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9-05-18 13:05:13, Hit : 3743
 교전은 끝났지만 전쟁은 안 끝났다

     교전은 끝났지만 전쟁은 안 끝났다  
  스리랑카는 30년째 ‘세 가지 전쟁’을 한다. 첫째는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 둘째는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정부군과 반군의 학살, 셋째는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전쟁이다. 이 중 첫 번째 전쟁만 종결되고 있다.  
  
   스리랑카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룩산 페르난도

“그런 식의 접근이 항상 일을 망쳐왔다.” 어찌되었건 스리랑카의 내전 상황이 지금 종식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룩산 페르난도(36)의 대답은 매서웠다. 그는 스리랑카의 저명한 국제 인권활동가이다. 그는 일찍이 스리랑카에서 학생운동을 한 후 ‘포럼 아시아’라는 아시아의 인권단체 연합에서 3년간 인권활동가들의 안전 문제를 담당했다. 지금은 스리랑카 인권단체인 ‘로 앤드 소사이어티 트러스트(Law& Society Trust)’에서 평화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담당한다. 오랫동안 정부로부터 협박과 위협을 받아왔지만 굴하지 않고 스리랑카의 인권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사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서 올해 ‘제12회 지학순 정의평화상’을 받게 되어 한국에 왔다.

그가 보기에 지금 스리랑카는 30년을 끌어온 내전이 끝나는 상황이 아니다. “타밀 반군은 쓰러져도 이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지금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확산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인권과 피해자의 시각’에서 전쟁의 복잡한 측면을 바라보라고 단호하게 주문했다.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전쟁이 끝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잘 살펴봐야 계속 진행 중인 전쟁이 무엇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끝나고 있는 것은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교전일 뿐이다. 이 교전 뒤편에서 스리랑카는 지금 최소한 세 가지 전쟁을 동시에 겪고 있다.”

그 세 가지 전쟁은 첫째,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교전, 둘째,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양쪽 모두의 전쟁, 마지막으로 비판적 목소리와 민주주의를 향한 전쟁이다. 이 중에서 확실히 첫 번째 전쟁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군의 파상 공세에 밀려 반군은 패퇴를 거듭해 마침내 스리랑카 섬의 끄트머리에 있는 사방 12㎞ 이내의 좁은 지역에 몰려 있다. 대변인인 벨라유담 디야니디를 포함해 반군 3000여 명이 4월22일 정부군에 투항하는 등 반군 지도부가 와해되는 형편이다. 궤멸 위기에 직면한 반군은 4월28일 ‘인도주의 위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군에 일방적 휴전을 선포했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승리를 눈앞에 둔 정부군은 영국과 프랑스 등이 중재한 휴전안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교전 뒤편에서 가난을 만나다

“이 전쟁은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끝나는 것은 교전일 뿐이다. 교전 뒤편에서 죽거나 남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봐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난을 만난다.” 정부군과 반군 모두 가난한 청년들이다. 그에 따르면 정부군에 입대한 사람 다수는 먹고살 길이 없어 밥이라도 먹기 위해 군복을 입은 가난한 청년이다. 반군의 경우에도 강제로 징집당한 어린 청년이 많다.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미국 역시 군대에 입대하면 시민권 혜택을 준다는 식으로 남미에서 모병한다. 가난이 청년을 군대로 밀어넣고 이들이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는 셈이다. “이들에게 이번 전쟁이 끝난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가난은 이들을 계속해서 군대로 밀어넣을 것이고, 이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건 계속 전쟁을 수행해야 하니까.”

두 번째 전쟁은 정부군이건 반군이건 둘 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전쟁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민간인이다. 한편에서는 그들을 방패로 삼는 반군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탈출하는 그들을 향해 폭격하는 정부군이 있다. 10만여 명이 탈출했지만 아직도 반군과 함께 민간인 5만여 명이 갇혀 있다고 추정된다. “이들은 정부군의 고립작전 탓에 아사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인도주의 위기’를 스리랑카 정부도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적십자사를 비롯한 국제 인도주의 기구의 전쟁 지역 접근은 용이하지 않다.

정부군이 지정한 사격 금지 구역도 전혀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부군은 이들을 향해서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임이 들통났다. 유엔은 내부 보고서에서 이 지역에 갇힌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부군이 공습해 파괴된 건물의 인공위성 사진을 첨부했다. 5월2일에는 이 지역에 있는 임시 병원에 포탄이 떨어져서 64명이 죽었다. 올해에만 사망한 민간인이 6500명에 달한다.

“탈출한다고 해도 그들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스리랑카 정부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사람 전체를 잠재 테러리스트 혹은 범죄자 취급을 하며 모두 수용소에 구금한다. 그중에 누가 반군이고 누가 반군이 아닌지를 가려내 스리랑카 전체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범죄자는 누구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죄를 저지른 개인이어야 한다. 인종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가장 반근대적인 범죄이다.”

법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사회는 철저하게 개인에 기초해 개인의 행위를 처벌할 뿐이지 집단 전체를 범죄화하거나 잠정적으로 범죄자로 최급할 수 없다. 그런데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스리랑카에서는 타밀족 그 자체가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다. 전쟁 지역에서 도망쳐온 사람뿐만이 아니다. 콜롬보나 다른 지역에 사는 타밀인들 역시 언제든지 체포되고 구금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마지막 전쟁은 사회에 비판적인 언론과 비판하는 사람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전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압살한다.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자들을 언제든 체포할 수 있다. “한 언론인은 체포되어 1년이 넘게 구금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를 기소할 죄목을 발견하지 못하자 뜬금없이 3년 전에 쓴 기사가 스리랑카의 종족 간 화해를 그르쳤다는 혐의를 씌운 적도 있다.” 탄압은 성직자·언론인·국회의원·인권활동가 등을 가리지 않고 전개된다. “전쟁 지역에서 정부 측의 거듭된 위협을 거부하고 남아서 민간인을 돕던 가톨릭 사제인 내 친구가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2006년 이후 실종된 언론인이 14명이나 된다.

  중국과 인도의 ‘스리랑카 전쟁’도 터져

여기에 룩산도 예상하지 못한 다른 한 전쟁이 최근 끼어들었다. 스리랑카 내전을 둘러싼 중국과 인도 사이의 전쟁이다. 최근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인도양에서 조용히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한 중국이 스리랑카 정부군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10억 달러에 이르는 원조와 아울러, 전투기와 레이더 등을 스리랑카 정부군에 판매해 전투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이것이 스리랑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도를 압박했다. 가뜩이나 네팔에서 마오이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중국과의 협력이 강화돼 인도의 심기가 불편하던 터였다. 마침내 인도 외무부 장관이 ‘중국은 격랑의 바다에서 낚시질을 한다’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국제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분쟁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룩산은 다시 한번 타밀 반군은 쓰러져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을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정부군과 타밀타이거 반군 사이의 기술적 교전의 문제라고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타밀타이거는 비록 그 규모가 가장 크기는 했지만 반대 세력 중 하나일 뿐이다. 정부의 탄압과 타이거의 궤멸은 오히려 다른 목소리를 가진 세력에게 세를 넓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 집단 전체가 부당하게 범죄자 취급을 받는 억압과 착취가 있는 한 저항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스리랑카 정부는 그저 교전을 단 하나 끝냈을 뿐이다.”

출처: 시사in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 동아시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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