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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ce(2007-02-07 12:00:28, Hit : 5995
 메솟이 보여주는 미얀마의 땅


   메솟이 보여주는 미얀마의 땅

  태국의 수도 방콕 밤거리는 차로 가득했다. 짜오프라야강의 호화로운 호텔과 카페, 에메랄드 사원과 왕궁, 그 화려함이 눈을 부시게 했다. 화려한 방콕 밤거리의 유혹을 뒤로한 채 방콕 북부버스터미널로 향했다. 22시30분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좁은 도로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8시간 후면 메솟에 도착한다. 버스 안에서 편안한 잠자리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눈거풀이 닫혔다, 열렸다하기를 수 차례, 메솟행 버스안의 밤은 길기만 했다. 미얀마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메솟은 태국 땅이지만 버마인이 60% 이상 살고 있는 도시다. 겉으로 보기엔 메솟은 태국 땅이지만 메솟의 거주민들에게 메솟은 미얀마나 마찬가지다.
  버마는 동쪽에 태국, 라오스, 북부에 중국, 서부에 인도, 방글라데시의 5개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로 130여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다. 미얀마족, 카렌족, 몬족, 아라칸족, 친족, 샨족, 카친족 등의 민족이 국민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이들 민족은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버마군부가 다른 소수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원주민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면서 원주민은 재산 몰수, 강제노동, 강간, 처형, 고문, 구타 등에 시달리고 수천명의 원주민이 군부의 인권유린과 굶주림을 피해 국경지대로 탈출하고 있다. 국경을 넘는다고 해서 이들이 자유를 얻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망명을 요청한 국가로부터 강제 송환되거나 불법체류자로서 불안에 떨며 살기도하고, 강제 송환되거나 차별을 받는 등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만나러 멜라 캠프로 향했다.

  메솟의 공기는 방콕과 많이 달랐다. 고개를 돌려 보면 보이는 것은 빈틈없이 들어찬 빌딩뿐이던 방콕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것은 들과 산, 그리고 그 안에 낮은 집과 10층 이하의 건물들이었다. 눈과 목을 씻어주는 상쾌한 바람이 반가웠다. 멜라 캠프도 우리는 반겨주는 듯 메솟에서 멜라 캠프로 향하는 길은 넓고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캠프로 가는 40분 동안 양쪽으로 펼쳐지는 넓은 들판과 산, 한적한 시골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첫 번째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산중턱의 집들, 두 뻔째 검문소를 지나서는 그 거대한 규모에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멜라캠프는 태국 국경지역에서 가장 늦게 건설된 9번째 난민촌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대략 5000가구이며 5만명의 난민이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먹을거리와 생필품은 국제기관과 NGO들의 지원으로 해결하면서 말이다.
  “매달 쌀, 기름, 밀가루, 젓갈, 설탕 등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지원받아 생활하고 있어요. 이것을 아껴 두었거나 팔거나 서로 교환해서 필요한 것을 얻는거죠"? 이곳 주부들이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방법이다. 난민캠프로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슬리퍼 등 을 파는 구멍가게였는데. 이곳은 생필품을 팔거나 캠프 밖에 몰래 나가 일당벌이로 음료수 등을 파는 가게는 쉽게 눈에 띄었다. 캠프안의 사람들이 자유로워 보이는데 특별한 규제는 없냐는 물음에 ”캠프 밖 세상을 나가는 통로마다 검문을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오고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도 경찰에게 뇌물만 잘 쓴다면 불가능 할 것도 없다?.” “나간다 하더라도 갈 곳도 없다. 난민캠프 안에서도 미얀마군부가 언제 국경을 넘어 쳐들어올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안도 밖두 우리에게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라고 답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캠프안에는 초, 중, 고등학교를 합쳐 59개 학교와 22개의 유치원이 있고, 8개의 병원과 클리닉, 공동우물, 공동화장실 등이있다. 클리닉 같은 경우네는 캠프라는 공간에서 한 달에 100여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현재 상황을 알리고 가족계획 등을 홍보하는 등의 일을 한다. 울타리 안에서 식량 등을 지원받아가며 하는 일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표정은 불평, 불만 없는 무표정이었다. “이런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생활, 우리는 괜챃아요. 하지만 아이들이 희망도 미래도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니...” 어머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 멜라 캠프에서 그들은 미래를 잃었다. 잠시 머물러가는 곳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나라도 잃었지만 그들의 삶도 잃어가고 있다. 방콕북부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메솟 가이드 위롯(40, 남)은 메솟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메솟을 사랑해서 메솟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는 어머니, 아내, 딸, 처제와 옛, 그의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위롯의 부인인 지(24, 여)는 미얀마 샨족 여인이다. 지는 위롯과 결혼해서 16개월 된 딸(요옥)이 있고 지금은 임신 6개월이다. 지의 가족은 지금 미얀마에 살고 있고 며칠 전에는 딸을 데리고 미얀마에 다녀왔다. 여동생 중 한명을 데리고나와 메솟에 함께 살고 있다.

  지는 애무 행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미얀마는 떠나 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에게 걱정이 있다면 미얀마에 남아있는 가족과 아직 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다. “결혼 후 태국 정부에 지의 국적 취득신고를 했는데 지금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예요. 하지만 요옥은 태국인이랍니다.” 지만 위롯의 아내가 완전히 되지 못한 상태다. 시리제로 이러한 가정이 많이 존재하고 있고, 태국여자와 결혼한 미얀마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옛(16, 남)도 미얀마 몬족이다. 여동생과 함께 메솟에 와서 돈을 벌어 미얀마의 가족을 먹여살리고 있다. 위롯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옛은 위롯과 근로자와 고용주의 관계에 잇다. 옛은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그의 미얀마이름이 어려워 위롯이 쉽게 불는 이르이다. 옛의 희망은 메솟에서 목돈을 모아 방콕에 가서 큰 돈을 버는 것. 그의 바람은 곧 지금 메솟에 있는 미얀마 젊은이들의 희망과 같다. 그들이 방콕에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메솟행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검문을 한번 정도 받지만 검문에 걸린다 해도 돈 몇 푼 찔러주면 무사통과다. 돈을 모두 빼앗기는 경우도 있어서 그들의 돈을 따로 운반해주는 사람들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위롯 가족의 모습은 지금 메솟에 나와 생활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의 사정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다.

  난민들의 척박한 삶은 멜라캠프 안의 일만은 아니었다. SAW, 메타오 클리닉, BLSO초등학교. 메타오고등학교 등 메솟 지역 안에 있는 시설들 또한 캠프 밖 난민들의 열악한 환경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SAW(Social Action for Women)는 실직한 여성들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여성단체로 학교, 하우스, 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운영비는 미국이나 유럽의 NGO에서 지원을 받고 일부는 하우스에 있는 사람들이 수공예품을 만들어 방문자들에게 팔아 마려한다. SAW는 미얀마 아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위기센터(Children's crisis center)를 운영하고 있다. 너른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녹이 슨 놀이기구들이 드문드문 놓여있다. 놀이기구마다 아이들 옷이 쨍쨍한 햇빛에 일광욕을 하고 있을 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방안에 들어선 후에야 어두운 그늘 안에서 소리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미혼모들이거나 에이즈감염으로 사망하거나 일을 구하러 갔다가 불법체류자로 체포된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는 4명의 보호자가 15명의 아이를 맡아 같이 지내고 있다. 센터에는 학교에 간 아이들을 빼고 10세이하의 아이들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보통15세까지 보호를 받는다. 센터에서 두 살 된미미싼을 만났다. 미미싼의 부모는 에이즈 감염으로 죽고 아이 또한 감염되었다. 아무런 말,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미미싼의 눈동자는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또렷하게 빛났다. 누가 미미싼의 아픔을 알까. 아이의 목에 걸려 있는 버에주라는 부적이 알까? 버에주는 화려하고 거창해 보이지 않지만 미미싼을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는 듯 보였다. 미미싼은 현재 메타오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메타오 클리닉은 미얀마 카렌족 출신의 여의사 신띠아 마웅이 1988년 개설한 병원이다. 진료실, 재활치료실, 분만실, 일반병실, 자료실, 교육실 등이 각각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회관 한 채 규모 정도로 모여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병원인지 마을회관인지 알 수 없다. 차가운 맨 바닥에 수혈을 받으며 누워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병원인 줄 알 수 있었다. 현재 활자 수만 8만명, 모두 미얀마인 또는 국적 없는 사람들이다. 의사가 단 6명뿐이라는 사실을 믿기엔 병실마다 가득찬 환자들이 거짓 같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라리아와 에이즈 감염으로 가장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고, 5세 이하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죽어가기도 한다. 1999년부터는 1년마다 10~20%씩 환자가 증가해서 현재 찾아오는 환자가 하루에만 300명이다. 증가하는 환자를 위해 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 교육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들이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각자의 마을에 가서도 활동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메타오 클리닉은 의료 활동 뿐만 아니라 에이즈 예방 캠페인, 성교육, 성 피해 여성 지원등의 일을 하고 있다. 닥터 산디아는 “병원에는 식량, 약품, 인력 등 무엇이든 다 모자라고 필요하지만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사아태다. 아직 미얀마 난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알려져서 더 많은 곳에서 지원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메솟에는 48개의 초등학교가 있어요. 그 중에 1999년에 개교한 BLSO 초등학교 시설은 양호한 편이고 교육수준이 아주 높아요.” 교사는 밝게 웃으며 자랑하듯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학교로 들어서는 길은 밝지만은 않았다. 철판으로 엮어 만든 엉성한 판자촌, 어두운 좁은 골목을 지나야 학교에 이를 수 있었다. 캄캄한 집안에는 살림살이가 나뒹굴고 있고 사람들은 햇빛이라도 쏘이려는지 좁은 골목에 모여 앉아 있었다. 학교는 안이 훤히 보이는 교실 하나가 전부였다. 한 교실에서는 4~5개 반 50여명의 학생이 동시에 수업을 하고 있었다. 비라도 오면 어쩌려고 엉성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싶었는데 교실 안이 환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어둡고 습기가 가득한 곳에 딱 맞는 학교였다. 의자 없는 낮은 책상과 벽에 덩그러니 붙어 있는 칠판, 그리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공부하기에는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9시에 등교해서 3시까지 수업을 받으며 점심식사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집에서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매주 금요일은 특별히 점심식사를 학교에서 주고 학생들에게 교복, 교재, 학용품 등은 무료로 제공된다.

  “모든 비용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지원해집니다. 그러나 매월 꾸준한 지원이 없으니 교사월급 2000바트(한화 약6만원)를 지급하는 것도 힘듭니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한 달 한 달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어도 교사와 민주화 운동가들은 학교를 지키려 힘쓰고 있다. 넓은 들판 가운데 있는 메타오고등학교는 지난해 6월 한국에 온 미얀마 이주노동자들과 부천지역 시민단체들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 등)의 지원으로 개교하게 되었고, 올해 6월부터는 1년 계획으로 2억원의 보조를 받았다. “이곳 180여명의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좁은 공간도 활용하고 비용도 아끼려고 기숙사 안의 3층 침대를 교사들과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이 밖의 기타 물품 대부분도 교사와 학생들이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태국 정부는 메솟의 학교수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교사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5교실. 7~10학년을 내년에는 11학년, 다음해에는 12학년을 추가로 개설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학생들은 미얀마어, 태국어, 영어, 수학, 지리과학, 역사, 컴퓨터, 사회학 등을 배우고 있다. “학생들이 태국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태국어도 가르치지만 대학에 진학해도 학비가 걱정인 아이들을 위해서는 진학 대신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4개월 과정의 직업훈련도 하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뜨개질과 재봉,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함께 장식품 만들기를 배운다. 직업훈련 중에 장식품 만들기는 수입이 좋아 선호도가 높다. “이곳의 아이들은 미얀마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나, 교사, NGO활동가가 되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미얀마도 태국도 아닌 다른 나라(호주, 캐나다, 미국)에 가고 싶어 해요. 미래가 없어 보이는 이곳 생활을 지겨워하면서 말이죠.”
  미얀마는 메솟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땅이다. 미얀마사람들은 국경다리까지 나와 장사를 한다. 신기한 것은 소년들이 담배를 들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그 뒤로 총을 맨 경찰이 순찰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에 봐 주기로 한 걸까?
  “이 다리도 없어질지 몰라요. 국경 근처에 댐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얼마 전에 이곳을 지나 친정부모를 만나고 왔는데...” 위롯이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망를 꺼냈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미얀마인의 눈물 자국이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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