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23 10:54:07, Hit : 5320
 기억해야 할 이름들에 웨스트파푸아 사람들도!

    기억해야 할 이름들에 웨스트파푸아 사람들도!  

  2006년 12월 1일, 지난 금요일에는 양심수인 웨스트 파푸아인 유삭 파키쥐와 필립 카르마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12월 1일은 웨스트 파푸아가 1961년 네델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할 당시에 선포한 독립기념일이고,  인도네시아의 점령과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의 12월 1일은 웨스트 파푸아인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확인하는 기념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2004년 12월 1일 독립선포일을 맞아 자신들의 국기인 '모닝스타'-빈땅끄조라-를 게양했다는 이유로 두 명의 웨스트 파푸아인이 체포되었고, 이들에게는 10년 15년이라는 형이 선고되어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삭 파키쥐와 필립 카르마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웨스트파푸아'는 낯선 이름의 나라이고, 어쩌면 인도네시아에 자발적으로 식민지가 된 나라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유엔이 인정한 '절차'와 '승인'이 있을 경우에는 드러난 사실만으로 판단하려 하지 '진실'은 애써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웨스트 파푸아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그것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것이지요.
1969년 유엔 감시 아래 치뤄진 국민 투표에서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로 남을 것을 선택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은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독립을 원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독립을 원하는 웨스트 파푸아인들에게 놀라 묻습니다 '너희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했었니?'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웨스트 파푸아가 네델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던 1961년부터 인도네시아의 법적 식민지가 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입니다. 웨스트 파푸아를 놓고 네델란드와 인도네시아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인도네시아는 무력침공을 단행합니다. 이런 가운데 그 당시 아시아에서의 구 소련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염두한 미국이 개입했고, 미국의 '적극적' 중재로 뉴욕협정이 체결됩니다. 1962년에 체결된 뉴욕협정은 웨스트 파푸아를 유엔임시위원회에 잠시동안 관리하게 한 후 인도네시아에 6년간 통치를 위임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임통치가 끝나는 1969년에는 웨스트 파푸아인의 국민투표(Act of Free Choice)로 독립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협정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인도네시아 위임통치 기간동안 웨스트 파푸아인들의 독립의지와 운동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폭력적 억압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1969년 투표를 앞두고 인도네시아는 웨스트파푸아인들이 다양한 부족과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유엔이 인정해 결국 인도네시아가 선택한 1022명만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들이 친인도네시아 파푸아인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투표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협박과 감시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원천봉쇄했습니다. 그렇게 웨스트 파푸아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로 남겨질 것'이 선택됩니다.

  인도네시아의 점령 이후 웨스트 파푸아의 사람들의 생존권과 자연과 자원은 파괴되고 훼손되고 약탈당해 왔습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파푸아의 언어와 문화과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풍부한 천연자원의 개발을 목적으로 한 산림 파괴와 강제이주, 그리고 또다른 학살이 계속되었습니다. 독재자 수하르토가 물러난 후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독립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특별자치법'을 내세워 '독립'을 무마시켰고, 이 특별자치법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와 약속마저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삭과 필립의 구속이겠지요. 국기 게양을 약속해놓고도 국기 게양을 '국가모독죄''반역죄'로 씌워 10년, 15년을 선고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웨스트파푸아에 대한 태도와 정책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 12월 1일 웨스트 파푸아를 지지하는 국제 연대 단체들의 공동행동에는 한국의 연대의 목소리도 담겨져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웨스트 파푸아 문제를 꺼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13개의 단체들이 인도네시아정부에 항의하는 성명서에 연명해주셨고, 많은 평화활동가들이 항의 엽서에 서명해주셨습니다.  유난히 바람이 많던 12월 1일 여의도에 있는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에서 작지만 의미있었던 일인 릴레이 시위에는 경계를 넘어 활동가들과 회원인 이상희,유해정씨, 그리고 왕복 3시간을 감수하고 달려와준 이우학교의 윤경민, 이준용 학생들이 그 자리에 함께 해주었습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비정규직법안 개악안 통과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집회가 있었습니다. 물대포와 경찰들의 곤봉에 많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또 그 전 날인 11월 30일, 함께 했던 민가협 목요집회에서는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과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리를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갇힌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들, 양심수들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12월 1일 캠페인에서 한국 사회와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낯선 이름의 웨스트 파푸아 양심수 석방과 자결권을 외쳤지만, 웨스트파푸아 캠페인과 민가협집회, 비정규직법안항의집회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집회에서 우리가 분노하고 항의했던 것은 다름아닌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 폭력과 자본가 이해 관계에 충실한 지배계급이라는 점입니다.

'연대'는 국경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어깨동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합니다. 그래서 12월 1일 웨스트 파푸아 감옥에 갇혀있는 유삭과 필립의 석방을 외쳤습니다. 웨스트 파푸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했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 구속노동자, 구속된 농민, 구속된 대추리 이장님, 체포된 민가협 아버님, 그리고 웨스트 파푸아인 유삭과 필립! 나뉠 수 없는 이름들을 기억하는 12월 1일이었습니다.

    글쓴이: 박의영(경계를 넘어 활동가)
    출처 :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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