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9-03-11 15:31:10, Hit : 3467
 미얀마 유감(遺憾)

      미얀마 유감(遺憾)

지난 2월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간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나라 미얀마(버마)를 여행했다. 12년 전 처음 여행한 이래 네 번째 방문이었는데, 전문가도 아닌 사람으로서 동남아에서 가장 폐쇄적인 이 나라를 각별히 자주 찾은 셈이다.  이번 여행은 누구누구라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한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 특히 각별한 여행이었다.  이들로부터 들은 미얀마에 대한 평가와 판단도 그렇고 한국인들이 쓴 여행안내 책자와 인터넷 상에 떠다니는 젊은이의 여행기도 비슷한 미얀마관(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이에 대한 나의 소감과 유감을 전하려 한다.

미얀마는 명백한 군사독재국가이다.  미얀마의 군사독재는 현역 장성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군인이 직접 통치하는 독재’이다.  흔히들 독재라고 할 때 권위주의 체제를 지칭하지만, 미얀마 독재는 이보다 훨씬 통제와 억압의 정도가 강한 전체주의 체제에 가깝다.  국영밖에 없는 미얀마의 방송과 언론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짧은 방송 시간과 적은 신문 지면을 자랑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철저히 막고 있다.  외국이나 외국인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들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고 있으며 주요 관광지를 빼고는, 특히 소수민족 거주지역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여행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대학은 외국인 입학은 고사하고 출입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1988년 민주화 시위 이후에는 몇 년씩 휴교와 개교를 반복하며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한때 동남아 최고의 명문대학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랑군(Rangoon) 대학은 양곤 대학으로 개칭된 뒤 학생운동의 메카로 변하자 1996년부터는 학부과정을 아예 없애 버렸다. 과거 한국 대학가의 프락치와 유사한 정보기관의 “스파이”들은 캠퍼스뿐만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감시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정통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1990년 버마 역사상 처음 실시된 다당제 민주선거에서 친군부 정당인 국민단합당은 득표율 21.2%로 국회 의석 총 485석 중 10석을 회득하는 데 그쳐,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전국민주연맹의 59.9%와 392석과 비교도 안 되는 참패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슬로옥)라는 당시 최고기관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선거결과에 따른 정권이양을 거부하였다. 세계 선거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야당지도자 아웅산수찌는 1989년 이후 20년 중 14년을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고 그 와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군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이 되는 2010년 다시 총선을 실시하겠다며 작년 말 새로운 헌법을 제정, 선포하였지만, 그 의도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이미 가장 큰 10개의 소수민족 중앙조직들이 헌법을 비난하고 내년 선거를 거부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분리독립을 주장하던 소수민족 무장투쟁단체와 지도자 몇몇이 정부가 제공한 이권을 챙기고 무기를 놓았고 소수민족 지역에 평화가 왔다고 미얀마 군사정부는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들이 미얀마와 통합과 평화협정을 지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 10여 년간 샨족, 몬족, 카렌족 등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에서 미얀마 군부가 자행한 강간, 고문, 살인 등 잔학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수없이 들어나 국제사회의 분노를 사고 있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소수민족 출신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돌고 있고, 수십만 명은 국경을 넘어 태국의 난민촌에서 인간 이하를 생활을 하고 있다.

미얀마 군사독재의 압권은 최고지도자들의 만행에 가까운 기행들이다.  1962년부터 무려 30년 가까이 통치했던 네윈(New Win)의 몇 가지 ‘치적’은 역사 속에 기록될 것들이다.   네윈은 점쟁이 말을 듣고 우파들을 없애려 했는지, 꿈에 계시를 받아 그랬는지 모르지만, 1970년 어느 날 차선을 우측통행으로 변경한다고 선포하여 수십 년 된 일제 버스가 그대로 굴러다니는 양곤에서 승객들이 길 복판으로 내리는 위험과 불편을 지금까지 감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어떤 때에는 예날 지폐를 환불해 주지 않아 휴지조각으로 변하였고, 1985년에는 20, 50, 100짯짜리를 대신하여 25짯, (보지도 듣지도 못한) 35짯, 75짯짜리를 만들더니, 1987년에는 이 단위를 다시 없애고 이번에는 45짯, 90짯짜리를 발행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이 모두 수비학(numerology)과 점성술(astrology)에 현혹된 군부지도자들의 소행이었다.

1992년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딴쉐(Than Shwe)도 횡포와 기행으로 점철된 군부통치의 전통을 유감없이 계승하였다.  2005년 11월 군사정부는 수도를 양곤에서 오지 삐마나(네삐도)로 이미 옮기기 시작하였다고 발표하여 세계뿐만 아니라 미얀마 국민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공무원들에게는 불과 이틀 전 이 사실을 통보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침공에 대비했다고도 하고 역시 점성술사의 조언이었다고 하지만, 21세기에 존재하는 국가의 정책을 결정한 요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2007년 9월에는 1988년 이후 최대의 민주화 시위 사태에 직면한 군사정권은 신성시되는 승려들까지 구타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만행을 저질러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작년 싸이클론 나르기스가 남부 미얀마를 휩쓸어 15만여 명의 목숨을 집어 삼킨 직후에는 외국인 원조단과 자원봉사단의 입국을 거부하여 백척간두에 놓인 국민들의 목숨보다 정권에 대한 조그만 위협이 더 걱정임을 여실이 드러냈다.

이렇듯 시대착오적이고 잔인무도한 군사정권을 옹호하는 논리와 심지어 찬양하는 입장들까지 버젓이 우리 한국 사람들 사이에 나도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가장 흔히 내세우는 입장은 박정희식의 개발독재의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서, 미얀마 같은 후진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군부가 그것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미얀마 군부는 무려 반세기를 통치하였지만, 비약적 성장은 고사하고 한때 동남아 부국의 하나였던 버마를 아시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시켰다. “개발독재”가 아니라 “빈곤독재” 또는 “저개발독재”라 불러 마땅하다.  또 다른 주장은 군부만이 국민의 40%가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이 다민족사회를 하나의 국민 또는 새로운 민족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정치안정을 앞세우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통합의 방식을 무시한 반민주적이고,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부인하는 반인권적인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 미얀마 군부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를 앞세워 미얀마를 봉쇄한 미국과 유럽의 패권주의와 제국주의를 비난하고 이에 저항하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민족주의적 입장을 지지하는 옹호론자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야당지도자 아웅산수찌는 외국에서 자라 외국인 남편을 두었으며 서구 강대국의 앞잡이로서 국내에는 아무런 인기가 없다고 주장한다.  과거 야당지도자들을 반민족적이라 몰던 유신독재나 전두환독재 시절과 너무나도 닮았는데, 국제사회로부터 정보가 차단된 미얀마 사람도 아니고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고 민주화까지 일궈낸 한국인들이 군부독재자들의 선전과 세뇌공작에 넘어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류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고 교민 수가 급증한 이즈음에, 우리도 미얀마의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이 나라의 개방과 민주화에 힘과 행동을 보태는 일류국민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신 윤 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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