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11 17:48:15, Hit : 4108
 들빛회 소식지2호 입니다.

지학순 주교 기념사업회 회보 제2호

정의가 강물처럼


그분이 홀로서 가듯

                                                                 구상 / 시인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저 2천년 전 로마의 지배 아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의 수모를 받으며
그분이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악의 무성한 꽃밭 속으로
진리가 취찮고 슬프더라도
나 혼자의 무력에 지치고
번번이 패배의 쓴 잔을 마시더라도
제자들의 배잔과 도피 속에서
백성들의 비웃음과 돌 팔매를 맞으며
그 분이 십자가의 길을 호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정의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한 것이요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요
우리의 바람과 사랑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서
아무런 영웅적 기색도 없이
아니 볼꼴 없고 병신스런 모습을 하고
그 분이 부활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무뚝뚝함 속에 따듯한 인정이
- 지 주교를 모신 15년을 회고하며 -

최재선 /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사무국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 사회사목에 투신하여 온 25년의 간의 삶에 있어서 지주교님을 보필한 15년간의 삶은 내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20대 말에 시작한 이 삶은 30대와 40대의 청 장년기를 거친 황금기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주교님과의 만남은 내 삶을 규정한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지 주교님을 처음 뵈온 것은 1972년 8월20일 경이다. 남한강의 대홍수로 서울의 일부 지역까지 혹심한 피해를 본 그 때 나는 미국 주교단의 해외원조 기우인 가톨릭구제회(CRS-USCC)의 원조업무를 담담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 원주간의 교통이 좋지 않았고 또 대홍수로 교통이 끓진 때였는데 가톨릭 구제회 서울 사무실에 지주교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벼락같이 호령을 하셨다. 지금 사람이 죽고 집이 떠내려가고 난리가 났는데 도대체 구제회가 무얼하고 있느냐는 호령이셨다. 당시 구제회 책임자셨던 안주교(몬시뇰 캐롤)님이 놀라셔서 나를 원주에 파견하셨다.
  현지 상황을 살펴보고 적절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호랑이 같으신 주교님이라 또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원주에 갔었는데 의외로 주교님은 당신이 타시는 지프차를 내어 주시면서 피해지역을 잘 돌아보고 잘 도와달라는 부탁을 부드럽게 하셨다. 며칠 동안 제천, 영월, 평창, 단양 등지를 돌아보고 귀경하여 긴급구호 겸 복구사업 지원으로 많은 물자를 원주에 보냈었다. 이를 모태로 원주교구에서는 재해대책 사업 위원회가 설치되고 그 후 여러 외국 원조기구의 도움을 받아 사회개발위원회도 개편되어 지역사회에 크나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지주교님을 자주 뵈옵게 되었는데 호랑이 같으신 인상 속에 부드러움을 감추신 주교님의 면모는 지주교님과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반추되는 모습이셨다.
  그러나 실제로 지주교님을 직접 모시고 보필하게 된 것은 1975년부터였다. 미국 가톨릭 구제회가 한국에서의 철수를 계획한 것이 1974년이었는데 나는 척수계획의 뒷마무리를 마지막까지 남아서 하였다. 동시에 가톨릭 구제회는 철수 후에도 각종 사회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한국교회기구(까리따스)의 설립을 한국 주교단에 제안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한국 까리따스 설립에 관한 실무적 준비를 주교회의로부터 위임받았다. 1974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지금은 고인이 된 협동교육연구원 원장 박희섭씨와 나를 아시아 대륙 까리따스 총회에 파견하여 로마 본부의 국제 까리따스, 아시아 각국 까리따스와 접촉하여 새로운 기구 설립의 제안서를 준비토록 하였다.
  1975년 주교회의 춘계회의에서는 이를 검토한 후 마침 8개월간의 영어생활을 마치시고 출옥하신 지주교님께 이 기구의 책임을 맡겼다. 지주교님은 미국 가톨릭 구제회의 마지막 사무실(현 사회복지위원회의 장충동 사무실)에 오셔서 나를 부르시더니 “당신이 제안서를 만들었으니 여기서 일하면 좋겠군”하시면서 “일은 당신이 잘 알 테니 알아서 하고 중요한 것만 결재를 받으시오”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여 나는 주교회의 인성회의 만년 사무국장이 되어 1990년 박석희 주교님이 새로 맡으실 때까지 15년 동안 주교님을 모시게 되었다.
  주교님은 일단 사람을 쓰시면 철저히 당신이 쓴 사람을 믿으셨다. 판단력과 결단력이 항상 빠르셨으며 정직한 것을 좋아하셨다. 이러한 분 을 어른으로 모시었기에 항상 빠르셨으며 정직한 것을 좋아하셨다. 이러한 분을 어른으로 모시었기에 일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중요한 결재에도 대강의 설명을 들으시고는 즉시 결재를 하셨기에 매사에 철저한 준비와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했다. 잘못 된 것이 있을 때 즉시 잘못했다고 하면 받아들이셨다. 인성회의 노선에서 현대 한국 사회의 고통 받는 계층인 농민, 노동자, 빈민들의 문제를 가장 우선으로 삼았었고 이들을 위한 지원을 최우선으로 삼으셨다. 지주교님이 인성회를 맡으셨을 때 수 낳은 외원이 이들 기층운동에 투입되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농민사목, 노동자사목, 빈민사목의 밑거름이 되어 왔던 것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이로 인해 반대 의견에 직면하신 적도 많으셨다. 그러나 이런 반대 의견에 대하여서도 주교님은 단호하셨다. 수많은 외원 단체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주교님을 만났고 주교님으 명망으로 흔쾌하게 지원을 결정하였다. 인성회라는 교회 공식기구가 70년대와 80년대에 교회의 기층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지주교님 덕분이다.
  지주교님은 겉으로는 무뚝뚝하시고 아기자기한 분은 아니셨으나 마음은 항상 따듯한 분이셨다. 지주교님을 모시고 많은 여행을 했는데 기차간에서 숙소에서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해방 후 이북에서의 생활,  월남하실 때 이야기, 월남해서 어렵게 서품 받으신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하셨다. 한 번은 로마에서 전 세계 총회가 있었는데 회의가 끝나자 “자네 로마 처음이지” 늦게 귀국해도 좋으니 며칠 묵으면서 구경하고 가게. 로마에 자주 올 수 없을테니“ 하시면서 지갑을 여시고 가지신 돈 모두를 세어보지도 않으시고 주신 기억이 난다. 인간적인 풍모를 엿 볼 수 있는 기억이다.
  중요한 문제로 결재서류를 가지고 원주에 가면 “뭐하러 왔어? 자네 밥 먹었어?” “아직 못 먹었습니다”하면 “밥도 못 먹고 뭐하러 왔어”라고 무뚝뚝한 말씨로 말씀하시고는 주교관 식당에 밥을 차려 주라고 하시곤 하셨다. 일정이 늦어지면 “자네 여기서 가고가, 마누라한테 내 쫓길까봐? 여기서 잤다고 그래”하시곤 했다.
  덕분에 주교관에서 여러 번 잤었다. 항상 무뚝뚝한 말씨를 쓰시므로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뒤에는 항상 인정이 어린 분으로 생각되어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정의와 진리를 위하여 횃불을 드셨던 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기둥이 되셨던 분, 그리하여 한국 현대사와 한국교회 2백년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셨든 분이다. 이런 분을 모시고 살아온 15년이라는 세월은 나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세월이다.


큰소리치며 원조 받아내
- 독일 유학 시절에 뵌 지 주교님 -

장용주 신부 / 광주교구 사목국장


  나는 독일 유학 시절에 지학순 주교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당시 지주교님은 당신의 구속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셨고, 특히 독일 가톨릭 교회는 주교가 시국사건과 연류 되어 구속되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지대한 관심 속에서 구명운동을 활발히 전개했었다. 당시 광주대교구 신학생으로 독일에서 공부하던 나는 정의를 위해 용기 있는 삶을 살고 계시는 지주교님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면서 한 번 뵙고 싶었었다. 그리고 그 뜻은 지주교님의 독일 방문으로 마침내 이루어졌다.
  지주교님과의 첫 만남은 짧았고 대화 역시 길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의 유신 독재 체제와 인권상황에 대한 인식의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친분이 두터워져 내가 독일에서 신품을 받을 때 친히 오셔서 나에게 제의를 입혀 주시고 첫 미사 강론까지 해 주셨다. 그 후 지주교님이 독일을 방문하실 때면 매번 그분과 동행하면서 통역을 하곤 했기에 나로선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지주교님을 모실 때마다 느낀 바이지만, 그 분의 정의에 대한 열정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나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 주었다. 70년대 한국교회는 재정적으로 윤택하지 못했기에 외원에 의지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주교님들이 독일의 원조 기관인 미세레올(Misereor)을 자루 방문했었다. 이처럼 마르크(독일화폐)를 얻어가는 주교님들의 미세레올 방문을 우스개 소리고 ‘마르꼬 성인 조배’라고들 했다.
  지주교님 역시 상대적으로 가난한 원주교구를 돌보고 계셨기에 누구보다도 마르꼬 성인 조배를 많이 하신 분이셨다. 사실 원조를 청하러 가는 입장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미세레올의 원조 담당관으로 근무하는 이들은 평신도들이었고,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주교님들을 계속적으로 대하다 보면 원조를 청하러 간 사람의 입장에서 다소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고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내가 지주교님을 모시고 미세레올에 찾아갔던 때의 체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독일 사람들은 원조를 주면서도 자신들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따른 절차를 밟도록 요구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독일식 사고의 틀에 젖어있지 않은 우리에게 때때로 부담스럽고 불쾌감마저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주교님은 당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생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자 원조를 청하였다. 독일의 원조 담당관은 당연한 절차로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하며 자신의 분석적 판단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이를 지주교님께 설명 드렸더니 그분은 화를 버럭 내시면서 “내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데 왜 말이 많으냐”고 답하라 하시며 “미세레올의 돈은 옥일 교회의 돈이 아니요, 하느님께서 좋은데 쓰도록 마련하신 자금이니 내 놓으라”고 전하라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였지만 그대로 통역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전해 들은 독일 담당관은 의외로 지주교님께 존경을 표하며 승낙하였다. 나는 속으로 “얻어먹는 주제에 큰소리치시는 구나”하면서도 일종의 환희를 느꼈다. 물론 정의를 위한 투신적 삶을 사시다가 구속까지 되신 지주교님의 명성과 소신이 이 같은 일을 가능케 했으리라 생각한다.
  정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야말로 참으로 용기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나는 지주교님을 통해 감명 깊게 배웠다. 지주교님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가셨지만 그 분은 우리 시대에 용기 있는 참다운 지성인, 양심있는 종교인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한강다리 통과 수칙

박의근 / 본 회 집행위원장


  나는 요즘 시력을 잃고 응결된 내면의 세계에서 운명의 흐트러짐이 안타까워 살아남으려는 의지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절벽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인재(人災)가 많은 오늘 서울에 살면서 과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야 하겠는가?
  딸아이 셋 중에 둘째와 셋째가 매일 강동에서 한강을 건너 강북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침 7시경 한강을 건너 강북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침 7시경 집을 나간 아이들은 밤10시가 넘어야 귀가한다. 평소에는 불량배들이 많아 걱정이지만 성수대교 참사 이후 수시로 전화를 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참을 수가 없다. 아내의 주장에 따라 밤에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부부가 같이 가서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모름지기 긴장의 도강을 일가족이 함께 운명의 행진으로 강행하고 있다. 아마도 다리를 이용하는 자녀들의 부모들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주문은 이렇다.
  “엄마가 수영을 못하니까 구명대를 차에 준비하라.”
  “정지하지 말고 가급적 빠른 속도로 건너자.”
  “멀리서 보고 다리에 자동차가 정체되어 있으면 진입하지 말고 차가 쉽게 달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지나가도록 하자.”
  “다리를 건널 때 안전띠를 풀고 창문을 열어놓고, 문고리에 손을 올려놓으라.”
  도무지 특공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함이 학생들 사이에 수칙으로 등장한 듯하다. 다리를 지나올 때 오금이 저려 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다이빙을 30년 가까이 해왔고 심야에도 먼 바다의 수심 40m에 잠수도 해보며 군 복무를 했을 뿐 아니라 담력이 큰 남자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강가에서 살아서 물을 좋아하고 그 자연을 감사하는 맘이 풍족할 뿐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4대 강을 딸딸 외우고 시험을 치곤하지 않았던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아마존강으로부터 라인강의 기적, 다뉴브의 왈츠, 런던의 테임즈강, 백두산의 두만강과 압록강, 백마강의 달밤, 낙동강 칠백리와 오리알 등등의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지금은 성수대교 참사로 다 무너졌다. 내가 살고 있는 정도(定都)600년의 젖줄인 한강은 다리가 제일 많이 무너져 내려 세계적인 기록을 남김으로써 수치스런 강이 되고 말았다.
  공무원이 세금을 통째로 다 빼 먹을 뿐 아니라 다리공사에서도 부실한 공사와 감독으로 날벼락 같은 붕괴 참사가 발생함을 볼 때 정말 여태까지 운도 좋았고 무식한 것이 약이라고 심상 편하게 살았었나 라는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가 힘이 든다.
  강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도덕심이 없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동들에 의해 오염이 또한 얼마나 극심한가? 소위 ‘그린(GREEN)' 활동들이 활발하여 지구 살리기, 땅 살리기, 물 살리기, 쓰레기 줄이기, 샛강 살리기 등 온통 살리기 운동에 모은 매스컴과 나라가 떠들썩하다. 중금속과 농약 오염의 농산물은 물론 물도 마음 놓고 마실 수가 없고 살리기만 하자니 결국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인가? 실로 죽어가는 것이 공해에 오염된 환경뿐일까? 더더욱 심각한 것은 구조적으로 만연된 후진국형 부정부패와 도덕성을 확립하지 못한 썩은 마음의 강물이다. 그 크기와 탁도의 정도가 어떤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양심과 도덕의 샛강을 살려서 정의의 강을 만들지 않고서는 우리들이 설 자리도, 선진국의 희망도, 후손의 업적 기대도, 모든 것이 물거품일 것이고, 환경 정화운동의 성과도 없을 것이다. 그 정화운동을 하면서 또 빼먹을 것이 아니겠는가?
  맑고 깨끗한 강가에서 생활하며 낚시대 드리우고 풀밭에 누워 태양과 상쾌한 바람을, 아름다운 단풍과 낙엽을, 그리고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재롱을 떠는 고추잠자리의 여유로움을 기대한다면, 이기적이고 비겁한 마음을 씻을 정의의 강물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청년시절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지학순 주교님은 정의의 샘물이었다. 그분은 스스로 불의와 타협할 수 없는 분이셨고 주교 신분으로 감옥으로 갈 것을 이미 알고 귀국하여 감옥으로 가시면서 “안 나오겠다. 당국에서 출옥시킨다 해도 민주회복이 될 때까지 그곳에 있겠다”고 나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학순주교 기념 사업회는 정의의 샘물을 널리 보급하고 뜻을 같이하는 분들의 양심에 흐르는 물줄기들을 한데 모아 이 나라에 정의의 큰 강이 흐르게 해야 할 것이다. 마음 놓고 한강 다리를 건너다닐 수 있었으면 한다.


어떤 삶의 모습
- 마쓰시다 고모노스께의 경우 -

김영주 / 본회 출판위원

  만 아홉 살 때 남의 집 점원으로 들어가 스물 한 살에 독립, 뒷골목 작은 공장에서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계 굴지의 기업 마쓰시다 전기를 일으켜낸 마쓰시다 고오노스께의 에피소드는 신화적인 그의 존재에 못지않게 너무나 많다.
  어느 날 공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 때 그를 처음 대하게 된 신입사원이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큰 산을 우러러 뵙는 듯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즉시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이 사람아 무슨 말인가. 자네 후지산에 올라가 본 일이 있나?“ ”아직 없습니다“ ”그래 자네 후지산이란 멀리서 보면 참으로 모습이 아름답지, 너무나 수려해 아름다움에선 세계의 모든 산을 대표하는 산이지. 그러나 막상 후지산에 올라가 보면 썩은 나뭇가지가 가득하게 쓰레기로 쌓여 있거든. 멀리서 보던 아름다운 산이 아니란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일세. 자네들이 멀리서 보면 대단한 사람같이 보일지 몰라도 가까이서 보면 역시 보통사람에 불과해 결점도 많고...자네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정신을 가지려고 노려하는 중이라네.”
  1929년 미중유의 불황을 뛰어넘은 지 3년이 되는 해 마쓰시다 전기는 순조로운 경영을 보이고 있었다. 생산부문에 약 천 명, 영업부문에 약 2백 명, 사업 분야도 배선기구, 전열기, 건전지, 램프, 라디오 등에 걸쳐 2백여 품목을 생산하는 규모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장인 마쓰시다는 이런 신장발전을 기뻐하기에 앞서 무엇인가 허전하고 부족한 감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못 이겨 어떤 종교단체의 본부를 견학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억지로 떠난 견학이었지만 막상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건물의 웅장함 씌어진 자재의 화려함, 예술성을 겸비한 색채의 조화, 거기에 쓰레기 하나도 볼 수 없는 청결함, 아직도 진행중인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밝은 얼굴들, 더욱 놀란 것은 일꾼의 대다수가 봉사활동을 하는 신자들이라는 점, 힘든 일도 서로 먼저 하겠다며 협력하는 모습 등 모두가 자기 회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들이었다.
  돌아오는 차 중에서는 물론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낮에 본 그 모습이 떠올라 흥분 속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나 멋진 경영인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예술품과 같은 것들! 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일꾼들의 밝은 모습들, 더욱이 그 안에서 균형 있는 발전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 업계는 어떤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먹느냐 먹히느냐의 경쟁 속에 설상가상으로 불경기를 만나 도산을 하고 있는데 그 곳은 우리와는 전혀 딴 세상이 아닌가! 우리와는 전혀 딴 세상이 아닌가! 우리와는 어디가 다르기에 저런 결과를 가져왔을까...종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번민 속에 쌓인 그는 마침내 크게 깨달은 바 있었다.
  “종교란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평화를 주어 인생을 밝고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이른바 ‘싱그러운 사업’이나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도 인간생활의 유지향상을 위해 필요한 물자를 생산 공급하는 풍요로움에 의해 그 행복이 유지되고 계속 향상되어 간다. 잘 생각해보면 어느 쪽도 불필요한 것이다. 사업은 그 중에 하나인 ‘물자’를 종교는 다른 한쪽의 ‘정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정신 쪽은 희망을 제조원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서, 물자의 제조원은 여러 가지 문제 휩 쌓여 아직도 낮은 단계에서 번민하고 있다. 종교는 사람을 구원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우리 상공인들은 물자를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우리 상공인들은 물자를 생산하고 판매함으로써 돈을 번다는 통념 속에서 일해 오고 있다. 이것이 양자 간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 상공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분명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 때 부터 산업인의 참된 사명을 확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1932년 5월 단오절을 기해 전 직원을 모아놓고 마쓰시다 전기의 사명을 분명히 밝히기에 이르렀다. 사장이나 평직원이나 우리 모든 산업인의 사명이란 가난을 이겨내는 데 있다. 사회 전체를 가난으로부터 구하여 모든 사람들이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해야만 한다. 물자의 생산이나 판매의 목적은 그 공장이나 상점을 번영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에 의해 사회를 보다 살찌게 하고 안정 속에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런 숭고한 의미를 알 수 있을 대 비로소 그 공장이나 상점이 참된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마쓰시다 전기의 참된 사명은 물자의 풍부한 생산을 통해 얻어지는 풍요로움보다는 한 차원 더 높은 사회적 안정과 행복의 생산을 통해 마침내 이 땅을 낙원으로 건설해 가는데 있다.
  우리는 마쓰시다의 번영을 위해 일한다는 낮은 차원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해 가는 드높은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구구절절 가슴을 헤쳐 가며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져갔다. 마침내 몇몇 직원들은 숭고한 사명감에 벅차 흐느껴 우는 사람이 생겼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많은 직원들이 가슴에 벅찬 감격과 화끈한 열기를 느꼈다. 지금까지 자기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천근같은 중압감이 씻은 듯 사라지고 눈앞이 환이 밝아 오면서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단순한 월급쟁이, 평범한 회사원, 아무 희망도 없고 쓸모없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숭고한 사명 속에 ‘성스러운 일’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많은 직원들은 감격에 겨워 단상으로 뛰어 올라와 소감을 발표하겠다고 소리쳤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선배도 후배도 없었다. 단상을 차지한 이들은 차례대로 소감을 말했다. 한 사람의 발표 시간은 3분에서 2분으로 다시 1분으로 점점 줄어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무엇인가 한 마디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장인 마쓰시다 개인이나 마쓰시다 전기 회사를 위해 일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마쓰시다 전기를 통해 이 사회의 발전과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나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한 ‘성스러운 일’에 모든 것을 바쳐 땀흘려 일해가자.” 결론은 한 목소리였다. 이날부터 모든 직원들은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일했다. 눈빛이 변하고 얼굴마다 화색이 돌았다.
  마쓰시다 전기 설립6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이 성대하게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인사했다. “지금부터 60년 전 마쓰시다 전기를 창설할 때는 불과 셋이 일했습니다. 60년이 지난 오늘 우리 마쓰시다에는 6만이 넘는 사람이 일하고 있으며 관계회사까지 합치면 15만이란 많은 사람들이 한 식구가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60년 이라면 개인적으로는 환갑인데 이것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셈이 됩니다. 마쓰시다 전기도 창설 당시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세 명이 아닌 15만 명의 식구들이 새 출발을 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다음에 맞이할 환갑 때는 물론 나는 늙어 죽고 없을 것이며, 여러분 가운데도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마쓰시다 전기는 더욱 발전하는 가운데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난 60년 동안 여러분이 이룩해 낸 이 커다란 업적에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인사를 마친 그는 단상에서 내려가 사람들 앞에 큰 절을 세 번 하면서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고개 숙여 인사할 때마다 만장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마쓰시다 고오노스께는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 마쓰시다 전기는 내 것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것이다. 나는 회사의 선량한 관리자일 뿐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일자리를 얻어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하나라도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게 해야한다. 우리는 사회발전을 위한 ‘성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우리과 같이 살아가는 이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웃의 많은 사람이 어려운 형편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조금 여유가 있다거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착실한 불교 신자였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회사에 상담역이라는 사람을 두었는데 이분은 불교의 승려였다. 이분은 공장 안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아침, 저녁 회사 발전을 위해 불공을 드렸으며 마쓰시다 전기가 위급한 문제에 부딛 칠 때마다 작은 목적의 이익을 탐하지 말고 큰 목표를 향해 가도록 권고했다.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하도록 권유했다. 마쓰시다는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마쓰시다 전기가 보통 기업이 아닌 중생육도 즉 기업을 통해 중생을 살려가는 일을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 사명을 다하는 데 전력한 것이다.
  1989년 4월27일 마쓰시다 고오노스께는 94세로 그의 생애를 마쳤다. 세계의 상공인들은 세계 산업발전에 공헌한 커다란 업적을 찬양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그가 검소하고 겸손한 생활 속에서 중생과 함께 생활한 참다운 인도주의 정신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했다.


인간의 기원과 목적

지학순 / 주교

우리 사람은 누구나 가끔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서 생겼으며 우리는 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가끔 삶에 대한 염증을 느끼며 죽어버리고 싶은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우리는 죽어서야 되나 하고 살아야 할 의무를 느끼며 살기 싫어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항상 고생스럽게 살면서도 언젠가 한 번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그 희망을 채워보지도 못한 채 죽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란 정말 이렇게 허무한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이런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여 보기로 합시다. 정말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저 오랜 옛날에 몇 천만 년 몇 억만년 전에 우연히 저 혼자 생겨난 것이라고 우겨대고 있습니다. 정말 그 사람들의 말대로 세상은 우연히 저 혼자 생겨났을까요? 지금 우리는 세상에서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진 어떤 기계가 저 혼자 우연히 생겨난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는 훌륭하게 잘 만들어진 기계를 보면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은 머리가 좋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도 저 혼자 생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잘 만들어진 훌륭한 기계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기계가 너무 크니까 그 정밀한 조직을 우리가 한 눈에 즉시 알아볼 수 없지만 이 세상이란 기계는 기가 막히게 크고 또 깜짝 놀랄 만큼 자세하게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 하늘에 수 백만개의 별들이 시속 백만 킬로나 되는 속도로 서로 달리고 있어도 한 번도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이 움직이고 있는 기묘한 조직을 보십시오. 비행기가 충돌 했다는 소식은 우리가 가끔 들어도 별들이 충돌해서 완전히 파손되었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이렇게 되면 세상은 다 없어져 버리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이것이 저 혼자 우연히 생겨나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또 우리 지구를 보세요. 지루는 굉장히 크지만 다른 별들에 비하면 가장 작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직경 1만3천 킬로나 되는 지구는 몇 만년 혹 몇 십 만년 전부터 굉장한 속도로 자전하고 또 태양을 공전하므로 하루, 한 달, 일 년이란 정확한 시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지구가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 가면서도 한 번도 연착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다 저 혼자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 우주 자체가 훌륭한 분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그 분에 의하여 운전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바로 조물주 즉, 천주님이십니다. 또한 세상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물리원칙을 보십시오. 모든 물체는 다 일정한 물리원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리원칙이 우연히 생긴 것이라면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왜 마음대로 고쳐놓지 못할까요? 만일 우리가 기온이 높아도 더위를 느끼지 않고 기온이 낮아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기온이 섭씨0도 이하로 내려가도 물이 얼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오늘의 과학은 대단히 발전해서 심지어는 전자, 원자의 모든 원리마저 다 알고 또 이것을 마음대로 이용해서 어떠한 방면에 적당히 사용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원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지 그 원리를 바꿔놓은 것은 아니지요. 물론 바꿔놓을 수가 없지요.
  이것은 다 대자연의 원칙은 사람보다 더 훌륭하고 오히려 사람까지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1,1~25 천지창조). 그 분이 바로 우리가 천주님 혹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또 이 지구상의 대 자연계에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화초들이 있으며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길가에 우연히 쌓여진 돌 무더기와 사람이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질서 있게 쌓아놓은 돌담과는 그 재료는 마찬가지 돌이지만 그 모양이 얼마나 다릅니까? 이렇게 대자연을 살펴 볼 때 또한 우리는 우리 인간 자신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신체 구성을 잘 살펴보면 우리 몸 전체가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가를 누구나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체의 각 부분이 기묘하게 서로 연결되어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전체를 위하여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화계통, 호흡계통, 근육계통이 각각 마치 사업 분담을 하고 있는 공장처럼 질서 있게 연결되어 자기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고 이것을 총 지휘하는 뇌가 전화줄과 같은 신경계통을 통해서 w가용하고 잇는 것을 봄변 우리 몸 덩어리가 얼마나 정밀한 기계인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인간이란 기계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요? 한 번 깊이 생각하여 볼 문제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우연히 혼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사람에게 있어서 더욱 훌륭한 것은 육체의 기묘한 조직이 아니라 정신의 놀라운 힘입니다. 사람은 조그마한 머리를 가지고 저 넓고 신기한 우주의 모든 내막을 다 깨달을 수 있고 또 대자연의 대 원리들을 파악하여 적당히 이용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인간의 힘입니까?
  그 뿐이겠습니까? 철학을 하고 예술을 하고 문학을 하는 등 사람의 정신의 힘이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위대한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어떤 사람들의 말대로 신경조직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 완전한 신경조직에서 나오는 힘일까요? 그렇다면 동물도 사람과 비슷한 신경조직을 가졌는데 왜 전혀 이런 힘이 없을까요? 사실 따져보면 사람의 육체조직이나 동물의 육체조직이나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소화계통, 호흡계통, 피순환계통, 근육계통이 있는 것과 꼭 같이 동물에게도 이런 것이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과 같이 대 우주를 깨닫는 힘, 물리원칙을 알아듣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이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람이 바로 조물주의 힘이 조그마한 부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조물주의 힘의 일부분을 받았다는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표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그래서 천주와 비슷한 신령한 능력으로써 영원히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조물주의 힘의 일부분을 받았기 때문에 조물주의 창조사업의 내막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고 이것을 적당하게 이용하며 이 세상 만물을 잘 사용할 수 있으며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절대로 저 혼자 생긴 것이 아니고
조물주에 의해서 조성된 것이며 주물주의 힘 안에 보존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람도 조물주의 조물 중에 하나로써 조물주의 대 계획안에 살아야 하고 죽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이 괴로움 안에서도 항상 행복의 갈망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도 역시 조물주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특히 우리 사람에게 당신의 위대한 힘의 일부, 즉 영혼을 주실 때에 우리 인간이 천주와 일치될 때에 비로소 완전히 행복할 수 있게 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가진 행복의 결말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그 원천이 되시는 천주께로 돌아가서 천주의 완전한 이 행복의 일부를 같이 누릴 때에야 비로서 행복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천주의 위대한 힘의 일부를 받았으니까 또한 행복의 일부도 받아야만 만족하게 되는 것인데 이 천주의 행복의 일부란 이 세상에서는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창조주이신 천주를 믿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를 모범삼아, 역사에 대해서 온 몸으로 책임을 지고, 이웃형제(민중)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이 세상을 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곧 우리 목적이 될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요한 5,23~24)  (정의가 강물처럼 ‘지학순저’ 6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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