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4-23 10:56:50, Hit : 5076
 저주받을 것은 무기일까? 사람일까?


  저주받을 것은 무기일까 사람일까
  생태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꾼다 - 세계의 여성활동가들 ⑮
  사피아 아마잔-Safia Ahmed-jan

태초에 아름답게 창조된 천지에서 처음으로 피를 쏟아낸 살인사건은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을 ‘쳐’ 죽인 가인에 의해 일어났다.그땐 총도 없었고 칼도 없었고 조끼 속에 장착하는 자살폭탄도 없었지만 분노하는 마음만으로 가인은 아벨을 죽여 버릴 수 있었다.

겉으로는 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실은 첨단의 ‘정치’를 펴는 사람들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데에 가장 먼저 도가 트게 마련인데, 이 기술은 이후 혹시나 그들이 권력을 잃어버리고 만 때가 되더라도 결코 녹슬지 않는다. 그 돌맹이가, 아니 칼이, 아니 총이, 탈레반의 폭정이 남긴 흔적을 쓸어내려던 아프간 여성운동가 사피아 아마 잔의 목숨을 그렇게도 간단히 빼앗아가고 말았다. (2006.9)

기아, 감금, 정신적 고문, 공공연한 여성살해...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여성에 대한 억압이 직접적이고 악랄하게 자행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아프가니스탄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의 사정은 전혀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2001년, 미군이 빈 라덴을 잡겠다고 아프간 전 국토에 각종 신무기를 쏟아부으면서 동시에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고, 우연과도 같이 탈레반 집권기에 여성에 대해 자행된 엄청난 억압이 알려지면서 부시 미 대통령은 아프간 여성을 해방시키기라도 한 듯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탈레반 이전에는 소련의 침공에 맞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립투쟁을 하던 북부동맹이 있었고, 이후에는 다시 미국의 힘을 빌게 된 일부 북부동맹과 실패한 ‘민주’정부 아래 다시금 세력을 키워가는 탈레반 재건세력이 여전히 각축하고 있어 아프간 여성들의 상황은 결코 나아졌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이전에는 원래 교사였던 사피아 아마잔은 1997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여성에 대한 교육과 외부접촉을 전면 금지하자 지하에 숨어 계속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2001년, 새롭게 개발된 엄청난 폭탄들을 앞세워 들어온 미군에 의해 온 나라에 구멍이 뚫리면서 탈레반 정권은 축출되고, 대신 친미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아마잔은 남부 칸다하(Kandahar) 주 정부에 발탁되어 이후 5년간 여성국장으로 일해왔다. 그곳에서 아마잔이 펼친 주된 활동은 교육, 특히 여성에 대한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애초에 탈레반이 성장한 근거지였던 칸다하 주에서 그들을 강도높게 비판하며 여성을 위해 수많은 학교를 세우고 수많은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해온 그이가 정치살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았다. 근래 탈레반의 부활이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하면서 아마잔 본인도 신변의 위협을 염려해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06년 9월 25일 아침, 아마잔은 집을 나서다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총을 쏴댄 두 남자가 탈레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학교를 파괴하고 교사와 직원들을 살해하며 이슬람원리주의를 주장해 온 탈레반의 행동과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서구의 여러 인권단체와 정부인사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는 와중에 재기를 표명하는 탈레반의 목소리더 덩달아 커져가고, 그에 따른 여성들의 납치, 폭행, 살해 등의 피해는 유명인사건 일반인이건 가릴 것 없이 계속되고 있다.

“넥타이를 걸쳤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는 없어요. 전쟁광일 뿐인 그 자들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없는 거죠.” 이웃국가 파키스탄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해온 여성운동가 타미나 파리얄의 말처럼 아프간은 여전히 전쟁광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고 어떤 체제가 자리를 잡았던 간에 아프간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여성을 억압하거나 최소한 방치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닦아나갔다. 2001년 그 땅을 헤집고 들어가자마자 호들갑스럽게 여성 해방을 운운하던 미국과 영국마저도 지난 6년간 아프간 여성의 상황을 그닥 바꾸어두지 못했다. 아니 실은 엄청난 양의 집속탄 투하로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마저 꺾어놓은 그들의 입에서 여성해방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극도의 위선이라고 하겠지만. 이전에는 거리를 다니지 못하던 여성들이 거리에 나오고, 직장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변화를 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암울하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도 하루아침에 스파이로 몰려 납치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상황. 그런 상황이 염려되어 행동 하나하나에도 스스로를 옭죌 수밖에 없는 여성들. 대체 그들은 왜 여성을 표적으로 삼은 것인지, 왜 그들 신의 뜻은 인류의 절반을 그토록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억압하라 명하는 것인지. 이해관계에 따라 교묘히 그 상황을 이용하는 강대국들이 내세우는 신은 왜 또 그들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지.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고 김선일씨를 잃고, 지금 상승세를 탄 탈레반의 자살폭탄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아프간에서 고 윤장호 하사를 잃은 한국의 ‘신’은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은 잘 되어갈 것이라고, 그 땅의 사람들도 나중엔 감사할 것이라고, 그것이 국익을 위한 길이라고...

그 옛날 동생 아벨을 죽이고서도 자신의 목숨을 염려하는 가인에게 면죄의 표식을 주었던 이스라엘의 신처럼 오늘날 천지의 수많은 신들은 이렇듯 각자 다른 메시지로 자신의 백성들을 다스릴 뿐, 그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신들이 내려준 최신형 무기의 강렬한 폭음 사이로 조용히 묻혀간다. 스러져간 사피아 아마잔의 영혼에 안식을. 그보다 이름없이 희생당한 더 많은 여성들의 영혼에 안식을. 그리고 날때부터 온몸에 전쟁의 상흔을 새기고, 자라면서는 억압의 상흔을 덧대이다 이름없이 사라져갈 위험에 처한 어린 아프간 여성들의 앞날에 부디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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