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8-12-16 11:52:08, Hit : 3716
 태국민의 무관심, 그것은 무언의 외침

    태국민의 무관심, 그것은 무언의 외침!
  '라온아띠' 태국이 태국에 띄우는 편지 -  고두환 (casto)  

  오늘도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완나폼 공항(방콕 국제공항)이 폐쇄되고, 시위대들의 충돌로 몇 명의 사람이 죽는 지경이 되자 언론들이 태국 전체가 전쟁이 난양 보도를 했나보다. 난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답한다.

"저는 방콕과 12시간 이상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낮에는 애들과 놀고, 밤에는 고구마를 궈먹고 지내고 있습니다. 시위가 났다는 것은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덕에 알 수 있었습니다"

구멍가게 몇 개 있는 태국 북부의 작은 시골마을 '왕리앙', 시위대가 올 이유도, 올 명분도 없는 곳이다.

   "끄룽텝(방콕)은 위험한 곳이야!'

우리집 야이('할머니'를 뜻하는 태국말)의 오른팔 너이(홈스테이 집 14살 손녀딸), 오늘도 잘생긴 배우나 가수가 TV에 나오는지 연신 눈을 흘기고 있다. 그러던 중 TV에서 뉴스특보가 방영된다. 재빨리 채널을 돌리려는 너이의 손을 야이가 제지한다. 방콕인 것 같은데,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도 하고,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경찰과 싸우고 여하튼 복잡한 화면들이 시시각각 지나가고 있었다. 야이가 연신 나를 붙잡고 설명하지만 태국 생활 석 달째에 접어드는 내가 알아들을 리 없다. 너이가 한 마디로 정리한다.

   '끄룽텝은 위험한 곳이야!'

그 후, 학교에서 쿠능(능 선생님)의 설명으로 어렴풋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국에서 시위대가 총리의 퇴진을 주장하며, 공항을 점거하고 또다른 시위대가 그들과 대치하는 도중 폭탄도 터지고 서로 총격전도 벌어진다고 했다. 그녀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더 묻고 싶었지만, 태국 사람들은 정치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시위는 끄룽텝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지고 있었고, 안그래도 복잡한 끄룽텝이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이었다.

  못과의 대화에서 몇 가지 유추한 사실

그래서 내 친구 '못(15살, 왕리앙 중학교 3학년)'에게 더듬더듬 태국어로 물어봤다.

"지금 태국 위험해?"

"어. 위험해. 사람들 맨날 바쁘고, 싸우고, 편안하지 않아"

"너 푸미폰 왕 좋아해?"

"어. 그는 최고야"

"탁신은?"

"음… 좋은데, 그는 돈을 좋아해"

"그럼 푸미폰 왕 아들, 왕자는?"

"그냥 그래"

현재 태국 상황을 정리하는 모든 내용이 못의 입을 통해 나왔다. 어른들한테 이걸 물어보면 내가 알아듣는 단어로 설명해주질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정치상황이나 사회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사실, '아이들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누구보다 정확하고 사태파악이 빠른게 아이들이다. 알려진바와 같이 이번 시위의 배후에는 태국의 왕족 및 호족과 탁신계 정치인 및 엘리트들의 충돌이 있다고 한다. 못의 말에서 유추해보자.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부연설명하기 좋아하는 못은 왕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얌(최고라는 뜻의 태국말)'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설명을 끝냈다. 현재 왕조의 모든 왕들이 존경받지 못한다. 그 중 현존한 푸미폰 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세를 구가하며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음엔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소요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왜? 그가 건강하지 않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태국의 한 대학교수는 그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거란 식으로 그의 건강 상태를 설명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사실은 그 다음에 있다. 왕자에 대해 묻자 못은 여러 태국말을 곁들였지만, 몇 분간 주고 받은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그냥 그래'였다. 치앙마이 YMCA 페차린 사무총장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태국민들에게 존경받지 못한다. 왕실의 재정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국민들의 안위보단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했기 떄문이다"

돌려말하면 푸미폰 국왕의 건강 악화로, 그의 사후를 왕족과 호족들은 엄청 걱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시골동네 청소년에게도 그냥 그렇다는 평가를 받는 왕자가 믿음 갈리 없는 왕실, 그렇다면 시위라는 무기를 통해 적당히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해볼 속셈일 수 있다. 12월 5일(금), 푸미폰 왕의 생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동네사람들과 절에 가서 왕에 대한 안녕을 기리고, 자신들의 소망을 비는 자리에 함께 한 적 있었다. 태국민들이 말한다.

"왕은 자기 생일을 얼마든지 성대하게 치룰 수 있지만, 그 날 만큼은 태국민들이 조용히 지내면서 의미있는 일을 하나씩 하면서 지내길 원한다. 그래서 별다른 행사도 없고, 편안하게 집에서 하루 쉰다. 어찌 우리가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이미 국민들의 눈에도 푸미폰 왕을 제외한 나머지 왕족과 호족들의 행실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가장해도 관점에서 오는 차이의 간극을 채울 수 없나보다.
마지막으로 탁신은 어떻냐는 질문에 처음엔 그가 좋다는 말을 못이 신나게 떠들었다. 그는 시골이 발전할 수 있게 해주고, 우리한테 돈도 주고(아마 사회보장제도를 일컫는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단호하게 덧붙인다. '그는 돈을 좋아한다'고.

한 마디로 잘하긴 했는데 꺼름칙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현 태국 사회에 있어서 완벽한 대안이 아닌 것이다. 다만 선택이라는 순간(투표)이 올 때, 마땅한 대안이 없는 태국민들은 '탁신'이라는 꺼림칙한 카드를 뽑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무관심, 그것은 태국민의 의사표현

처음 태국에 도착했을 땐, 왜 이리도 사람들이 불안한 정치상황에 둔감한지 의아했다. 몇 몇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후진국일수록 정치사황에 대해 둔감하다'라던가, '먹고 살기 바쁜데 거기에 관심 기울이겠냐?'라던가, '유신 때처럼 관심을 기울이면 안되는 것 아니냐?' 등 뭔가 우리가 이미 겪은 듯한, 우리가 우월한 듯한 시각에 뿜어져 나오는 추측들만이 나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과 무가타(돼지고기를 샤브샤브와 곁들여 궈먹는 것) 잔치를 할 때마다 그들이 내게 물어보는 질문은.

"너는 종교가 뭐냐? -  종교가 왜 없냐?"

"너희 나라에도 왕은 있느냐? 일본도 있는데 너네는 왜 없냐?"

"한국에서도 시위를 하느냐?"

등이다. 요즘 빈도수 높은 질문들로 거의 매일 받는 것 같다. 과연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난 이 말에서 일종의 해답을 찾는다.

"왕은 정말 국민을 생각해.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첫째도 국민, 둘째도 국민이지. 탁신은 그렇지 않아. 왕족도 그렇지 않아. 정치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아"

이것은 치앙마이 YMCA 피툰 스텝이 도로를 막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절에 가는 왕족을 보며 뱉은 말이다. 현재 시위가 방콕에만 집중된 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과격하게 치닫는 것,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TV로 지켜보며 혀를 차는 것은 '무관심'이다. 그 속에 국민이 없다는 무관심.

   만약, 왕이 죽는다면

우리 팀이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 3가지'를 농담삼아 말하곤 한다.

1.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탓에 전쟁이라도 난다면

2. 현재 태국의 시위가 다시 일어나서 온 공항과 항구가 폐쇄된다면

3. 태국의 왕이 갑자기 죽는다면

1번은 타국에서 봐도 정부의 행태가 하도 한심해서 하는 말이고, 2번이야 그렇다고 쳐도, 3번이야 말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느꼈을 때, 현재 어지러운 정치상황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태국이 안정된 형태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공감대, 정신적 유대인 '왕'이 있다.

"고, 3번은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던 치앙마이 대학교 학생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지금도 '왕'만을 붙잡고 있는 태국민들은 왕족, 호족, 탁신계, 정치인, 엘리트들에게 소리치는 것이다. 특권층으로서 누리고, 편안하고, 행복하다면 너희들의 본분, 우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을 실현해라!라고. 이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태국의 정치에서 국민들이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출처 : 태국민의 무관심, 그것은 무언의 외침!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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