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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ce(2007-05-23 11:22:32, Hit : 5809
 필리핀의 좌파들에 대한 싸움, 공정한가? 부정한가?

필리핀의 좌파들에 대한 싸움, 공정한가 부정한가
- 사이몬 몬틀렉

인권단체인 카라파탄 사무실은 퀘존 시내 필리핀 대학 캠퍼스 근처 황량한 아파트 블록 이층에 있다. 카라파탄은 그 비좁은 사무실을 몇몇의 산하 좌익 조직들과 함께 쓰고 있는데 여기에는 토지개혁을 옹호하는 농민연합이 포함되어 있다. 방문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같이 나눠 쓰고 있는 공간은 편리한데, 마닐라의 아무렇게나 뻗은 길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시간을 절약하면서, 연속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 연합체는 카라파탄의 조사결과 보고에 구름을 드리우는데, 카라파탄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군부는 이들을 필리핀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 (CPP))와 그 무장세력인 신인민군 (the New People's Army (NPA))의 전위 조직으로 노골적으로 제쳐놓는다. NPA는 1969년에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세계 최장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산주의 반란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카라파탄의 조사 결과를 반박하기 훨씬 더 어렵게 되었다. 특히 필리핀 정부와 그 보안 세력들이 수백명의 좌파 정치가, 변호사, 노조간부, 종교인과 인권활동가들의 조직적 학살의 배후에 있다는 고발은 더욱 그러하다. 그 작전은 2001년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강력한 군부의 지지를 배경으로 취임했을 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광범위한 투표 조작의 한 가운데에서 치러진 2004년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그녀의 재선 이후로 그 강도가 증가했다. 카라파탄에 따르면, 군부의 암살단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지방과 중앙 정부의 정치권에서 좌파의 영향력을 일소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지난 2월 필자가 방문한 날, 카라파탄은 좌익 활동가들에 대한 비사법적 암살을 833건으로 집계했으며 여기에는 27명의 자원활동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외에 193명이 실종되었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발생한다”고 단체 책임자인 루쓰 세르반테스는 말한다. 같은 날 오후, 필리핀 경찰청 본부의 에어컨이 갖추어진 편안한 사무실에서 나는 암살관련 조사를 위해 설치된 테스크 포스팀이 진행하는 매끈한 프레젠테이션을 받았다. 기록된 희생자와 관련하여 그들의 통계 수치는 매우 달라서 수백 명이 더 적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대부분의 폭력은 보안 요원들이 아니라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저질러지는데, 그들이 내부 숙청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른 암살은 지역 분쟁의 결과인데, 그곳에는 총기류가 흔하다. 보안 요원들의 책임인 소수의 사례들에서 범인들은 명령을 듣지 않고 행동하는 나쁜 요원들이다.

이것은 또한 필리핀 육군(the Armed Forces of the Philippines, AFP)의 설명이기도 한데, 그들은 보안 요원들을 모략하기 위해 사용된 전략적 타겟 암살을 묘사하는 CPP의 문서를 압수했다고 주장한다. 이 알려진 문서들은 2월에 필리핀을 방문했던, 유엔 비사법적 살해 담당 특별 보고관 필립 알스톤에게 보여졌다. 알스톤 역시도 내가 그랬듯이, 똑같은 경찰의 테스크 포스 프레젠테이션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다. 뉴욕 대학의 법학과 교수인 알스톤은 공산주의자 공모 이론을 철저하게 기각했다. 10일간의 방문 이후, 그는 AFP가 암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 a state of denial 라고 말했다.

부인 상태
전 대법원 판사 호세 멜로가 이끄는 한 정부 위원회 역시도 독립적으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군 장교들이 대량 암살의 배후에 있다. AFP는 “국가의 적들”에 대한 암살을 용인하고 고무했다고 위원회는 보고했다. 그 조사 결과는 애초에, 그것이 오직 잠정적인 결론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아로요 대통령에 의해 발표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외국 정부들의 계속적인 보고서 공개 요구에 그 입장을 고수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공개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허위 선전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것들이, 최소한 군부에 대한 신뢰성 있고 독립적인 조사 없이는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통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조사는, 군부의 지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로요 대통령의 불안정한 리더십 하에서는 연기될 것 같다. 그녀는 인권 사례를 재판하는 특별 법정을 제안하면서 폭력을 규탄하는데 목소리를 키웠던 유럽 국가들에 기술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동시에, 다른 수단에 의한 좌익 활동가들에 대한 살인이나 괴롭힘도 줄어들지 않았다. 3월에 좌익 국회의원이자 전(前) 반란군이었던 사투르 오캄포가 1980년대에 일어난 살인죄로 체포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캄포가 5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 운동을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는 2010년에 끝나는 아로요 대통령의 나머지 임기 동안 그녀의 통치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는 중요한 선거이다.

그러한 법적 속임수들은, 내가 카라파탄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만난 농민 운동가인 보이 파쿠늘라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곳은, 자신의 흰색 리바이스 야구 모자를 못이 박힌 손으로 구기고 앉아 있는 이 땅딸막한 쌀농사 짓는 농부를 만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장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2005년 그가 도피한 이후로 그의 제 2의 집이 되었다. 50세인 파쿠늘라는 딸락 Tarlac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부 루손에서 농민을 활동적으로 조직했었다. 그는 또한 좌익 정치 정당인 아낙 파위스(“고된 노동을 하는 대중”을 뜻함)의 지역 간부였다. 이것은 그를 주목받은 지역 인사로 만들었고, 비사법적 살인이 그의 지역에서 급증할 때, 그는 가족을 떠나 마닐라로 피신했다. “나는 2년 동안 집에 가보지 못했다. 나는 제1의 목표물이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총잡이가 그의 조카와 몇 사람의 좌익 활동가들을 살해했고, 그는 직접적으로 군부를 비난했다. “우리는 그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안다.”

2005년에 나는 폭력적으로 변한 한 설탕 공장의 파업에 관해 기사를 쓰기 위해 딸락을 방문했다. 당시 군부는 폭력을 파업 참가자들을 조종하는 공산주의 침투원들 탓으로 돌렸다. 노조원들은 어떠한 외부적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했고 보안 요원들이 자신들의 캠프를 습격하고 지도자 중 한 사람을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피켓 라인의 긴장된 분위기가 아니라 그 분규의 봉건적인 배경이었다. 그 공장은 스페인 식민 통치까지 거슬러 가는 6,000 헥타르의 대농장인 하시엔다 루이시따의 일부였다. 1957년 그 농장은 강력한 코후앙코 가문에게 팔렸다. 30년 후 미국이 지원했던 독재자 페르난드 마르코스가 실각한 후, 새로 당선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사회 정의와 토지 개혁을 약속했다. 그것은 소수의 독재자가 과거의 특권에 달라붙어 있고, 인구의 거의 반수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는 필리핀에서는 뻔뻔스런 메시지였다. 그것은 또한 속임수였다. 아키노는 코후앙코 집안의 자손이며 루이시타 농장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땅 조각을 얻는 대신에 노동자들은 1989년에 한 상장 회사의 지분을 받았다. 그러나 빈약한 배당은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는 생활에서 미미한 개선만을 얻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역시 같은 들판에서 일을 했었다.

괭이로 무장한 벤베니도 캐팬은 썩은 사탕수수 지역 옆에 콩을 심고 있었다. 농장 저택에서 은퇴한 정원사인 그의 낡은 흰 셔츠와 검은 반바지는 그의 연필처럼 가는 팔다리 주위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는 루이시타의 스페인 농장주에 대항한 파업을 포함해서 과거의 파업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결과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파업은 언제나 똑같다. 우리는 요청하고 그들은 주지 않는다... 땅을 좀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나에게 말했다. 루이시타의 명백한 불평등은,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나머지 아시아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반면에, 왜 필리핀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천국을 믿는 지에 관한 어느 정도 설명이 되어준다. 체 게바라표 사회주의의 낭만적인 호소가 필리핀 대학에서나 무장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농촌의 중심 지역에서 퇴색하지 않았다. NPA는 시골 지역에서 자신들의 혁명의 대의명분을 위해 부자에게서 약탈을 한다는 로빈 훗의 명성을 오랫동안 키워왔다. 멀리에서는 그것이 범죄의 모습으로 그리고 미국이 정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CPP와 함께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짓밟히는 사회에서 NPA는 대안을 제공하며 이는 그들이 왜 필리핀 전역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번성할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마르코스 독재 시절 정점에 이르러 좌파가 저항을 위한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을 때, NPA는 25,000명의 전투 요원을 내세우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회복과 1990년대의 내부 숙청 이후 그 수는 1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들의 근래의 강점은 8천명으로 추정되는 정규 인원이 필리핀 군도전역에 넓게 분포한다는 것이다. 이 세력은 “혁명세”를 민간 기업과 후원자들에게서 징수하며 정부 관리와 보안 요원들을 애먹이곤 한다. 세입은 연간 3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많은 금액이 네덜란드의 CPP 망명 지도부로 흘러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닐라에 있는 보안 컨설턴트 사인 Pacific Strategies & Assessments 에 의하면 올해와 같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NPA는 7천7백만 달러를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NPA의 본거지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정치인들은 안전한 통행을 위해 반란군들에게 돈을 지불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1년 이래로 마닐라에 5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제공한 미국 정부에게 필리핀에서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은 이슬람 테러리즘이다. 이 원조의 많은 부분이 1990년대 오사마 빈 라덴의 처남이 지원하는 과격주의 그룹인 아부 사야프와 싸울 엘리트 전투 부대의 훈련과 장비 구입에 책정되어 있다. 그 전략은 미국과 다른 동맹국의 목표에 적합한데, 그들은 필리핀 남부를 호전적인 이슬람에 대항한 동남아시아의 싸움에서 약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의 개입이라는 방침과 함께 반테러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리핀과 협약을 교섭 중이다. 이 협약은 외국 군대를 위한 전투 역할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 군부와 이야기를 해 보면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의 적은 단순하고 간단하게 좌파이다. NPA는 많은 장군들에게 강박관념이며, 그들은 마르코스 통치 시기인 냉전 기간 동안 승진했고 반공산주의 인식이 깊이 박혀있다. 이들 사령관들은 사회 개혁을 선동하는 도시의 활동가들과 산허리에 캠프를 판 무장 폭도들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다.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 움직임의 모든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분리될 수 없다.” 군부의 주요한 장군 한 사람의 말이다. 아로요 대통령의 매파 안보 자문들은 더 나아가서, 주류의 정치적 반대파들이 정부를 몰락시키기 위해 공산주의 폭도들과 공모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한 과열된 분위기에서, 정치적 말썽꾼을 제거하려는 계획이 어떻게 견인력을 얻게 되는 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수십년 간 계속된 군에 대한 법률적 기소 면제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할 커다란 이유도 없다.

“현재는 모순된 상황이다”라고, 필리핀 대학의 좌파 교수인 월든 벨로는 말한다. 그는 5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것이다. “한 수준에서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과정, 시민권 그리고 자유가 작동하고 있다. 다른 수준에서는 우리는 완전한 면책의 정치학을 가지고 있다...군부의 좌파를 다루는 방식은 불모화의 메카니즘으로서의 암살이다”

1990년대에 피델 라모스 대통령은 좌파를 주류 정치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고 약 12명의 좌익 정치인들이 정당 명부 체계 하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여기에는 공식적으로 무장 투쟁을 단념했던 전직 반군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당시의 생각은 합법적 정치적 루트를 창출함으로써 지하 공산주의자들이 그 호소력을 잃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좌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옛 동지들과의 모든 유대를 완전히 끊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계속되었다. 안보 책임자들은 거리의 항의 시위와 국회 안의 좌익 선동가들의 존재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합법적인 면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아로요 대통령은 2001년 좌파 그룹을 포함한 거대한 군중이 전투 준비를 갖춘 호세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몰아내었을 때 이 시위로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밀월은 재빨리 시들해져 버렸고 2006년 아로요 대통령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전면전 전략을 선포했고 비사법적 살인의 파고가 정점에 달했다.

NPA는 분명 농촌 지역 발전을 유출시키고 있으며 필리핀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정부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증가시키는 것은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대한 군부의 고착은 끝없는 유혈의 반목이 되어 왔다. 태국과 같은 나라들은 1970년대에 외교술과 힘을 결합시켜 공산주의 반란의 위기를 해소한 반면에 필리핀은 냉전 시기의 굴곡으로 그 바퀴를 돌리는 것 같다. 군부의 개혁 없이는, 어떻게 해서든 소모전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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