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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ce(2005-07-12 10:07:07, Hit : 5104
 아시아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심화시키기 위하여:조리나 벨라스코

아시아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심화시키기 위하여:필리핀의 견해
조리나 벨라스코(필리핀 민중민주주의연구소)



이 기사는 2005년 6월 1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6월민주항쟁 18주년 기념 '2005 아시아민주포럼'>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필리핀 민주주의의 역사를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1565년 스페인의 식민주의자들이 도착했던 1565년 이전에는 이렇다 할 만한 단일한 필리핀 국가가 없었다. 그 때는 남부에 흩어져 있는 무슬림 술탄체제들과 군도의 나머지 지역에 있던 국가 이전의 형태의 사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스페인 지배에 대한 수년간의 실패한 저항 이후에, 본격적인 저항이 분출했고, 마침내 1898년에 독립된 필리핀 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의 식민지배가 곧바로 이어졌는데, 이 시기에 오늘날 필리핀에서 존재하는 엘리트 중심의 정치 체제를 위한 기반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나중에 차차 이야기 하겠다). 권력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필리핀인에게 이양되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기운과 자결권은 결코 죽은 적이 없었다.

이야기의 나머지는 잘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초기에 커다란 농민봉기가 진압된 이후, 1960년대 후반에는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한 급진적인 바람이 학생들이 주도하는 좌파 운동에 의해서 일어났다. 무슬림들의 분리주의 운동도 역시 시작되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1972년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시민 저항을 억압했다. 그는 철권정치를 하였는데, 인신보호영장(haebeas corpus)을 정지시키고, 정적을 제거하고, 언론의 자유를 막았다 (인신보호영장은 구금의 부당함을 밝히는 데 많이 사용됨).  저항은 자하에서 계속되었고,  1986년 마르코스는 마침내 마닐라 거리에서 벌어진 ‘민중의 힘’의 평화적 저항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독재정권이 타파된 이후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날 필리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다시 도입된 이후에 필리핀 해변에 민주주의는 어떻게 정착되었나?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짧은 시간동안 대답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밑에서 설명되는 것은 전체적인 그림을 잡기 위해 몇몇 윤곽을 제시하려고 한 시도이다.

2004년 12월 여론조사기관인 SWS(Social Weather Stations)가 전국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필리핀인의 40%가 민주주의가 시행되는 방법에 만족을 한다고 한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필리핀인의 54%가 민주주의를 선호하고 반면에 24%가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수치는 필리핀인의  정치적인 기호를 표시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경제, 구조, 극적인 사건들과 같은 필리핀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거의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나는 통계수치와 교과서를 뒤로 남긴 채, 바로 현대 필리핀 정치의 어지러운 세상으로 뛰어들고자 한다. 다음은 (내가 보기에) 필리핀이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통절한 "순간"들이다.

2001년 5월

“법은 부자들만을 위한 거라는 거 잘 알잖아.”

나는 출근길에 힌 삼륜자전거 운전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들었는데, 그들은 며칠 전 발생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2001년 1월 "People's Power Two"는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막대한 뇌물, 부패, 권력남용 관련 혐의로 권력에서 몰아냈다. 주류의 정서는 필리핀인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용감히 일어섰으며, 독재정권으로부터의 과도기 이후에 민주주의 성과가 이루어졌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빈민중의 빈민인 마닐라의 하층민은 이 사건에 대해 아주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에스트라다의 무절제함에 대한 (사람들의) 격분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그는 잘못할 수 없었다. “로빈 후드”의 이미지를 갖고 집권을 한 이 액션영화의 영웅인 에스테라다는 "그들의" 대통령이었다. 그동안 어떤 대통령도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스테라다는 적어도 그들을 기운나게 해 주었다. 그가 구속되자 수천 명의 지지자들은 에스트라다를 다시 집권시키기 위해서 그들식의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다. 많은 시위자들이 며칠 동안 주요 사거리를 장악했다. 그러나 넓은 지지가 없는 이러한 반봉기의 시도는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사람들이 구속된 5월 1일에 끝나고 말았다.

빈민들이 갖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중산층이 민주화를 주도할 때, 이것은 민중의 힘이라고 찬양받지만, 빈민들이 똑같이 행했을 때는 날뛰는 불량배들라고 불려진다. 필리핀 사회의 이러한 단절은 서글픈 현실로 남아있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서를 낭만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04년 5월

“ 마피아 정치가들과 투표조작에 관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멀리 있지 않아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한 외국 특파원이 선거취재에 관해 조언을 얻기 위해 우리 사무실에 왔다. 그녀는 이를 위해 소위 필리핀식 “황야의 서부”같은 멀리 떨어진 시골지역을 가야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도시로부터 멀리 갈 필요가 없다. 필리핀 선거는 "피의 스포츠" 혹은 "가족사업"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필리핀의 전형적인 정치가는 지역의 지주 가정 출신으로, 보디가드(이들은 종종 사병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다)들에 둘러싸여 있다. 긜고  형제, 자매, 부인, 자녀들과 같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시장, 주지사, 지방 의원 등 다양한 직책을 차지한다. 삼대에 걸쳐 서로 경쟁하는 소소의 혈족에 의해서 지배받는 지역들이 있다. 이들 정치가들은 지위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부를 이용해 지지자들을 사고 명예훼손자를 위협한다. 가족간의 분쟁과는 별도로, 폭력 역시 선거 사이사이에 다른 명예훼손자들을 침묵시키는 데 사용된다. 최근에는 정치가의 불법 사업과 부정을 폭로한 언론인들에 대한 암살이 놀랍도록 증가했다. 필리핀은 언론인에게는 콜롬비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위험한 나라이다.  

외부인에게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필피핀 정부가 선거와 관련한 폭력을 막기 위해 선거가 초읽기에 들어간 시기동안 총기와 주류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한다는 것이다. 필리핀인들이 총기를 소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시민들에게는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더이상 허락되지 않고 술을 파는 것도 금지된다. 극단적인 시기에 취해지는 극단적인 조치이다.


2004년 7월

“의회에서의 의석의 배분은 어떻게 됩니까? 각 정당이 얼마큼씩 의석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확실하게 모릅니다."라고 내가 대답했다.  

외국에서 온 정치학자 한 명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선거 결과에 대해 나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른 곳에서는) 일반적인 질문인 듯싶다. 하지만 필리핀의 정당시스템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문제가 많은 정당시스템들 중의 하나이다. 내가 설명을 하겠다.

후보자는 후보 등록을 할 때 소속정당을 기록할 것을 요구받기는 하지만, 모든 자리는 (의회에서의 정당 리스트를 제외하고는) 개인에 대한 직접투표로 채워진다. 투표자들은 투표를 할 때 투표용지에 전국수준 (대통령, 부통령, 상원)에서 지역수준(구, 주/시, 지자체)까지 40명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이것이 선거캠페인이 정당의 정책이 아닌 개인의 특성에 중심을 두게 되는 이유이다. 더구나 후보자는 정치적 후원자로부터의 지지를 통해 그들 스스로가 캠페인에 들어가는 기금을 모은다. 이렇게 정치가가 정당에 책임이 없기 때문에, 정책환경을 더욱 예견할 수 없게 만든다. 의원들은 정당의 정책/결정에 따라서 의안을 지지하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의회 내에서 소속정당을 바꾸는 것도 만연되어 있다. 모든 것은 본인이 선언을 하기만 하면 된다. 의회가 개원하면, 의원들은 전형적으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으로 바꾼는데, 이렇게 해서 이들은 후원 피라미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발안한 입법의제 또는 다른 국가 정치인의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댓가로, 의원들은 혜택을 받는다. 이것이 이렇다 할 정당과정이 없는 필리핀에서 정치가들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이다. 동맹은 매우 유동적이다. 한 정당 이상에 소속하는 것이 가능하기조차 하다! 사실,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료요 대통령도 세 정당에 가입해 있다!

위와 같은 간단한 서술로, 나는 빈민들의 압도적인 권한의 약화, 무법적인 “어두운 요소들”의 강력한 출현, 정치적 시스템의 많은 제도적인 결함 등과 같이 필리핀이 직면한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도전의 일부를 보여주려 했다. 필리핀인들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든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필리핀인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신과 실제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변화를 막는 끔찍한 장애가 있다. “좋은 공치” 정신에 기반한 “근대적” 정부를 향한 요구와, 아직도 주류를 차지하는 후원제도 중심의 정치문화라는 “오래된 스타일”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 긴장이 그것이다.

그래서 필리핀은 한 정치적 위기에서 다음 단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1986년 민주적 전환이 일어난 이후, 쿠테타를 일으키겠다는 군부와 야당의 위협은 필리핀에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서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은 활발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 이 활동적인 비정부 섹터는 사회복지와 공동체 발전만을 단순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역시 굉장히 정치적이다.

현재 필리핀에서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 지속되는 동시에, 다른 활동가들은 대안적인 민주 정치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는 농지개혁 지역사회에서, 도시빈민 정착지에서, 필리핀 정치의 로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선전하고 입법화를 위해 활동하고, 그들은 선동하고 교육하며, 그들은 시위를 하고 대안적 정당을 조직한다. 이렇게 사회저변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서 투쟁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그리고 의미있는 정치개혁을 위한 동력을 쌓고 있는 주창자들도 있다. “민주주의에 기회를 주자”는 것이 이들의 집단적인 합창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일반인들이 공공기관을 신뢰할 수 없고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발전("모든이의 생존권이 보장돤  민주주의”)을 경험할 수 없는 한, 필리핀은 아직 민주적인 이상에 근접해 있지 않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필리핀은 민주주의를 힘들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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