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5-05-27 15:50:01, Hit : 8590
 "남을 위해 진실되게 울어 본 사람"

"야가 우리 망내이 입니더. 차칸아 되라꼬 강복좀 해 주이소. 얼매나 장나이 심한지요. 마, 그래도 성당 일이라카문 십리도 띠 갑니더"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새로 서품받은 지학순신부가 우리 성당(부산 동래)에 왔을 때 어머님의 말씀이다.
  '서울래기 다마내기 마쪼흔 고래개기 달달 보까서...'하며 매일 싸움만 하고 지내던 시절, 인상이 좋고 미소가 구수했던 지주교와의 인연은 이렇게 해서 시작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황님이 계신다는 로마에서 공부를 한 박사신부'를 동경하며 초장동 본당신부인 지신부를 찿아 갔었다. 초행길이라 성당을 잘 못 찿아 왼편으로 꼬부라졌더니 웬 귀신같은 여자들이 많았는데 나를 보자마자 "대가리 피도 안마른 기 요렁데 오면 못쓰는기라" "**야!" 하고 야단이었다. 바로 그 곳이 부산의 완월동이었더란다.
  지주교 덕분에 일찍부터 사창가와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 웬 인연이냐 하면, 원주 주교관에 지주교님을 뵈러 갈 때면 기차역에서 내려 주교관에 걸어가는데 그 길목이 바로 희망촌이라는 사창가였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완월동, 원주에서는 희망촌을 같은 동네에 두고 그렇게 오래 사신 것이다. 후에야 그들이 주교님을 존경하게 됐지만  처음에는 야유와 무안도 수없이 당하셨다. 여하튼 내가 62년 8월 15일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거창한 식사대접을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주방아주머니가 금방 지은 김이 무럭무럭나는 하얀 쌀밥 큰 그릇에 생선구이, 김, 국, 불고기, 나물, 명란젓, 북어찜, 잡채 등등... 준비해서 상을 방에 놓고 나갔다. 아무리 둘러 봐도 나밖에 없는데 말이다. 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한참을 있었더니, 물을 가져 온 아주머니께서 다 식는데 안먹고 뭘하고 있느냐고 해 그 때서야 내 것인 줄 알고 황공하게도 신나게 먹어 치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바쁜 행사가 있는 날, 나 같은 학생에게 인사나 반갑게 받고 돈까스 한그릇 값을 줘도 하느님! 할텐데(그 때는 돈까스 한 그릇 먹어 보는 것이 왕자 쯤 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신부가 고등학생을 인격적으로 소위 대접을 했다는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지주교님에 대한 평생의 사랑과 존경이 이미 결론 나 있었던 것이다.
  그 분은 추운 겨울에도 주교관에 손님이 없을 때는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으셨다. 옷을 따뜻이 입고 전기 스토브 하나 피우면 되는 것을 혼자 있으면서 따뜻하려고 비싼 기름을 낭비할 수 없다는 통통 막힌 소리를 하셨다. "어려운 교우들이 내는 돈으로 먹고 지내는 것만해도 미안한데..."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신 것이다.
  또 화장실용 휴지를 흰색깔 나는 것을 사온 날-그것도 검은 것이 없어서- "아주 싼 시커먼 휴지를 쓰지 평신도도 아닌 수도자가 양심도 없어?"라며 당가수녀를 눈물이 찔찔 흐르도록 야단을 치시곤 하셨다.
  헛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서 '그 분은 진실되게 울어 본 특별한 분'이었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정의를 위해 울었고, 만천하가 보는 앞에서 전세계로 방영된 TV에서도 울었다. 불쌍한 사람들, 이북 동포들, 남한의 철없는 사람들, 가엾은 동생을 위해 기도하면서 참으려고 애를 썼으나 주교 체면에 그냥 울어 버렸다. 그 눈물은 목숨을 걸고 발표하셨던 양심선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었으며,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남을 위한 아픔으로 진실되게 울어 본 지도자가 얼마나 있는가? 허약한 육체의 가슴위로 탱크가 지나간 듯 모든것이 다 박살나고 다 부서진 심리상태에서 허탈을 부여잡고 "주여!"라고 부르며 안기부에서도 울었다. 악명 높은 안기부에서 교회의 주요 성직자들의 구체적인 비리와 타락상을 확대하여 지주교에게 설명해 주었더란다. 어떤 성직자들의 여자문제까지 거론하며-수 십장의 사진들 집어 던져 놓고- 교회가 이 꼴인데 너 혼자 잘난 척 하지 말라 하더란다.
  민주회복을 위해 현직 주교가 정부에 맞선다고 옥살이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그 때, 엉터리 군법회의에 의해 조작된 죄목으로 형을 받고 감당키 어려운 수모를 겪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교황청은 바티칸 방송으로 "경악스럽고 슬픈 사건"으로 발표하였고, 지주교 자신은 고통의 도가니 속에서 힘든 시련을 예언자의 사명으로 이겨냈던 것이었다.
  못 배워먹은 상것들도 도둑놈이나 사기꾼이 감옥에 있으면 죄는 미우나 사람은 동정하는 것이거늘,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감옥에 있는 지주교를 비난하는 동료 성직자들도 있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긍해야 할런지 나는 아직도 해답을 찿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곳에 머물면서 주님과 진심으로 일치를 이루고", 또 "이제는 감옥에서 내보낸다 하더라도 이곳에 내가 있어야 교회의 쇄신과 일치, 그리고 민주회복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지기에 이르렀던 분이다.
  신학생 때 북한의 종교탄압 실태를 전하기 위해 1950년 1월에 월남한 청년 지학순은 35년 만인 85년 9월 이산가족 방문단으로 평양에 가서 한국사제로는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미사 중에 흐르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두고 울었던 그는 과연 무엇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고 또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의근 ( 본 기금 이사)
정의가 강물처럼 6호에 게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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