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9-05-08 13:31:04, Hit : 3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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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 백주의 납치



(상) » ‘타밀엘람! 뿌리 깊은 차별이 부른 저항.’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중심가 대로변에 설치된 간이 검문소. 콜롬보 체류 허가증을 소지하지 않은 타밀인들은 검문에 걸리면 붙잡혀 한동안 구금되기 일쑤다.

(하)» 콜롬보에서 10년째 살고 있다는 타밀족 여성 슈린(가명·왼쪽)의 남편은 2007년 1월 ‘흰색 밴’을 탄 사내들에게 납치된 뒤 이제껏 소식이 없다고 했다. 타밀족 출신인 마노 가네샨 의원은 ‘납치감시위원회’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스리랑카, 백주의 납치
  검문소 즐비한 시내를 ‘자유’를 만끽하며 이동하는 납치범들…
  타밀인을 한 명씩 제거하는 ‘체계적인 실종’

“계속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말을 듣지 않으면 정말 죽일지도 몰라….”
20대 중반의 청년이 울먹인다. 온몸에 매 맞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락슈만(가명)은 분명 ‘행운아’다. 납치된 뒤 ‘실종’되거나 주검으로 발견된 다른 이들과 달리 락슈만의 납치범들은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며칠 안에 떠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란 경고와 함께.

  ‘납치의 대명사’ 흰색 밴에 태워져

락슈만은 2005년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 반도를 떠나 수도 콜롬보로 이주해온 타밀족 청년이다. 총성이 끊이지 않는 고향을 떠나올 때 그가 꿈꾼 콜롬보는 ‘안전한 곳’이었다. 작은 상점의 점원으로 일자리도 얻었다. 타밀족 정당이 운영하는 사업체 중 하나다. 모든 게 뒤죽박죽 꼬이기 시작한 건 2008년 4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타밀족 청년들을 줄줄이 붙잡아간 뒤부터다. 락슈만도 그렇게 붙들려가, 구치소에서 두 달여를 보내야 했다. 그는 “아무런 혐의가 없음에도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너는 우리 손아귀에 있다. 지켜보겠다.” 경찰은 락슈만을 풀어주며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뒤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자프나 출신이 왜 콜롬보에 있는가? 당장 떠나지 않으면 벌을 가하겠다.” 스리랑카 다수족인 신할리즈를 상징하는 사자의 얼굴 안에 소수 타밀족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얼굴이 담긴 로고가 찍혀 있는 편지에는 발신자가 ‘배신자 제거 담당’이라고 쓰여 있었다. 2008년 말 두 번째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불안했지만, 떠날 순 없었다. 그리고 올 2월 말 그예 일이 터졌다.

“9시께 저녁을 먹으려 집을 나섰는데, 특전사(STF) 군인들이 부르더라. 다가갔더니 순식간에 입과 눈을 틀어막고 차 안으로 집어넣고는 무작정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대여섯 시간을 내리 달린 뒤 다른 차량으로 옮겨탔다. 그러고도 다시 대여섯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락슈만은 “차에서 내려 만난 사람들은 신할리즈 억양이 전혀 없이 타밀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며 “(정부 쪽에 붙은) 타밀족으로 구성된 타밀 민병대가 분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목걸이 등 갖고 있던 물건을 모두 내주며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상관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뭇매를 맞고 갖은 협박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 하루 동안의 ‘납치여행’은 막을 내렸다. 납치범들은 그를 콜롬보 외곽에 내던지고는 유유히 차를 몰고 사라졌다. 납치를 당하는 순간부터 풀려날 때까지 그가 타고 다닌 ‘흰색 밴’은 단 한 차례도 검문에 걸리지 않았단다. 스리랑카에서 납치의 대명사로 통하는 ‘흰색 밴’은 검문소가 즐비한 콜롬보 시내는 물론 스리랑카 전역에서 멈추지 않고 ‘이동의 자유’를 만끽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2006년 한 해 줄잡아 1천 명 실종

“타밀족을 한 명씩 제거해나가는 체계적인 납치다. 보다시피 검문소가 넘쳐나지만, 납치범은 단 1명도 잡아낸 적이 없다. 납치범과 정권 간에 모종의 협조관계가 있다는 방증이다.” 타밀족 출신인 마노 가네샨 의원(무소속)은 거침없이 말했다. 지난 2006년 ‘납치 감시 위원회’를 발족시킨 가네샨 의원은 “내게도 툭하면 협박 전화가 걸려온다”며 “너무 많이 전화를 받아 이젠 아예 무시하고 산다”고 말했다. 자프나를 지역구로 활동하면서 위원회를 꾸리는 데 힘을 보탰던 그의 동료 타밀 의원 나다라자 바리라쥬는 위원회 발족 두 달여 만에 암살을 당했단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스리랑카에서 ‘실종’된 인구는 1500여 명에 이른다. 2006년 한 해에만 줄잡아 1천 명이 실종됐다. 하지만 가네샨 의원은 “실제 납치·실종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5년 라자팍세 대통령 취임을 전후한 때부터 최근까지 콜롬보에서만 400여 명, 스리랑카 전역에서 4천여 명이 실종됐다”며 “극소수 무슬림을 뺀 피해자 절대다수는 타밀인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타밀 청년 삼판탄(가명)의 경우를 보자. 말레이시아에서 3개월간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말레이시아에서의 재취업을 희망하며 콜롬보로 왔지만 지금은 실종된 지 1년이 됐다. 2008년 초 콜롬보 중심가 페타 구역 검문소에서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위해 (콜롬보에) 체류하는 중”이라고 답한 그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행됐다. 가족들이 여권을 포함한 온갖 문서들을 제출한 지 석 달이 지나서야 풀려났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2008년 5월10일 오후 6시께다. 나와 통화한 직후 형이 사라졌다.” 20대 초반인 삼판탄의 동생 이헤(가명)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형은 여권을 돌려달라며 경찰서를 두 번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결국 그날 새 여권을 신청하고 페타 구역 카티레산 거리를 걷던 중 납치됐다. ‘흰색 밴’을 탄 납치범들은 자신들이 ‘범죄수사국’(CID) 요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헤는 삼판탄이 범죄수사국에 갇혀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납치된 다음날 집으로 찾아와 삼판탄의 소지품을 챙겨간 이들도 “범죄수사국에서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헤는 “이젠 형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문서나 자료가 단 1장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범죄수사국에 찾아가 삼판탄의 행적에 대해 물어보기는 했느냐”는 말에 그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타밀 청년이다. 거기가 어디라고 내 발로 찾아갈 수 있나!”

콜롬보에 사는 타밀인들은 잠재적 범죄자이자 테러범으로 여겨진다. 몇십 년을 그곳에서 살아온 이들도, 잠깐 다니러 온 이들도 마찬가지다. 콜롬보에 들어오는 순간 예외 없이 경찰에 신상기록과 은행 잔고 증명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런 뒤에야 콜롬보 체류의 목적과 기간이 명시된 또 다른 신분증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불심검문에 걸렸을 때 이 ‘신분증’이 없으면 여지없이 붙잡혀간다.

  20년 가까이 이방인 아닌 이방인

“우리를 이 나라의 동등한 국민으로 본다면 외국인 다루듯 이렇게 할 수가 있나? 이런 식이니까 우리가 목놓아 ‘타밀엘람’(타밀인의 조국)을 외치는 게 아닌가!” 티샤(37·가명)가 목소리를 높였다. 1990년대 초반 스리랑카 정부군이 마을을 군기지로 징발하면서 쫓기듯 콜롬보로 이주했다는 그는 벌써 20년 가까이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스리랑카 내전의 뿌리는 타밀인에 대한 ‘차별’이다.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반군이 정부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궤멸 직전까지 몰린 지금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반군이 사라진대도 총성이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출처 : 시사in  콜롬보(스리랑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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