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8-01-23 12:14:00, Hit : 5406
  "이번에 나 찍어주면 땅뙈기 주지"

      "이번에 나 찍어주면 땅뙈기 주지"
   바라나시 - 독립 61년, 무사하르 달리트는 땅을 얻을 수 있을까

드디어 토지를 측량하러 왔습니다. 무사하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 어떻게 토지를 측량하는지 살펴봅니다. 아네이 마을에 연못을 중심으로 있는 빈 터 가운데 무사하르 공동체의 뒤편에 있는 땅을 무사하르 사람들에게 분배해주기로 했습니다. 지방의회의 세무 및 마을 발전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두 명의 공무원이 찾아와 무사하르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측량합니다.

말이 바뀌었습니다. 공동체 바로 뒤편에 있는 땅은 마을의 다른 카스트, 달리트보다 높은 카스트 공동체에게 분배해주고, 달리트인 무사하르들에게 마을 다른 편에 있는 땅을 나눠주겠다고 합니다.

무사하르 공동체에서 동네 어른에 속하는 소마르씨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높은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좀 더 좋은 땅을 얻기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을 준 것이고, 줄 거 하나 없는 무사하르들은 그들이 주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엔 거부했습니다. 처음에 분배해주기로 한 땅이 아니면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토지 분배는 당분간 무산됐습니다.

   '천한' 달리트에겐 주어져선 안 될 땅

언제부터 아네이 마을에 무사하르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거의 일곱 세대째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렸을 땐 지금보다 땅이 조금 더 넓었습니다. 벽돌집 하나 없이 초라한 진흙집이 전부였고 가구 수도 훨씬 적어, 살고 있는 땅에 농사를 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상층카스트인 브라만이나 타쿠르(상층카스트인 크샤트리아에 속하는 자티로 아네이 마을에 많이 살고 있다)들은 무사하르들이 그들만의 농지를 갖는 것을 방해해왔습니다.

무사하르들이 자신들의 농지를 갖는다는 것은 '천한' 달리트들에겐 주어져선 안 될 권리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상층카스트를 위한 값싼 농업노동력을 구하기도 어려워질 테니까요.

왜 달리트들에게는 땅이 없나요? 왜 상층카스트들은 땅을 가지고 있나요? 오랜 세대에 걸쳐 상층카스트들은 땅을 물려받아 왔습니다. 달리트들은 그들의 땅에서 오랫동안 소작농이나 농업노동자의 형태로 일했습니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는 1950년대 초반부터 토지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땅이 없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농촌 빈곤을 감소시키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습니다.  

인도의 농촌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약 60%는 1헥타르 이하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고(1헥타르는 3000평인데 한국 농촌에서 3000평은 15마지기로 상당한 양의 쌀을 생산해내지만 전체 대지 규모, 토지 비옥도, 시설,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인도 사회의 3000평을 한국의 3000평과 같은 시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10헥타르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사람은 전체 농업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농업 종사자의 약 40%는 토지가 전혀 혹은 거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농지는 마을의 상층카스트들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그 결과 상층카스트들이 땅을 지배하고 있으며 농촌에서 농지를 소유한 달리트들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21세기 인도는 IT산업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최근 경제성장률은 연 8%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70%가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 중 65%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절대 다수의 빈곤층은 농촌 마을에 집중돼 있습니다. 농촌의 달리트들은 땅이 없는 농업노동자들로 오랫동안 땅을 점유해온 상층카스트들의 농지에 빌붙어 살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선되기 전엔 꼭 주겠다던 농지, 당선되면 나 몰라라

무사하르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구라후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열네댓 살 때부터 상층카스트의 농지에서 일했습니다. 브라만이나 타쿠르는 일한 대가로 구라후씨에게 현금 혹은 수확량의 4분의 1을 주었는데, 어떤 것을 줄지는 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그들이 일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 구라후씨는 다른 상층카스트의 농지로 옮기면서 일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하루 두 끼만 겨우 먹고 살고 있고 그나마 밥에다 소금을 뿌려 먹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런 먹을거리에 익숙해진지 오랩니다. 배고픔에 길들여진 것입니다.

지금 아들 셋에 딸 둘인데, 큰아들 뒤로 아들 하나가 태어난 지 1주일 뒤에 사망했습니다. 어느 달리트 가족을 만나건 반드시 묻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죽은 아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최소한 아이 하나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뜻한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한 구라후씨는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더 이상 마을지도자(이장)에게 속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마을에서 지금까지 일한 모든 마을지도자에게 농지를 달라고 해왔지요. 18세 이상이면 마을지도자를 뽑을 선거권이 주어져요.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 모든 마을지도자들은 자기를 뽑아주면 농지를 나눠주겠다고 하나같이 약속했어요. 그렇지만 당선되고 나서 그 약속을 지킨 이장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지요."

"나도 현 이장에게 투표를 했었지요. 지난 선거에 두 명의 후보자가 있었어요. 한 명은 이전 이장인 아자이 수클라였고, 다른 한 명은 지금 이장인 호실라 싱이었어요. 나는 물론 모든 무사하르들이 지금 이장인 호실라 싱에게 투표했어요. 농지를 꼭 분배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된 게 없어요. 다시는 호실라 싱에게 투표하지 않을 겁니다. 다음 선거에 똑똑하고 교육받은 무사하르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전에 지역정부에 농사지을 땅을 달라고 요구했었어요. 그 뒤에 두 명의 공무원이 왔는데 토지만 측량하고 갔어요. 농지를 달라고 다시 요구했지만 땅을 바로 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아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 훨씬 이전 세대 모두 농지가 없었지요. 그래서 우리도 농지가 없어요. 우리에게 농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정부기관에서는 아직까지 농지를 분배해주지 않고 있어요."

소작농도 아니고 농업노동자도 아닌 것 같은 이들은 누구?

아네이 마을에서 농업노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상층카스트들이 농지를 일정 면적으로 달리트들에게 분할한 뒤 1년 산출량에서 4분의 1을 해당 달리트 가족에게 노동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입니다.

무사하르 공동체의 문나네 가족과 마지누네 가족은 브라만인 캄라카르 수클라네 논에서 이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4분의 1이라는 비율은 고정이었고, 이들은 농지주인이 하라는 대로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할 뿐입니다. 경작권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몬순이 끝난 뒤 11월까지 쌀이 부지런히 자라면 벼를 수확하기 시작하며, 보리를 심기 전에 감자나 기타 작물을 심기도 합니다. 모든 농사일은 논 주인이 결정합니다.

또 다른 방식은 농민이 모종, 씨앗, 비료 등 모든 농사비용의 절반을 부담하면서 농사를 지은 뒤 수확량의 절반을 노동의 대가로 지불받는 겁니다. 물론 논 주인들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농업이 인도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이기에, 벼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풍부한 물을 위한 관개시설이나 비료 등이 부족해 날씨나 자연환경이 생산량을 크게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기 때문입니다.

마지누의 큰딸인 기타는 마을 근처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수확기에는 농사일도 돕고 어린 여동생 링카도 돌봐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가 아침 일찍 논에 나가서 일하면 링카를 등에 업고 밥을 짓습니다. 아침 겸 점심인 한 끼 식사라고 해봐야 밥과 소금이 전부이지만, 거르지 않고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게 다행입니다.

기타는 링카를 업고 가족들이 일하는 곳으로 밥을 들고 갑니다. 할아버지랑 아빠가 먼저, 따로 밥을 먹고 기타가 가장 나중입니다. 아이보단 어른 먼저, 여자보단 남자 먼저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자아이인 기타가 뭐든 제일 마지막 순서가 됩니다. 해가 질 때까지 기타도 논에서 벼를 베어야 합니다.



새로운 땅, 새로운 희망

지가르의 영양실조와 배고픔이, 지가르 엄마의 고통이 무사하르 공동체의 삶을 조금씩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참조). 지가르를 통해 무사하르 사람들의 배고픔과 고통이 언론에 보도되고 국제사회에도 마을 이야기가 알려진 후 지역정부의 관료들과 의사, 마을 이장 등이 대거 무사하르 사람들을 찾아와 이야기도 들어보고 이것저것 해주겠다는 약속도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장들이 주겠다던 농지도 이젠 '정말로' 분배해주겠다고 합니다. 내일 당장 정부 관료가 와서 땅을 제대로 측량하고 원래 주겠다던 무사하르 공동체 뒤편의 땅을 분배해주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상층카스트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우리가 농지를 갖게 된다면 우리 삶은 더 좋아질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땅을 갖게 되면, 내년에 그 땅에서 새로운 걸 보게 될 겁니다."

지가르의 할아버지 랄라이씨의 얼굴에 보이는 희망입니다. 인도가 독립한 지 60여 년이 지나고 나서도 무사하르 달리트들이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던 땅, 그 땅을 지금쯤 그들은 갖게 됐을까요. 지가르가 좀 더 자라 학교에 다니게 될 때쯤 그 땅이 점점 비옥해져서 무사하르 사람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을까요.

달리트들이 자신들을 위한 식량을 자신들의 땅에서 충분히 생산해서 상층카스트의 농지에 빌붙지 않고, 기타가 낫을 들고 논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출처 : 프레시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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