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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ce(2005-09-22 16:06:51, Hit : 4874
 한 아버지의 추억 3장 : 아츄타 메논씨

제3장: 아츄타 메논씨

나는 지금부터 아츄타 메논씨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내 아들의 비극에서 한 역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것 때문에 말라야리스(역주: 케랄라주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사람들의 메논씨에 대한 높은 평판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전혀 내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더더욱 그가 생존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 이야기는 한치도 과장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나의 여정을 이야기 하면서, 나는 그 여정동안 메논씨가 했던 일에 대해 숨길 수가 없다. 내가 그의 역할을 기록해야만,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야기에 진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메논씨를 숭배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가 그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대해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 유명한 티루불라까부 사원은 이린잘라쿠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트리쿠르에서 한 10킬로미터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나의 집은 이 사원 앞에 있었다. 사원의 동쪽에는 형인 수라파니 바리에르의 집이 있었다. 그는 간디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나는 조상이 물려주신 이 집의 높은 베란다에서 잠을 자곤 했었다. 아츄타 메논씨는 이 곳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949년 3월의 어느날 밤, 누군가 한밤중에 나를 깨웠다. 눈을 뜨자 거기에는 허름한 차림새의 아츄타 메논씨가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당황해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다른 누군가가 그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는 인도 공산당에서 라나디베 이론(Ranadive Thesis)이 팽배해 있던 시기로, 공산당은 격변의 시기에 요동치고 있었다. 다른 많은 공산당 간부들처럼 메논씨도 몸을 숨기고 있었다. 지하조직의 규칙에 따라 그는 경호원 없이는 혼자서 나다닐 수 없었다.

“안티까두에서 경찰을 피해 도망쳐 오는 길이요. 그들이 나를 뒤쫓고 있소. 숨을 만한 곳을 꼭 좀 찾아 주시오.”

항상 완강해 보였던 아츄타 메논씨가 당혹해 하는 모습에 나는 놀랍고 또 두려웠다. 확신컨대, 그가 붙잡혔다면 경찰은 그를 죽였을 것이다. 그 무렵 경찰의 범인수색은 마을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공산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메논씨가 경찰에 붙잡히도록 놔둬서는 안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날 집에는 남동생인 마드하반 바리에르와 조카인 라만 바리에르가 있었다. 고등학교 기말고사를 대비해 공부하느라 대개 늦은 밤까지 그 애들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불러서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는 메논씨를 그들과 함께 푸두까드 근방에 있는 팔라지 마을로 보냈다. 그 마을은 티루불라까부 사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마을까지 가려면 발라치라라는 마을을 지나야 했는데 그곳은 경찰의 철저한 감시아래 있었다. 밤에는 순찰차가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마을의 구석구석에 경찰들이 포진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메논씨와 함께 팔라치에 있는 은신처를 향해 떠난 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만일 경찰이 메논씨와 아이들을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애가 탔다.

마드하반과 라만은 그 일 이후 메논씨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마드하반은 심지어 트리쿠르 근처에 있는 코둔갈로에 머무르고 있던 메논씨의 아내인 암미니 아마 부인에게 메논씨가 보내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내 형의 집에 메논씨의 은신처를 마련해줬는데, 형은 유명한 간디주의자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반체제 공산주의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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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십일이 지나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라잔의 실종을 알렸다. 그전까지는 그 소식이 불러일으킬 가족들의 감정의 폭발을 감당할 만큼 내가 용감하지 못했고, 비록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내심 라잔이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트리만드룸에서 카루나카란 주(州) 내무부장관을 만나고 난 후 캘리컷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실망감과 환멸감에 빠져 있었다.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추억과 몽상에 빠져 살았다. 아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에르나쿨룸을 찾아갔지만,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나는 남동생인 마드하반을 몰래 불러서 그에게 그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사촌인 라만쿠티 바리에르는 당시 공산당의 유명한 리더로 있었는데, 내 형의 매형이기도 했다. 우리 형제들은 다같이 그를 만나러 갔다. "아츄타 메논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장 써주겠소. 그 편지를 그에게 보여주시오." 그가 제안했다. 마드하반은 화가 나서 메논씨를 만나는데 그의 추천장 따위는 필요없다고 대답하고는 매우 실망한 채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아츄타 메논씨와 매우 절친한 사이인 벨리아쓰 발란씨(.V.B. Menon으로 더 잘 알려짐)가 뭄바이에서 오래 머무르다 트리쿠르 근처에 있는 오오라캄으로 돌아왔다. 남동생인 마드하만이 그를 만났고, 발란씨는 아츄타 메논씨를 만나러 가기 전에 라잔의 일에 대해 상세히 듣고자 나를 찾아왔다. 같은 날 그 둘은 트리반드룸으로 떠났고 그곳에 있는 회관에서 메논씨를 만났다. 그 날이 바로 내 식구들이 라잔의 문제와 관련해 메논씨를 만난 첫날이었다. "라잔은 도망쳐서 은닉중이다."는 것이 이 인정많은 공산주의자인 메논씨로부터 얻은 대답이었다. 마드하반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보려고 애썼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굳건히 고수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를 보았을 때 마드하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가 이상으로 삼았던 사람의 그같은 대접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다.

나는 조사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또한 아들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여정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들의 여정보다 더 힘든 일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많은 친구들이 진심으로 내 곁에 있어 줬지만 나는 나날이 더 외로워 졌다. 나는 라잔을 부르면서, 추억으로 가득 찬 텅 빈 방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나서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나를 숨막히게 하는, (아들을 찾기 위한) 조사를 계속했다. 두 손을 움켜쥔 채 그 후에도 나는 얼마나 많이 아츄타 메논씨와 수석장관을 만나러 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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