불렀다. 내가 라잔이 어머니가 부탁할 때만 노래를 불렀다고 썼을 때 딸들이 화를 냈다. 그들은 라잔이 자신들을 위해서도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노래를 불러준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아이의 노래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라잔은 조잡하게 녹음된 자신의 노래를 자기가 죽고 난 후에야 아버지가 듣게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오, 아들아, 네가 살아있는 동안 이 노래들을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나는 그 노래들 속에서 꼭 죽음을 예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삶이 싫었더냐, 아들아?

이제 그만 마쳐야겠다. 비는 계속 휘몰아 치고 있다. 나는 이런 장대비가 지붕을 두드릴 때면 아들을 생각한다. 꼭 마치 누군가가 잠겨진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것 같다. 살아있는 자의 영혼이 죽은 사람의 영혼과 교류하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이 비오는 밤, 나는 카세트에서 라잔의 노래를 듣는다. 나는 이 테잎 녹음기로 상실의 감정을 만회하려고 애를 쓴다. 이 못난 얘비가 생전에 듣지 못했던 그 아이의 노래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다. 내 아들은 외로이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다.

나는 복수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직도 대답을 할 수 없다. 대신 나는 이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싶다. 왜 당신들은 죄없는 내 아이가 죽은 뒤에도 이 빗 속에 서 있도록 만들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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