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9-09-07 11:03:12, Hit : 3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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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찍지마! 당장 삭제하시오"



(상)금요예배 하루 전 이드 카흐 모스크 광장으로 들어서는 중국 무장경찰 부대원들. 카슈가르 도심 곳곳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하) 최근 철거되어 공터로 바뀐 카슈가르의 위구르인 전통 가옥군. 중국정부가 개발의 미명 아래 신장을 통치하고, 위구르인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한 신장에 안정된 평화가 정착되긴 힘들다.

      "경찰 찍지 마! 당장 삭제하시오"
  중국 위구르 유혈사건 두 달... 지금도 '계엄상황'  
  우룸치사건, 무장경찰, 인터넷 감시, 위구르인

"저는 멀리서 온 외국 관광객입니다. 거리 내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를 구경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래도 안 됩니까?"

"거리 안에 살고 신분이 확실한 위구르인의 초대를 받은 경우에만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떠나라."

지난 1일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룸치(烏魯木齊) 남부의 민족거리(民街). 우룸치 최대 위구르인 거주지인 이곳은 다양한 기념품, 일상용품, 먹을거리 등을 파는 명소였다. 그러나 평소 위구르 향취를 느끼려는 관광객으로 떠들썩하던 이 거리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리 입구부터 여러 대의 공안 차량과 중무장한 무장경찰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 민족거리로 들어가려는 모든 출입자는 철저한 신분 검사와 소지품 검색을 당해야 한다.

민족거리 내에 연고자가 없는 외지인은 진입조차 금지 당했다. 위 대화는 기자와 공안경찰의 대화내용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민족거리를 찾는 한족 관광객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위구르인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이고 민족거리는 테러 위험 장소였다. 한 주 앞선 8월 28일, 신장자치구 서남쪽 끝 카슈가르(喀什)의 중심지 이드 카흐 모스크 광장은 더 심했다. 이날 이드 카흐 광장에는 도시 곳곳에서 위구르인들이 몰려들었다. 이슬람 주일을 맞아 금요예배를 드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5000명 가까이 찾는 이드 카흐 금요예배에서 위구르인들을 맞이한 것은 중국 군대였다. 장갑차와 기관총을 앞세운 1000여 명의 무장경찰 부대원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침부터 수십 대의 트럭에 분승한 군인들이 이드 카흐 전역을 에워싼 채 광장으로 들어오는 위구르인들을 매섭게 감시했다. 이드 카흐에는 군대뿐 아니라 정복 경찰, 사복경찰, 도시집법 등 온통 공안 기관원들 천지였다.

기자가 카메라 초점을 이들에게 돌리자, 어디선가 경찰 세 명이 달려와 제지했다. "군인과 경찰의 사진을 찍거나 영상 촬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가벼운 신문과 찍은 사진을 삭제토록 요구받았다. 이 날 이드 카흐를 찾은 위구르인들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우룸치 유혈사건 두 달 후... '계엄'은 해제되지 않았다

오는 5일로 우룸치 유혈사건이 발생한 지 딱 두 달이 된다. 우룸치 사건은 금세기 중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유혈사태이자 민족 분규였다. 중국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족 137명과 위구르족 46명, 후이(回)족 1명 등 184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1680명에 달한다(이중 중상자 220명). 유혈사태로 상점 291채와 가옥 29채가 전소됐고, 633채의 주택과 상점이 파손됐다.

기자는 우룸치 사건 발생 한 주 전에 시장을 다녀왔다. 그러나 8월말부터 다시 찾은 우룸치, 투르판, 카슈가르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나를 맞이했다. 방문 시기도 절묘했다. 이슬람 최대의 생활의식인 라마단이 갓 시작된 데다,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우룸치를 방문 중이었다. 또 사회주의 중국 건국 60주년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런 복잡한 정세를 보여주듯, 신장 전역은 계엄 통치나 다를 바 없는 상황 아래에 극도로 긴장됐다. 그 조짐은 우룸치에 도착해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먼저 휴대폰의 문자서비스가 되질 않았다.

호텔에서는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 두어 개를 제외하곤, 외부로의 인터넷 접속이 금지됐다. 호텔뿐만이 아니었다. 일반 가정집에서조차 인터넷은 철저히 봉쇄되었다. 현지의 한 고위 공무원이 전한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신장 내 모든 전화와 휴대폰의 통화가 정부 당국에 의해 도청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통제와 감시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장 대도시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정복 경찰과 사복 공무원이 깔려있었다. 과거 유혈시위가 발생한 우룸치, 카슈가르, 호탄(和田), 굴자(伊犁) 등지가 가장 삼엄했다.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회사, 호텔, 상점, 식당조차 출입 시 가방을 검색당해야만 했다.

  인터넷 접속 금지, 전화와 휴대전화 통화 도감청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위구르인에게서도 신장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일부 위구르인들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마저 꺼렸다. 불과 두 달 전, 흉금을 터놓고 신장의 현실과 민족의 앞날을 토로했던 그들이었다. 어렵게 만난 우룸치의 한 위구르 지식인은 "요즘 위구르인들은 눈은 있되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입은 있되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우룸치에는 기관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완장을 차고 위구르인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우룸치와 카슈가르에 배치된 무장경찰은 기관총에 실탄까지 장착한 상태였다.

중국 정부는 "또 다른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위구르인들의 망동을 예방하기 위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신장 내 위구르인들은 중국 정부와 한족에게 통치의 대상이 아닌 감시대상인 듯 보였다. 라마단을 맞은 위구르인들에게 신장의 현실은 더욱 괴롭다. 대다수 위구르인들은 독실한 무슬림으로 라마단 기간 중 하루에 5번 예배를 드린다. 일부는 직접 모스크를 찾아 경건하고 장중하게 예배를 올린다. 이슬람교도는 라마단에 단식을 하여 평소 종교적 수행을 게을리 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다.

하지만 지금 신장에는 중국 헌법에 적시된 종교의 자유마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일부 모스크는 금요예배 시간마저 정부 당국에 의해 폐쇄 당했다. 개방된 모스크도 주재 중인 경찰에게 확인된 사람만 출입이 허락되고 있다. 평소 기관원의 눈을 피해 금요예배에 참가하던 위구르 청소년들은 요즘은 모스크 진입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위구르 사회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청소년의 모스크 출입은 금지하고 있다.

  위구르인들 "눈은 있되 보지 못하고, 입은 있되 말 못하고..."

도시 간 이동시에도 검문검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장 내 모든 공항에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철저한 가방 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출발 10~20분 전에야 간신히 탑승 수속을 마칠 정도. 기자 또한 고속버스를 타고 우룸치에서 투르판(吐鲁番)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엄격한 신분증 검사를 두 차례 받아야 했다. 버스에서 만난 위구르인은 "아직 잡히지 않은 우룸치 유혈사건 관련자를 잡기 위해서"라며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위구르인은 강제로 하차당해 경찰서로 끌려간다"고 전했다.

이미 유명 관광지인 투르판을 찾는 여행객은 예년에 비해 70% 이상 줄어든 상태다. 쑤궁타(蘇公塔)에서 만난 한족 가이드 천량은 "우룸치 사건의 여파로 투르판 관광업은 고사 직전"이라며 "올해 8월 26일 국제 포도축제도 예년보다 관람객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분위기가 썰렁했다"고 전했다. 카슈가르 중시야(中西亞) 바자르에서 만난 악기상 이맘도 "테러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작년보다도 관광객이 줄었다"며 "평균 매출도 예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골 깊은 민족 갈등... 무장군인과 통제가 답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신장 내에서의 기본 일상생활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카슈가르를 대표하는 일요 바자르는 지금도 어김없이 열리고 있다. 도심과 날짜가 다른 농촌 지역의 바자르도 마찬가지다. 카슈가르 교외 바이슈카라(佰什克)에서 만난 야르무한(42)은 "무장경찰이 포진한 중시야 바자르를 가지 않고 동네 바자르를 찾는 것 외에는 생활에서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도 우룸치 유혈사건을 치유하기 위해 사망자 184명 모두에게 1인당 21만 위안(한화 약 3800만 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부상자 치료에도 주력하고 있다. 우룸치를 찾은 후 주석은 "소수민족의 경제적 발전과 생활개선을 위해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골이 깊어진 한족과 위구르인 간의 적대감은 치유되지 못했다. 우룸치 택시기사 양한타오(44)는 "위구르인들은 야만스런 테러리스트"라며 "그들은 소수민족이란 온갖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 불평만 늘어놓는 사회 불안분자"라고 주장했다.

정치경제 권력과 절대다수의 인구를 지닌 중국정부와 한족이 오랜 차별과 통제로 한이 깊은 위구르인들을 보듬어 주지 않는 한 신장의 안정은 요원해 보였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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