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기금
 

  
 justice(2007-01-22 17:25:17, Hit : 5594
 박종철, 그리고 20년

    박종철, 그리고 20년

대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아 숨진지 20년이 되었다. 고문은 가장 전형적인 국가폭력이었다. 고문과 폭력이 일상화된 어두운 시대, 박종철의 죽음은 일상적 폭력으로 둔감해진 시민들의 양심을 깨웠다. 그의 죽음이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던 항쟁의 물결이 거리를 뒤덮고 우여곡절 끝에 군사정권도 끝이 났다. 군부의 집권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한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몇 안 되는 나라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이렇게 때가 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고, 야만의 시절을 추억할 수도 있게 되었다.

박종철 열사의 추도식이 열린 남영동 대공분실, 7층 건물엔 박종철 열사의 얼굴이 내걸리고, 마당에는 수 백 명의 추모인사들이 자리를 메웠다. 정치인들, 예전의 재야인사들이었다. 학생운동이 침체된 탓인지 대학생 박종철의 친구여야 할 학생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박종철 열사가 함께하고자 했던 노동자들도 눈의 띄지 않았다. 행사는 깔끔하게 진행되었고, 또 장엄했다. 그렇지만, 열사의 죽음의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는, 스스로를 가다듬고 민주화투쟁의 의미를 새기는 불편함은 별로 없었다.
  87년 고문치사 사건으로 박종철씨가 숨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대공분실(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앞마당에서 지난 14일 오후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 및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개막 선포식’이 열렸다.
   의식 있는 영화배우가 사회를 보았지만, 거리 집회 등 지금 진행되는 싸움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년이란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쟁점이 해소되고, 이미 죽어 없어진 야만의 시대를 그저 회고하기만 해도 좋아서인지 또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죄 없는 한사람의 대학생의 죽음에 기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부담 없는 회고를 통해 그 죽음의 의미마저 박제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 선생은 또 한사람의 치열한 인권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노구를 이끌고 여전히 바람 맵찬 거리에 서 있다. 스스로 아들의 죽음이 박제화 되는 것을 거부하며 “민주화운동만 추억하는 것은 너무 낡았다”고 한다. 아들이 못 다 한 싸움을 민주화되었다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의 20주기를 추모하는 그 순간에 그는 “KTX 여승무원 복직 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깃발이 되었던 박종철이 이제 잘 표구된 액자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하고, 여러 사람들의 깃발로 언제든 나부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는 소중한 공간이 마련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생생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배움의 터전이다.  그러나 계승 없는 기념, 불편하지 않은 기념이어서는 곤란하다. 박종철 열사가 언제까지나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였으면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계승이고, 또 제대로 된 추모이다.


  - 고 박종철님 20주기에
  이해인 / 천주교 수녀, 시인

바로 20년 전 오늘
이 땅에서 억울하게 스러져 간
한 젊은이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자유조차 없었던 그 슬픔을
이제는 두려움 없는 눈물로
함께 표현 할 수 있음을 새삼 고마워하며
새해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기에
나름대로 바쁘기도 했다’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지요?
‘옳다고 판단되는 일에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
다짐하며 꿈과 희망을 키워갔던
총명하고 지혜롭던 대학생 박종철님
살았으면 지금쯤 불혹의 나이가 되었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어 웃고 살아 있을 박종철님

20년간 잊혀지지 않은 슬픔의 가시로
우리 가슴 속에 박혀있던 그 이름
이름 한 번 부르기만 하는데도
어찌 이리 마음이 아픈지요
어찌 이리 마음이 무거운지요
어찌 이리 부끄럽고 미안한지요!

그대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그 검은 마음 검은 손길
오랜 세월 지나도 용서하기 힘들어서
우리 마음은 어둡고 괴롭다고
누구에게 하소연하며 용서를 구할까요
몸은 죽었지만 정신과 혼은 생생히 살아있는 그대
살아있으면서도 자주 죽어있는 우리들을
겨울바람처럼 흔들어 깨우며

맑고 깊은 말을 건네주니 고마워요
그대의 모진 고통과 희생이 피워 낸
사랑과 자유의 의미를
물같이 흐르는 세월 속에
아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어 고마워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많은 말들
그렇게 죽음으로 대신했으니
이제는 정말 편히 쉬어야지요
사랑하는 가족 친지 벗들의
따뜻한 가슴 속에서
지지 않는 고운 별이 되어야지요

이별의 안녕을 수없이 고했지만
오늘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그대를 보내려는 우리 마음에
안녕의 별들이 순한 얼굴로 떠오릅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그리운 이들에게
그리운 별로 떠올라 환히 웃어주세요
우리를 돕는 천사가 되어주세요

선과 진리와 평화를 위해
우리도 그대로 닮은 촛불이 될게요
눈물의 기도가 될게요
그리고 마침내 웃을 수 있는 사랑
승리의 노래가 될게요
우리의 진실한 첫 마음이 그대로
우리 모두 그대를 사랑합니다. 안녕히!

2007.1.14

* 이 시는 지난 14일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에서 이해인 수녀가 직접 낭송한 추모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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