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5-09-22 16:04:33, Hit : 4786
 한 아버지의 추억 1장:질경이 한잎과 한공기의 밥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제1장: 질경이 한잎과 한공기의 밥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이걸 우리 아들 라잔에게 전해주세요. 당신만을 믿어요.”
아내는 그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죽음이 벌써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아내가 죽은 다음날, 나는 소파에서 낮잠을 잤다.
그녀가 맡긴 동전 한 다발이 아직도 내 손에 쥐어 있었다.

1976년 3월 10일 케랄라주의 주도(州都) 트리반드럼에 있는 만호만 관저는 고요했다. 주(州) 내무부장관이 거처하는 이 역사적인 건물에도 비상사태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으나, 건물 주변에 카키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카루나카란 주 내무부장관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 문에 다다라서만 내가 노크를 했을 뿐이다. 나는 캘리컷 지방공과대학의 기숙사 뜰 앞에서 경찰에게 연행되어 간 아들을 찾기 위해 카루나카란의 방에 와 있었다. 두 사람이 나와 함께 왔는데, 그 중 한명은 나의 옛 제자인 수렌드란이고 다른 한 명은 그의 친구인 에르나쿨람 벤날라에서 온 한 교수로, 그는 카루나카란의 절친한 친구였다.

수렌드란과 나는 아침 일찍 캘리컷을 출발하여 다음날 동이 트기 전에 에르나쿨람에 도착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남은 시간을 북에르나쿨람 기차역의 콘크리트 벤치에 앉아 모기와 차가운 바람과 싸우면서 보냈다.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에르나쿨람에서 3~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내 집에서는 아들의 엄마와 여동생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자고 있었다.

동이 트자 우리는 벤날라에 있는 교수의 집에 도착했고, 그에게 나는 내 문제를 이야기했다. 그 교수는 즉시 우리와 동행했다. 그 사람 역시 내 아들 라잔의 실종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는 카루나카란과 아주 절친한 사이여서 관저 내부의 방들까지 출입할 수 있었다. 카루나카란의 부인인 칼리아니쿠티 암마 또한 그와 친한 사이였다. 우리가 트리반드럼에 도착하자, 그 교수는 바로 카루나카란의 관저로 가서 약속을 잡았다.

카루나카란은 우리를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으나, 나를 보았을 때 미소가 약간 가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멍청한 생각이야. 나는 내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왜 이 모든 일을 좀더 일찍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랬다면 제가 즉시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 가슴 속에 희망이 떠올랐다.

“이 라잔이라는 이름이 저에게 낯이 익군요. 그는 심각한 문제에 휘말린 것 같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두 손을 꼭 쥐었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내 마음은 불안정했다.

“아닙니다. 제 아들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요. 과격분자들이 카얀나(캘리컷 큰처)에 있는 경찰서를 습격했을 때, 그 애는 파루케 대학에서 열린 청소년 축제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제 아들은 자기가 다니는 공과대학의 미술 동아리 서기를 맡고 있습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카루나카란은 나의 어깨를 만졌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해 보겠습니다. 그게 우리 관계잖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나는 손을 포개 다시 한번 그에게 존경심을 전했다. 내 두 눈은 만호만 저택 앞뜰의 햇빛으로 인해 흐릿해졌다. 그 때 마지막 희망의 섬 또한 희미해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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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라잔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76년 2월 26일이었다. 그때 그 애는 캘리컷에서 13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챠타만갈람 지방공과대학의 마지막 학년이었다. 나는 당시 캘리컷에 있는 공립예술과학대학의 힌디어과 교수로, 무타락쿨람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의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케랄라 브하반 관사에 머무르고 있었다. 라잔은 나를 만나기 위해 종종 그곳에 오곤 했다. 최후로 그애는 얼마간의 돈을 부탁하러 왔었다. 나는 2월 26일 아들을 내 방에서 만났다. 나는 그 애에게 방학동안 집에 오라고 부탁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트리슈르 지역 체르푸에 위치한 띠루벌락카부의 발리엄에서 태어났다. 선조대대로 내려온 재산의 분배 후, 나는 집을 떠나 에르나쿨람으로 이사를 했고 파람비따라 거리에 집 한채를 지었다. 우리는 이 집을 ‘사우리다 닐라얌(우정의 집)’이라고 이름지었다. 나는 그 곳에서 아내와 세 아이들, 내 여동생 코참미니 바라샤르와 그녀의 남편인 아츄따 배리얼과 함께 살았다. 그는 내 아내인 라드하의 오빠이기도 했는데, 철도청에서 근무했다.

1976년 3월 1일 평소와 같이 대학에 도착했을 때, 나는 경찰들이 아들을 잡아간 사실을 전해들었다. 라잔의 친구 중 한 명인 칼마찬드란이 전화로 대학당국에 알려온 것이다. 그 때가 오전 10시였다. 학장의 허락을 받은 후 나는 서둘러 챠타말갈람으로 향했다.

공과대학 건물들은 공동묘지처럼 조용하였다. 라잔은 2월 29일 아침에 체포됐다. 그 애는 파루케 대학에서 열린 청소년 축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 공과대학 뜰 앞에 정차한 학교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경찰들은 그 애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는 처음 캘리컷으로 끌려간 후 카얀나 경찰서 습격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세워진 칵카얌 경찰캠프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칵카얌 캠프에 가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갔다.

칵카얌 캠프는 주정부 전기국인 석면지붕 건물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캠프 앞에는 연못이 있어서 출입은 소총을 든 경찰보초가 지키고 있는 임시로 만들어진 나무다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나는 그 보초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매우 엄숙했으나 나에게 어떤 불경한 말도 내뱉지 않았다. 보초는 캠프 안으로 들어갔고 돌아와서는 나에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아들 라잔이 안에 있고 잘 있다고 말해줬다. 흥분이 좀 가라앉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오직 내 아들을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산처럼 내 앞에서 서 있었다.

매서운 고독감을 느끼며 나는 소리쳤다. 나는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야람 파디칼씨와 만나게 해 주십시오.” 나는 단호했다. 자야람 파딕칼은 캠프의 ‘군주’였고 범죄부의 감찰관이었다.

내 어린아이 같은 확고함이 연못의 표면에서 메아리쳐 돌아왔다. 나는 그 보초 앞에 여전히 서있었다. 그의 곧추 선 소총은 때때로 좌우로 흔들렸다. 그는 듣지도 그리고 나에게 신경을 쓰지도 않으려고 애썼다.

그곳에서 홀로 기다리며 내 목구멍은 흐느낌으로 막혔다. 어디선가 캠프의 유치장 벽을 통해 “오, 아버지..”라며 나를 부르는 흐느낌을 들은 것 같았다.

나는 피곤했고 몸을 돌려 걷기를 시작했다. 한번 더 캠프를 보기 위해 돌아섰을 때, 그 경찰관은 나를 응시하며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내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알아채자, 그는 시선을 근처의 언덕으로 돌렸다.

#####

카루나카란과 만난 후 마뜨룹후미 일간지 기자인 사디리코야씨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카루나카란의 친애하는 신봉자 중 하나였다. 그 전에 나는 내 아들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 그를 세 번 만났었다. “조사중입니다."라는 말이 그 때 내가 들은 유일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매우 다른 정보를 주었다. 그는 나에게 라잔이 경찰의 감시 아래 한 과격분자의 비밀소굴로 이송되던 중 도망쳤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냐고 물어보았다.

“믿을만한 정보통에서”가 그 답이었다. 나는 그 정보통이 카루나카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디리코야가 말해 준 뜻밖의 사실은 나에게 조금의 희망을 주었다. 그것은 또한 동시에 걱정의 먹구름을 불러왔다. 나는 아들의 행방을 찾기를 계속했다.

공과대학의 학장인 바하버딘 교수는 다른 교수와 함께 칵카얌에 있는 경찰캠프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 애정 어린 선생님들에게 보인 자야람 파딕칼의 행동은 매우 무례했다. 감금된 학생들은 창살을 통해서 자기들의 학장을 바라보았다. 라잔은 그들 중에는 없었다.

나는 라잔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단호하게 믿었다. 나는 항상 아내에게 라잔을 위해 밥 한 공기와 질경이 한 잎을 따로 남겨두라고 말했다. 그 애는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배가 고플지도 모른다. 그 애를 위한 밥이 집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 그 애는 돌아올 것이다. 그래, 반드시...

밤에 개들이 아무 이유없이 짖어댈 때면 나는 일어나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둔 채 나는 들어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다. “오, 내 얘야” 라는 흐느낌이 목구멍에 차올랐다. 그러나 나는 울어서는 안 된다.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내 눈에서 떨어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의 엄마 라드하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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