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22 17:05:53, Hit : 5014
 시와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한 청년의 축음


    시와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한 청년의 죽음

  2006년 11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는 남부 아시아 워크숍을 열었다. 스리랑카와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인권 신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아시아인권위의 직원들과 인턴들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시아인권위는 홍콩에 있기 때문에 아시아 각 지역의 현장에서 일하는 파트너들과 일상적인 연대를 통해 지역단위나 국제단위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한자리에 모아 활동상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과거와 현실을 분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전력을 짜내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한국사회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열악했던 시절, 비판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자국에서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시아인권위에 와서 함께 일하고 있다. 그 사람들 가운데 파키스탄에서 인권운동을 해 온 언론인 나비드(Baseer Naveed)도 있다. 2006년 11월8일은 파키스탄에서 비판적 언론인이자 사회활동가로 명망이 높은 나비드의 아들, 파라즈가 그가 태어난 나라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어머니에게서 아들이 사라진 날
  그날은 시안 조안 엘리아(Joan Flia) 죽음에 대한 2주년 기념일이었다. 파라즈(Faraz)는 엘리아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20살 청년이었다. 파라즈는 그의 아버지 나비드가 일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 진행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파라즈는 나비드에게 엘리아에 대한 방송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의 어머니는 그럼 혼자서 가지 말고 엘리아에 대한 책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가서 방송을 준비하라고 했다. 파라즈는 친구와 함께 방송국으로 향했다. 파라즈의 방송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았다. 시험을 앞둔 파라즈는 방송 후 친구들과 함께 시험 공부를하자고 했다. 나비드의 사무실은 방송실 바로 옆방이었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던 아들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 나비다는 아들을 찾으러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비드는 방송국 건물 구석구석 찾아다졌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친구들과 공부하러 가버렸다는 생각에 나비든 화가 잔뜩 났다. 저녁이 되어도 파라즈에게서 연락이 없었고 나비드와 부인은 둘다 화가 났다.
  파라즈는 한 번도 아무 말 없이 어디를 간 적이 없었다. 부부는 파라즈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화가 걱정으로 변했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파라즈가 사라진 지 3일째되는 날(2004년 11월10일) 나비드는 변함없이 일하러 나갔고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방송국 건물 벽 부근에서 사체가 발견되었는데, 누군지 확인하고 기사를 써야해요.”
  나비드는 늘 그런 일들을 해왔기 때문에 그는 바로 현장으로 가서 둘러보았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고 경찰들도 있었다. 나비드는 사체 근처에 갔다가 경찰에게 신원을 확인해 보라고 하고선 돌아섰다. 경찰은 주머니를 뒤져서 신분을 확인했다.
  “파라즈 아프메드.” 나비다는 다시 돌아섰다.
  “이른이 뭐라고요? 파라즈 아흐메드, 그 사람 이름은 그게 아니예요.” 나비드는 가까이 가서 이름을 직접 확인했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나비드는 한참을 서 있다가 사체를 확인햇다. 믿을 수가 없고 당황스러웠던 나비드는 나중에 병원에서 손톱까지 모두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았다. 아이의 온 몸은 구타와 고문의 흔적들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경찰이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에게 사고가 났습니다.” 파라즈의 사체는 죽은 30시간이나 지난 터라 바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파라즈가 죽은 뒤 내가 그 애 곁에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보내고 말았지요...” 눈시울이 붉어진 파라즈의 어머니가 말을 잊지 못했다.

  수사와 사체부검 대신 고문과 폭력의 흔적들
  파라즈의 온몸은 고문의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목은 완전히 부러지고 코는 두개골 쪽으로 밀려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한 번에 알아볼 수가 없었겠습니까. 인근 병원으로 사체를 옮겨 확인한 후에야 눈앞에 있는 이 처참한 시신이 아들이란 걸 알았지요.” 나비드는 사체부검을 여러 번 요청했지만 부검을 받을 수 없었다. 이미 사건현장은 제대로 보존되지도 않았고, 죽은 파라즈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와 컴퓨터 자료들, 이메일, 옷가지들, 물건들은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비드가 제대로 수사해 줄 것을 계속 요청하자 경찰과 군 측은 이제 나비드의 아내와 아들까지 협박하고 폭행했다. 한 달이 지난 뒤 둘째아들이 통학 길에 폭행당했고, 이런 말을 들었다. “네 아버지에게 이 일에서 손 떼라고 전해.” 그리고 또 한달 뒤, 그의 아내는 시장에서 폭행당하고 지갑을 도난당했다.

  국가개발계획에 대한 저항, 아들의 죽음으로 보복하다
  파라즈는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다. 무엇이든 생각나면 글을 썼고, 시를 썼다. 문학과 예술, 미학적 방식을 통해 평화의 모습을 그려내고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다섯 살 때 세계청년 탬프에 파키스탄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는데 참가자들 가운데 가장 어린, 유망한 평화애호가였다. 세계 어디든지 군부가 통지하는 나라에서 참된 지식인들은 일찍부터 그 싹이 잘리게 되는 모양이다. 나비드는 고국인 파키스탄에서 오랬 동안 살다가 올해 3월 가족들과 함께 홍콩으로 왔다. 아들을 잃은 고통은 늘 그의 얼굴과 몸짓에서 묻어나서, 처음 나비드를 볼 때 약간 무서운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를 상실한 데서 비롯된 고통은 아주 작은 손짓에도 가느다란 웃음에도 스며들어가는 건가 보다. 그는 파키스탄의 시민연합단체인 ‘시민의 문제를 위한 실행위원회(Action Committee for Civic Problem)'의 위원장이다. 이 단체는 2000년 파키스탄의 변호사, 의사, 지식인 등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화시키려는 조직으로 출발했다. 그의 가족들은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살고 있었다. 아라비아 해에 인접한 카라치는 파키스탄의 최대 해안도시다. 해안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자원이 풍부하고 상업이 발달하여 도시개발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카라치에는 리아리강이 흐르는데, 정부는 2001년 12월부터 이 강 위에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전합의나 공지 없이 진행되는 이 고속도로 건설 계획으로 인해 그 마을에서 100년이 넘게 대대로 살아온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최소한 10만여 명의 학생은 집이 허물리고, 학교가 허물어져 쫓겨 나갈 상황이 되었다. 2002년 1월 착수된 이 건설사업에 대해 파키스탄의 50여 단체가 연합하여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나비드는 그 운동을 이끌고 있었고, 2002년 7월 무렵 정부는 일괄적으로 한 가족에게 80제곱미터의 땅과 5만 루피(약77만원, 2006년 12월 현재 보상금의 액수는 18만루피로 증액되었다. 고속도로 계획에 참여하는 회사로부터 받게 될 예정이다)의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국가 개발로 인한 이주는, 적절한 보상을 받고 국가 개발에 적극 참여하는 식의 단순한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강제이주가 아니라, 국가 개발이 합당하게 이루어지고 그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강 유역 내에서 살기를 주장한다. 파키스탄 정권은 이 지역에 대한 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아,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고속도로를 위해 왜 그렇게 불필요하게 넓은 지역이 필요한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방식’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특히 그 지역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사실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도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사회와 달리 가족구성원(어린 아이들조차)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국가계획은 군사정권인 무샤라프(Musharraf)의 직접 명령으로 수행되고 있었고, 군이 개입해 있었다. 나비드는 이 지역의 땅 값은 고속도로 개발로 인해 더욱 오르게 되어 군부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달 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국가개발계획으로 자신이 살던 고향을 무조건 떠나 강제 이주 당한 사람들이 많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에서부터 최근 평택 주민에 이르기까지 이주민의 역사를 슨다면 여러 권의 책이 나올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 저항을 저지하는데 나비드는 협박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의 아들과 가족을 이용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군부는 가장 효과적으로 고통을 줄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파키스탄, 실종과 살인이 멈추기 바라며
  파키스탄은 행정구역상 4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은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해 있다. 9.11테러사건 이후 이 경계지역에서는 1000여명이 실종되었고, 발로치스탄(Balochistan)이 실종되었다. 이 주는 아라비아 해에 인접해 있어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 자원을 착취하려는 세력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민간인이 실종, 살해당하고 있다. 나비드는 이러한 실종 사건이 법원에서 아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사회, 인권 운동가나 언론인 등이 실종된 것은 1년 반 사이에 100여명에 이른다. 2006년 4월에는 파키스탄의 카라치와 런던에서 실종반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는 파라즈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 모여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전달할 편지를 낭독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언제나 해야 할 일은 파라즈의 죽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읹이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파라즈가 생명을 잃지 않도록 작은 행동을 통해 그의 슬픔을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발행 "인권" 41호에서 발췌





284  아라칸의 아이들, 건강할 수도 교육받을...  justice 2006/04/26 5517
283  [기획연재 - (4) 법치주의를 위한 정...  justice 2006/04/26 5514
282  뒤로가는 호주의 난민 정책  justice 2006/04/26 5333
281  태국: 경찰의 알선으로 전 국회의원 아...  justice 2006/04/26 5749
280  네팔의 들불같은 민주화 운동: 민주네팔 ...  justice 2006/04/26 5773
279  네팔어린이 미래의 종자돈 ‘2만원’  justice 2006/04/26 5767
 시와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한 청년의 축...  justice 2007/01/22 5014
277  필리핀 가비테 지역 한국기업의 인권탄압...  justice 2007/01/22 6043
276  박종철, 그리고 20년  justice 2007/01/22 5470
275  여덟살 알리(Ali)의 새해소망  justice 2007/01/23 5819
 
  [1][2][3][4][5][6][7][8] 9 [10]..[37]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hompy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