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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ce(2007-10-30 12:01:02, Hit : 5467
 학살의 땅 웨스트파푸아 : 인도네시아에 빼앗긴 반세기


<번역자 주>  
240여개의 부족이 공존하는 풍부한 천연자원의 땅 웨스트파푸아. 본래 웨스트 파푸아는 1883년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된 이래 1961년 나라 이름을 '웨스트파푸아'로,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모닝스타(morning star)'로 정하고 의회를 창설, 독립을 준비했으나 인도네시아에 의해 무력침공을 당하면서 또 다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가 됐다. 1969년 유엔의 주관하에 독립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Act of Free Choice)가 실시되었으나, 인도네시아의 방해, 위협 공작 속에 자결권 행사가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인도네시아의 합법적인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웨스트 파푸아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의한 대규모의 인종학살과 인권침해가 보고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2007년 상반기 웨스트 파푸아를 방문, 14개의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고 관련한 피해자와 가족 등 50여명을 인터뷰해 웨스트 파푸아 중앙 고지대에서의 인권침해와 이에 대한 불처벌을 기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80여장에 이르는 보고서를 일부 발췌 번역해 싣는다. 원문은 http://www.hrw.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배경 : 파푸아 분쟁의 뿌리

1965년 건설된 ‘파푸아해방운동’(OPM)은 결성 이래 낮은 수준이지만 주요한 인도네시아 보안군 인사를 목표로 게릴라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안 파푸아해방운동을 겨냥한 일련의 작전은 마을 소탕작전에서의 강제처형, 공중폭격, 강제이주에 의한 영양실조 등을 통해 대규모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파푸아해방운동의 공동체와 친지들을 겨냥한 작전으로 파푸아해방운동 대원과 많은 사람들이 자의적인 구금과 고문, 강간을 당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살해됐다.

198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는 정책적으로 이주정책을 장려했다. 이 이주정책은 다른 섬에 거주하던 전통적으로 가난한 가족들을 대규모로 파푸아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정부 장려 이주프로그램이 끝난 2000년경, 비 파푸아인이 (파푸아 섬 전체) 인구의 약 35%를 차지했다.

파푸아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중요한 분쟁의 요소가 됐다. 지역민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광물회사에게 부여된 특허권과 광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군의 개입은 분쟁의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파푸아 여성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최악의 건강상태로 고통받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산모사망률은 1986년 10만명당 450명이었으나 1995년에는 334명, 2000년에는 307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1995년 파푸아의 산모 사망률은 10만명당 1025명이다.

  개혁이후: 순탄치 않고 불확실한 특별자치법으로 이행

2003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정부는 파푸아를 세 개의 지역-파푸아, 서 이리안자야, 중앙 이리안자야-으로 분리하겠다는, 보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파푸아 사람들이 파푸아의 분리에 반대했으며, 특별히 웨스트 이리안자야의 건설에 반대했다. 자카르타의 분할통치전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역 분할은 자기결정권이라는 공통의 목표 하에 단합하고 있는 파푸아인들의 노력을 와해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의심됐다.
파푸아가 다음 “동티모르”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아체에서의 평화 이행의 실패는 2001년 11월 특별자치법을 제정하는 배경이 됐다.
어떤 양보를 하든지 간에 독립에 대한 요구가 부채질되고 강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지닌 인도네시아 정부는 합의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이는 장기간에 걸친 그리고 냉담한 법의 실행으로 이어졌다.


  파푸아에 대한 접근 통제

국가 내 인권 모니터는 애를 먹거나 위협을 받는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와 같은 국제적인 모니터 그룹 회원들에 대한 업무비자는 일상적으로 거부된다.
원주민들의 땅의 권리를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두 명은 2006년 6월 관광, 문화, 사업 활동 혹은 정부 활동에 대한 비자를 얻어 여행하다 파푸아 전통의회(Dewan Adat) 모임에 참석한 뒤 인도네시아로부터 추방당했다. 파푸아 전통의회는 독립을 온건 지지하는 위원회다. 행정부는 2003년 이후부터 지역에 대한 국제적 저널리스트들의 접근을 폭넓게 제한하고 있다. 학문적 자유 또한 제한된다. 유엔을 포함해 국제적 단체의 업무도 접근제재로 인해 방해받는다. 2006년 5월 유엔고등난민판무관 지역 담당관 네일 라이트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재차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체들의 파푸아 접근이 부인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중앙 고지대에서 인권 침해
  사법관할 밖의 처형과 소탕작전 동안의 학대

파푸아에서 일어난 소탕작전의 규모와 숫자는 수하르토 집권기부터 전체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이러한 작전은 아직도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파푸아해방운동의 활동과 이들에 대한 지지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중앙 고지대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작전들은 전형적으로 파푸아해방운동이 저지른 공격으로 추측된 것에 의해 촉발되는데, 보안군은 계속해서 주변 마을에 대한 가혹한 집단처벌을 목적으로, 과잉되고 치명적인 물리력으로 대응한다. 거주지를 잃고 숲속에 임시 거처를 세울 수밖에 없던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부적절한 주거환경, 의료 혜택에 대한 접근성 부족으로 목숨을 잃었다. 공통적으로 보안군은 광범위한 개인과 마을 재산(가축과 곡식, 학교 등을 포함한)의 파괴, 약탈, 교회에 대한 신성모독을 자행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의 이주생활을 연장시키면서, 이주민들의 재건과 자립을 위해 마을로 되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경찰에 의한 심각한 인권 침해
  2005년 깃발 게양식

독립의 열망을 상징하는 모닝스타(Morning Star)가 게양되는 행사에는 여전히 파푸아인의 민족정신과 도전의 공통적인 표현이 남아있다. 깃발 게양식은 그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진행되지만, 이것을 위험하고 분리주의적 행동인 불법적 형태로 간주하는 인도네시아 권력에 의해 종종 처참한 억압에 직면하게 된다.
2005년 어느 이른 아침 ,12명의 텐타라(Tentara) 파푸아민족군(TPN)과 파푸아해방운동 대원들은 보라크메(Bolakme)에 있는 마을 인근 공터에서 평화로운 깃발 게양식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경찰기동타격대가 총기로 중무장을 하고 그 장소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즉시 깃발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폭력적으로 말을 걸었다.
“기동타격대원이 누가 책임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라이터를 켜 우리 혀와 귀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총부리로 우리를 때리고 우리에게 피를 마시라고 했습니다.”


  경찰이 아팔랍실리(Apalapsili)에서 사람을 폭행하다

2006년 자야위자야(Jayawijaya) 아팔랍실리(Apalapsili) 지역에서 경찰은 돼지 두 마리를 빚진 농부에게 빚을 갚을 것을 강요하려 했다. 경찰은 농부를 경찰서로 소환했다. 한 경찰관이 그에게 내일까지 빚진 돼지 두 마리를 다른 사람에게 갚기 위해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농부는 그에게 갚을 돼지 두 마리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날 농부는 돼지 없이 몇몇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경찰서에 갔다. 농부가 돼지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분명해지자 경찰은 그를 폭행하고 가족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며 위협했다.
“그는 내 두 손을 탁자 위에 놓으라고 했어요. 그는 고무 지휘봉을 가지고 내 손이 모두 부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쳤어요. 지금 제 왼손엔 쓸 수 있는 손가락이라고는 오직 세 개만 남았어요. 오른손은 쓸 수 없어요.”


    인도네시아정부군(TNI)의 학대
  인도네시아정부군이 성폭행 피해자의 삼촌을 폭행하다

2005년 5월 한 군인이 자야위자야(Jayawijaya)에서 16세 소녀를 성폭행했다. 피해학생의 교사는 피해자의 삼촌에게 폭행사실을 일러주었고, 삼촌은 사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 행동을 취하기 위해 와메나(Wamena)로부터 출발했다. 삼촌의 이런 노력의 결과, 그 역시 같은 가해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다음날 오전 5시경, 제가 자고 있을 때 밖으로 나오라며 방문을 차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용의자는 제 팔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어요. 그는 저를 찼습니다. 그는 제 귀와 눈에 총을 들이댔습니다. ‘네가 그렇게 용감하다면, 나와 흥정할 수 있겠군!’ 저는 너무 많이 피를 흘리고 있었고 제가 머물던 숙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나왔지만…… 그들도 너무 두려워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는 제가 거의 죽을 때 까지 때렸습니다. 제가 맞고 나서 용의자는 ‘네가 나를 고소할 만큼 용감하다면, 나는 너를 죽일 거야’라며 협박을 계속했습니다.”

  인도네시아정부군이 피라미드(Priamid)지역에서 젊은이를 폭행하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도로를 고치고 지나는 차량의 운전자들로부터 요금을 받고 있었다. 불만을 가진 택시 운전사가 이를 검문소에 보고했다. 코스트라드(Kostrad)의 무장한 사복 군인 14명이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갔고, 젊은이들은 일행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달아났다. 코스트라드 대원은 총을 발사했지만 한명의 젊은이도 붙잡지 못했다. 대원들은 그 상황에서 우연히 지나가던 두 명의 남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들은 장을 보고 마을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대원들은 젊은 사람들을 잡는 데 실패하자 갑자기 무기를 들이대더니 우리를 체포했어요. 그들은 바로 우리 얼굴을 발로 차고 라이플총으로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도망을 시도했다. 한명은 성공했지만, 다른 한명은 잡혀와 다시 고문을 받았다. 오후 6시 경에 도망친 친구로부터 제보를 받고 출동했을 마을 대표와 경찰을 태운 순찰차가 도착했다. 여전히 발가벗겨진 채 묶여 있었던 피해자는 군인과 경찰에 의해 차에 던져져서 와메나(Wamena)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그날 밤, 잘못한 증거가 없자 그는 풀려났다.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다른 침해들

모든 파푸아 사람들이 분쟁의 결과로 고통 받고 있지만, 파푸아의 여성과 소녀들은 특히 성폭력을 포함한 인권 침해의 위험에 놓여있다.
고도로 군사화 된 지역에 살고 있다는 위험은 원시문화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와 복합되고, 민족운동을 포함한 동시대의 정치 운동에서 소외된다.
이미 강간, 성노예, 그리고 인도네시아 보안군에 의한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폭력은 중앙 고지대를 통틀어 여성 피해자가 3세에서 60세에 이른다고 보고된 바 있다.
경찰과 인도네시아정부군에 의한 폭력은 오늘날까지 계속된 문제다. 군대나 경찰이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리고 여성 또는 소녀들은 정원, 학교, 시장 또는 우물을 오가는 길목에서, 또는 군인들이 요구한 가축을 지불하지 못할 때, 강간과 여러 형태의 성적 폭력이 발생한다. 여성과 소녀들은 보안군에게 성을 제공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몇몇 사례에 있어 보안군은 여성과 소녀들이 파푸아해방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그들에 대한 성폭력은 보복과 협박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친숙하고 접근성 있는 고발 장치의 부재와, 법의학적 증거를 수집할만한 적절한 장치의 부재 그리고 처벌받지 않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인해 피해자들이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학대에 대한 불처벌과 책임감 결핍

우리가 조사한 사건 중 대부분에 있어 경찰은 의혹이 제기된 폭력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어떠한 진상조사나 가해자를 기소하기 위한 과정을 시작하지 않았다.

  파푸아에서 보안군에 대한 불처벌: 현저한 사례

2001년 주요한 파푸아 독립지도자 테이 엘루아의 암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냉소를 광범위하게 심화시켰다. 2003년 7명의 하급 특수부대원들(Kopassus)에게 유죄가 선고됐는데, 이는 살인이 아닌 엘루아의 죽음을 유발한 학대와 구타에 대한 것이었다.
경찰은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와의 진상조사 협력을 거부했고, 진상조사팀의 몇몇 대원들은 경찰로부터 협박과 위협을 받았다.

  인권법정의 영향

인도네시아의 인권법정 설립은 최소한 인도네시아가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한 견고한 불처벌 관행과 싸우는 중대한 과정을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첫 번째 인권법정이 설립된 이래 지난 6년 동안 시들어갔다. 2005년 9월 마카서(Makassar) 인권법정은 세 명의 파푸아 학생들에 대한 살해와 100여명의 사람들에 대한 고문을 명령한 책임을 갖고 있는 경찰간부 두 명을 무죄 석방했다. 이것은 아베뿌라 학생들에 대한 살해와 학대에 대해 어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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