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9-01-08 11:32:32, Hit : 3522
 세계가 침묵하는 가운데 피로 물드는 가자


      세계가 침묵하는 가운데 피로 물드는 가자
  팔레스타인에서 전하는 소식  

“지금 가자는 완전히 정전이 되었어. 거리는 죽음처럼 조용하단다.”

나는 가자에 계신 아버지와 인터넷 전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2006년 이스라엘이 가자국경을 완전히 차단하고 점령지에 봉쇄를 강제한 후부터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의 더렘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발코니 밖에 나가계신다. 지금은 새벽 2시다.

“어디를 보더라도 도시 전체에 천천히 피어 오르는 회색 버섯구름만 보이는 구나.” 아버지는 마치 그 버섯구름들이 끔찍한 사건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부산물인 것처럼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거리를 걷고 계셨다.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도를 했어. 땅이 흔들리더니 연기가 피어 올랐고, 앰블런스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 때에 어머니는 대학가에 있는 적신월사 센터에서 시간제 소아과의사로 일하던 중이셨다. 적신월사 센터 뒤에는 폭격을 맞은 경찰서 중 한 곳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폭발로 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처음에는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동료들과 공습으로 인한 부상자들을 알 시파 병원으로 옮기기 전에 응급처치를 하셨다고 했다. 이제 공습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났고, 부모님은 집에 갇혀있는 상태이다.

아버지는 말을 꺼내기에 앞서 깊은 한 숨을 쉬셨다. “에후드 바락(이스라엘 국방부장관)은 미쳤어. 그는 미쳤어. 모든 곳과 모든 것에 폭탄을 떨어트리고 있어. 누구도 안전하지 않아.” 아버지의 목소리 뒤로 나에게까지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다.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멀고 흐릿했지만, 죽음의 계곡에 퍼지는 메아리처럼 오래 머물렀다. 폭발음은 바로 2년 전 가자에서의 밤을 생각나게 했다. 4살짜리 아들 녀석은 아직도 그 밤의 기억 때문에 혼자 잠을 자지 못한다.

“소리가 들리니?”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우리집이 흔들리고 있어. 몸 속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야.”

어머니가 전화기 가까이로 오셨다. “여보세요, 잘 지냈니, 내 딸아.”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욕실에 가야 하는데, 혼자 가기가 두렵구나. 기도를 하기 전에 몸을 씻어야 하지만 두려워. 네가 혼자 욕실에 가기가 무서워서 우리가 함께 갔던 때가 기억 나니?” 어머니는 그 생각에 웃으셨다. 어머니는 자신이 안식을 찾는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두려웠고, 어린 나의 우스운 모습과 똑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에 웃음이 난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이다. 뉴스가 나오기도 전에 그 상황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땐 다른 누군가가 이 상황을 판단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를 바라게 될 거다. 특히나 이번 같은 경우는 스스로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너무 이상해. 내 몸 전체가 흔들리고 있어. 왜 이런 거지? 왜 이런 거야?” 엄마가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고 뒤로는 계속해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또 다시 시작이야. 하나가 터지면 또 하나가 터져. 열 다섯 번 이야. 그 전에도 한두 번 더 그랬어. 아마도 지금까지 스무 번은 되는 것 같아” 이럴 때엔 숫자를 세는 편이 차라리 낫다. 공습을 숫자로 생각하는 것이 이 상황을 견디기 더 쉬울 것이다. 마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통화를 했다. 지난 밤에 어머니는 나에게 총격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 마치 그 상황에서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 목소리가 그 총알들을 없애주기라도 할 듯이.

마침내 어머니의 공포는 좀 가라앉았다. “그래, 그래, 네 아버지가 그 것은 무장 헬리콥터 소리였다는 구나. 부두를 공격했어. 불쌍한 어부들, 그건 진짜 부두 같지도 않은 곳인데….그냥 부두일 뿐인데. 그냥 부두…”

부모님은 폭발음 때문에 유리창이 깨질까 봐 창문을 열어 놨다.

“그런데, 우리가 네 방에서 자고 있단다. 여기가 더 안전해.” 어머니는 내가 떠난 빈 방을 말했다.

어머니의 친한 친구인 요스라 아주머니는 집을 떠나 피신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요스라 아주머니의 가족은 공격의 목표가 되고 있는 관공서 건물들 가까이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족들은 폭격을 맞으면 안되니 기도를 하러 모스크에 가지 말라는 통지도 받았다. 다른 친구인, 아르메니아계 팔레스타인인 기독교인이며 은퇴한 약사 아주머니는 동네의 다른 주민들처럼 두려워서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아주머니는 오마르 알 무크타르 거리에 있는 사라야 경찰서 앞에 혼자 살고 계신다. 경찰서는 이미 두 번이나 공습을 받았다.

가자에 죽음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그리고 세계는 침묵 속에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각국 정부도 침묵 속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가자에 내리고 있는 죽음의 비구름과 천둥을 어떻게 거둘 수 있을까? 모두들 결국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하마스의) 로켓공격에 대한 대응이라거나 정전협정이 깨진 탓이라든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그나마 상황이 그런대로 견딜 만 했고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그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었지만 상황은 평온한 듯 했고 봉쇄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나라 잃은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어려움을 잘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다.이스라엘의 정착촌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 듯 했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땅을 질식시킬 것만 같았던 고립장벽도 더 이상은 뻗어가지 않는 듯 했다. 더 이상은 사람들이 추방되지 않아도 되고, 그 동안의 마비되었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는 나오지 않고, 봉쇄된 국경이 열려 음식과 전기와 연료 공급이 재개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모든 짐은 고스란히 갇힌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고립된 자신들의 처지를 어떻게든 바꿔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굶어 죽지 않는 한 세상 사람들은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우려만 늘어놓을 뿐이다…

이 거대한 감옥을 감시하는 교도관들은 가끔씩 사람들의 숨통을 풀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감옥의 문은 여전히 닫힌 상태 그대로이다. 하루 스무 시간 동안 전기가 끊긴 채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하루 여덟 시간 만이라도 전기가 들어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니, 그 네 시간 만이라도 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있기를 꿈꾼다. 나의 친구 사파 주데흐도 가자시티에 살고 있다. 그녀는 27살의 프리랜스 기자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공격의 목표가 하마스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자의 인구 전체가 공격의 목표야.” 사파가 말했다. “공습이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이스라엘은 공격 목표가 하마스와 관련된 건물과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만, 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치활동가가 아니라 공무원들이야. 가정집과 이슬람 사원, 대학교, 부두, 어선, 수산물 시장까지 공격을 받았어.”

사파는 토요일 이후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공습 첫날, 거리는 당연히 사람들로 가득 찼었어. 공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러 나가던 그 시간에 공습이 벌어졌어. 공습 이틀 만에 거리는 완전히 텅 비었어. 사람들은 가게 문을 닫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려고 해. 많은 집에선 식량이 다 떨어졌어. 빵집은 공습이 있기 이틀 전에 이미 연료와 밀가루가 없어서 문을 닫은 상태였어.”

부모님 집 근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가는 킨즈 이슬람 사원 옆에 있는 작은 가게는 기도시간 후에 잠시만 문을 연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게가 열려 있는 짧은 시간 동안 가게로 가서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생필품을 구해오신다. 부모님 집에는 빵이 한 봉지 밖에 남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괜찮다.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진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마단씨의 손자들은 그녀의 품 안에서만 잠이 든다는구나.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이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싸곤 하거든.”

나의 아들 유수프가 노트북 화면에 머리를 갖다 대며 통화를 방해한다.

“아빠, 나 아빠가가 만들어주던 파투샤가 좋아요! 아빠… 괜찮아요?”

“내 사랑, 우리가 만나게 되면,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면, 또 만들어줄게.” 아버지는 약속을 하셨다. 비록 환상일 지라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는 희망이 그나마 아버지를 안도하게 하는 듯 하다. 돌아오는 1월 1일은 나의 딸 누르의 생일이다. 이번에 한 살이 된다. 오늘 피로 물든 가자에서 태어난 아이는 누구일까?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글 _ 라일라 엘 하다드 (팔레스타인 인 자유기고가이며 사진가로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가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작성일 _ 2008년 12월 30일
  출처 _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http://electronicintifada.net/)
  번역 _ 수진(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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