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12-04-25 15:12:52, Hit : 7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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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주교님의 추억을 찾아가는 여행 두번째-두봉 레나도주교님



가톨릭사회운동가들 모여, 두봉 주교와 정호경 신부를 만나다  
지학순정의평화기금에서 마련한 순례, 안동에 가다.. 정호경 신부 위독

봄비가 하루 종일 내린 지난 4월 21일 토요일, 사단법인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하 지학순기금)이 주관한 ‘고 지학순 주교님 추억을 따라 가는 여행’이 있었다. 지학순기금은 1970년대 가톨릭교회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고 지학순 주교를 기억하며, 해 마다 그때부터 가톨릭사회운동에 투신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이 여행을 기획한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라고 여기며 복음 말씀 그대로를 살았고, 살고 있는 교회의 어르신을 찾아가서 그분의 삶을 함께 나누고 가르침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이미 고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를 방문한 바 있다.

올해는 경북 봉양면 문화마을의 이웃으로 살고있는,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를 방문했다.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이하 천여공),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하 천정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전국가톨릭농민회 활동가들이 이번 만남에 함께 했다. 봉화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치악휴게소에서 지학순기금 부이사장인 최기식 신부와 원주교구팀이 서울에서 온 일행이 탄 버스에 합류했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주교

두봉 주교는 방문객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우산을 받쳐 들고 집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올까 하며 기다리다 지나가던 차에 바지가 젖었지만, "이렇게 만나서 정말 기쁘다"며 버스에서 내린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맞이했다.  

참가자들이 응접실에 앉자 한 치의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대담에 앞서 최기식 신부는 고 지학순 주교를 대신하여 이번 만남에 대한 감사의 말과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을 받은 두봉 주교는 “지주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큰절을 했다. 이에 당황한 최기식 신부는 물론 참가자 모두도 맞절을 했다.

두봉 주교가 "조금 있으면 점심을 먹을 시간인데 말을 길게 하면 안 되겠네요"라고 하자, 지학순기금의 이사이며 이번 여행의 진행자인 기춘 씨가 "이미 내려오는 차에서 김밥, 빵을 먹었으니 걱정하시지 마세요" 라고 했다. 그러자 두봉 주교는 “그럼, 점심 안 드셔도 되겠네요.” 하며 특유의 정겨운 ‘하하’ 웃음을 선보였다.

  애국 이데올로기를 조심하세요!

잠시 후, 독재가 난무한 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주교로서 두봉 주교의 체험담이 펼쳐졌다. 대담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달에 있을 제주교구 사회교리학교에서 부탁받은  가톨릭 관점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교류와 협력’라는 강의으로 준비한 것이어서 ‘미리 발표하지 마세요.’ 라는 두봉 주교의 청을 받았기에 생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상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람들의 ‘애국심’에 대한 그분의 지적이다. 지구촌이 일일생활권에 들어선 지 오래고,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에 벗어나야 하는 대한민국이, 한국 사람들이 지금도 ‘애국’ 이데올로기에 빠져 ‘애국’을 ‘쇄국’으로 착각하는 있다는 두봉 주교의 일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두봉 주교는 자신을 찾아오는 지인을 맞이하려고 길가에 서있었다. 때마침 길을 지나는 사람이 있어 "안녕하세요!" 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너는, 네 나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외국인 100만 명 시대, 50명 중 1명이 외국인인 대한민국. 세상이 변하여 다양한 인종, 국적, 문화를 지닌 지구촌 사람들이 일상 삶의 질을 찾아 전 세계 곳곳에 가서 삶의 둥지를 트는 오늘날이다. 이 시점에 아직도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의 인간으로서 기본권, 존엄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한국에 와 있는 외국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지 못하면 같은 핏줄인 북한 형제자매를 도울 수 없다고 말하는 두봉 주교. 가뭄과 흉작 그리고 군사비 과도한 지출로 인해 궁핍에 찌들고 병들어 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무조건 매도하기 전에, 같은 동포로 먹을 것이 없어 폐병에 걸려 결핵요양원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측은지심의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돈을 지원하면 무기 생산에 들어간다는 정치적인 논리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는 지 반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원춘 사건과 두봉 주교의 국외 추방

1970년대 당시 안동교구장이었던 두봉 주교는 ‘오원춘 사건’(‘격동의 한국천주교현대사-22’, 2010년 10월 26일의 지금여기 기사 참조)으로 고초를 치렀다. 오원춘 씨는 1970년 중반 이후 가톨릭교회의 인권운동의 꺼져가는 불씨를 다 살려낸 가톨릭농민회 소속이었다. 독재 정권의 도덕성과 불의를 폭로한 농민회는 그 사건으로 인해 무수한 탄압을 받았다. 1978년 안동교구 농민회 연합회 이사로 선임되었고, 같은 해 봄 군 당국이 배포한 불량 감자 씨앗 피해보상운동에 참여한 주요 인물이었다.

이 사건으로 두봉 주교는 외국인에게 가해지는 가장 강력한 조치인 추방명령을 받았다. 당시 교황대사가 외무부 장관을 방문하여 ‘교황이 파견한 주교를 추방할 수 있는 가?’라며 이는 외교적인 마찰을 빚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여 추방을 면할 수 있었다. “참으로 묘하게 풀렸어요” 라며 그 때 그 상황을 회고했다. 두봉 주교가 입국한지 두 달 후인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되었고, 오원춘 사건으로 체포된 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총무 정재돈과 정호경 신부가 12월 8일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온 세상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고백하는 가톨릭교회

언제부턴가 사회 사건과 이슈에 대해 가톨릭 신자들 사이도 의견 대립이 팽배해졌다. 최기식 신부는, “한국에서 가장 어려움이 많은 것은 신자들의 의견 양분”임을 강조했다. 강정문제, 핵발전소 문제, 사대강 문제 등. 부유한 신자들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최 신부는 "이는 정치적 대립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대립 문제인 것이다. 국제정세를 볼 때, 강정 문제는 세계평화와 동북아 평화의 차원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라고 묻자, 두봉 주교는 “그냥 사는 거지요. 정치 관련 문제는 참참 답답합니다”라고 했다. 정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운동인데 정치 운동으로 몰고 가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논하며, 가톨릭교회는 어느 한 나라의 국교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가 ‘보편적’, ‘공번된’, ‘공현된’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역사와 문화가, 신자가 많기 때문에 가톨릭적인 것이지 일정한 국가의 국교가 될 수 없다. 각자가 ‘가톨릭 신자’라고 말할 때마다 이는 온 세상 사람들이 한 가족임을 공포하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앙인의 영원한 멘토인 두봉 주교

두봉 주교가 대전 교구의 한 성당의 보좌신부 시절, 어린 아이였던 방 데레사씨도 이번 여행에 남편과 함께 참여했다. 데레사 씨는 오래 전에 남편이 대령으로 진급하고 싶어 해서 상관에게 뇌물을 상납할까, 말까 고민하며 두봉 주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당시는 돈 봉투를 상관에게 바치지 않으면 진급할 수가 없었던 때였다.

“애기 아빠가 승진하지 못한 것 축복이에요!”라고 적은 두봉 주교의 답장이 왔다고 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축복이다.’ 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지금도 어려움에 처하면 그 때 일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무슨 축복이 있을까?’ 하고 기대하며 힘든 시기를 견딘다고 했다. 아직도 그 때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늘 곱씹고 있다는 데레사 씨. 남편은 “큰 소리로 주교님은 영원한 멘토이십니다.”라고 외쳤다.

   인간 도서관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어 두봉 주교가 “정호경 신부님이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데, 오늘내일 하세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내가 숙연해졌다. 벌써 눈가에 물기가 고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돌아가는 일정에 포함되었던 천혜의 자연림과 유명한 산사 방문을 취소하고 점심식사 후에 곧장 안동의료원으로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중환자실이라 우리 모두 들어갈 수도 없는데...’ 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중환자실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그 앞에서 기도할 수 있으니 일단 가보자고 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민주화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에 연연해하지 않았던 우리 선배들이 한 명 두 명 우리에게서 멀어질 때 참으로 마음 한 귀퉁이가 잘려 나가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영혼과 육신이 조화를 이룬 존재인 인간이기에 예수의 제자이며 실증주의자 토마스처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서야 함께 있음을 느끼는 것이 종종 안타깝다.

  정의 ․ 평화의 상징인 지학순 주교의 혼을 담은 지학순정의평화상

온갖 악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향한 저항과 분노를 과감하게 표출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 그리고 용서를 잊지 않고, 한국 민주화를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하게 행했던 한 시대의 인물이자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진정한 신앙인, 지학순.

지학순 주교는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독재의 칼날에도 굴하지 않고 과감하게 정의를 외치다 갖은 고초를 당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던 참으로 용기 있었던 사제이자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과의 연대로 인해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초를 달게 받아들인 하느님 자녀의 모범이자 한국역사의 아들이었다. 고문과 협박으로 얼룩진 어둠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이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의식 있는 사람들, 힘없는 농민,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선 가톨릭교회의 상징이었다.

지학순기금은, 복음의 빛에 따라 산 고 지학순 주교의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신의 정신, 협박과 회유에 물러서지 않은 용기와 실천을 기리며, 해마다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정의평화활동에 모범적으로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 상을 수여함으로써 이 세상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곧게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지학순정의평화상에 대해, “외국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라는 두봉 주교의 말에, 최기식 신부는 '한국 군수물자 생산과 수출은 전 세계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2012년, 제1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은 ‘캄보디아지뢰금지운동 (Cambodia Campaign to Ban Landmines)’이 받았다. 이 단체는 지뢰금지운동, 불발탄 및 지뢰 제거를 위해 전 세계 40개 대인지뢰금지운동 단체와 연대하고, 지뢰와 집속탄(확산탄)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학순정의평화기금’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www.justice.or.kr)에 있다.

  하느님 품에 안겨 있는 정호경 신부

일행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두봉 주교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정호경 신부를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 버스가 안동의료원에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울먹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작은 도시의 병원이라 중환자실 출입이 까다롭지 않았다. 4~6명씩 병실로 들어갔다.

정호경 신부는 두봉 주교처럼 ‘오원춘 사건’에 엮여 옥고를 치렀다. 안동교구 신부들은 오원춘 납치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이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경찰은 대책위원회의 활동을 미리 차단하고 탄압하기 위해 1978년 7월 27일 안동교구청을 난입하여 정호경 신부를 연행하였다.

정․호․경, 그 이름 한 자 한 자를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한 인간, 그리스도인이 이승 삶의 정리하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는 기쁨과, 그 고통의 순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낄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하지만 동시에 소리조차 감히 낼 수 없는 그러기에 주르륵 흐를 수밖에 눈물이었다.

새 세상을 여는 공동체 - 최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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